행복수업 :6.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기

화가 이중섭의 삶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불운의 천재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화가 이중섭(1916~ 1956)은 전쟁 중 가족과 함께 1951년 1월 제주로 갔다. 서귀포에 자리 잡은 이중섭 가족은 종교단체에서 배급받은 쌀을 팔아 보리와 찬거리를 사고, 바닷가에서 잡은 게를 잡아먹기도 하는 곤궁한 생활을 이어갔다. 부산과 제주를 오가던 이중섭이 가끔 초상화를 그려주고받는 돈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1년에 불과한 시기가 아마도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을지 모른다. 그에게는 가족과 예술뿐이었고 유일한 삶의 희망이었다. 힘들지만 아내 마사코와 두 아들이 곁에 있었다. 가족과 단란하게 살았고, 그리고 작품 제작에 소홀하지 않았다. 제주 시절 나무판에 그린 '서귀포 풍경, 실향의 바다 송頌'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수작이다. 갈매기를 탄 아이를 포함해 여덟 명의 아이들이 귤을 따 광주리에 담아 옮기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바다 풍경과 귤밭, 어린이와 갈매기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은 동화적이며 환상적인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꿈을 꾼 무릉도원 같다. 이 그림은 후에 '서귀포의 환상'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서귀포 풍경 2 섶섬'은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작품이다. 이중섭은 서귀포 풍경 4점을 남겼다. 모두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이 시기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도 많이 그렸다. 천진난만하게 바닷가 자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서귀포 바닷가의 아이들', '서귀포 고기를 낚는 아이들', '서귀포 고기와 어린이' , '서귀포 해초와 아이들'. '서귀포 게잡이' 등이 1951년 제주 시기의 작품이다. 유화 캔버스를 구하기 힘들었던 화가는 베니아판, 종이, 심지어 담뱃갑의 은박지 에도 예술혼을 남겼다.


몇 해 전 제주 서귀포에 복원된 이중섭 초가집 방벽에 적힌 '소의 말'을 읽다가 가슴이 울컥했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곱게 나려 /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이중섭은 젊은 시절부터 소에 푹 빠졌다. 종일 소만 바라보며 보낸 날도 있었다. 원산의 송도원 들판에서 소들을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몰린 일화도 있다. 소는 그가 동경 유학시절부터 즐겨 그리던 소재다. 1940년 자유미술가협회 주최의 도쿄-경성전에 출품한 '서있는 소', '소'부터 시작해 가족이 일본으로 떠난 후 1952년부터 2년간 머물던 통영에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붉은 소'(1954)와 '흰소' (1954)를 그렸다. 이후에도 '피 묻은 소'(1955), '싸우는 소'(1955)까지 많은 소를 그렸다. 소는 그에게 삶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그는 황소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했다. 소는 민족혼의 상징이며 소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를 비웃다는 분석도 있지만 황소 그림은 이중섭의 자화상이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남쪽 나라를 향하여'(1954)는 가족이 소달구지를 타고 피난 내려오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소는 이중섭에게 그나마 삶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중섭 작 '붉은 소'(1954)

이중섭 작 '흰소' (1954)

소(삶)를 향한 그의 시선은 세월과 함께 변하지만 아무리 극복하려 해도 결국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었다. 그의 삶은 그랬다. 가족을 일본에 보내고 그리움에 사무치면서 가족과 재회할 날만 학수고대했지만 결국은 외롭게 죽어갔다.

미술기자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만남이 있는데 일본에서 온 이중섭의 손녀와의 만남이었다. 이름은 아야코.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화가로 활동하지는 않고 있다. 적십자병원에서 신원불명의 상태로 사망한 이중섭을 찾아내 장례식을 치러준 김병기 화백을 만나러 한국에 왔었다.

아야코와 김병기 화백이 만났을 때 찍은 사진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 없는 아야코는 생존한 사람들을 찾아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고 했다. 밝게 웃으며 김 화백과 인사하고 담담하게 얘기를 나누던 아야코가 결국 울음을 터뜨린 것은 할아버지 이중섭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움에 젖어, 병마에 시달리던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서글프고 외로웠을지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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