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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y 01. 2020

[남프랑스 기행 #12] 죽어서도 지중해를 바라본다면

시인 폴 발레리의 고향 세트

# 남프랑스 여행 사진첩을 열어 보며 뒤늦게 정리 중입니다. 코로나가 물러 가기를 바라며~!”


‘악의 꽃'으로 유명한 샤를르 보들레르(1821~1867)를 '근대시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프랑스 시의 큰 흐름을 이루는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가 보들레르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보들레르에서 시작된 상징주의 시는 스테판 말라르메를 거쳐 폴 발레리(Paul Valery, 1871~1945)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초현실주의는 보들레르로부터 아르튀르 랭보를 거쳐 아폴리네르로 이어집니다. 현실을 넘어서는 신비를 암시하고 불러내기 위해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사물을 상징으로 삼는 상징주의 시를 완성한 폴 발레리의 고향이 지중해의  항구도시 세트 Sète입니다.  

폴 발레리는 파리에서 주로 활약했지만 늘 지중해의 푸른빛을 마음에 품고 있었겠지요. 세트는 오래전부터 지중해 무역의 중요한 항구이고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곳입니다. 뱃사람들의 활기와 바다를  향한 모험심, 풍성한 먹거리가 있는 ‘내 고향 남쪽 바다!’. 그는  생 클레르 산 중턱에 위치한 마랭 공동묘지에 잠들어있습니다.  지중해가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산 언덕에 있는 공동묘지는 어딘지 낭만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는 듯합니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의 삶 또한 그랬을 곳 같고요. 폴 발레리는 고향 세트에 있는 ‘마랭 묘지’라는 제목의 시를 1920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묘지 근처에는 1970년에 개관한 시립 폴 발레리 박물관이 있고  이곳에 그의 그림과 친필 원고 등  유물 300여 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마랭 묘지에는 폴 발레리 외에 장 빌라르의 무덤도 있지요.

세트는 시인, 작곡가, 가수로 활동 한 조르주 브라 생스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세트 코르니슈 해변에서 1㎞ 떨어진 르피 묘지에 묻혀있고 세트에는 그의 음악과 시를 보여주는 박물관 ‘에스파스 조르주 브라생스’가 있습니다.

남프랑스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지인이 두 가지를 추천했는데 하나가 아르카숑에 있는 모래언덕 뒨 뒤 필라이고(앞에서 소개해 드렸지요!), 다른 하나가 바로 세트의 마랭 묘지였습니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공동묘지를 자주 지나치게 됩니다.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지요. 마랭 묘지는 폴 발레리의 무덤이 있고 , 고지대에 위치해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근사한 곳에 자리한다는 말만 듣고 무조건 세트로 향했던 건데. 여행을 해 본 분은 아시겠지만 어디를 가든 뭔가 꼭 추억거리가 생긴다는 거죠.

폴 발레리의 무덤도 근사했지만 세트는 시장에서 먹은 점심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습니다. 메뉴는 ‘싱싱한’ 해물 모둠튀김이었지요.  새로운 도시에 가면 반드시 둘러보는 곳이 바로 시장입니다. 그 고장에선  뭐가 많이 나고 그곳 사람들은 무얼 어떻게 먹는지 알 수 있거든요.

세트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점심 때라 배가 출출했지요. 시내를 기웃거리다가 어느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기에 일단 들어가 보니 실내 시장이었던 겁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다들 테이블에 앉아서 다종 다양한 해물 요리를 먹고 있었지요. 지중해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신선한 풍미가 가득했습니다. 한 바퀴 들러보는데 한 가족이 커다란 접시에 오징어, 꼴뚜기, 잔 새우 등을 살짝 튀긴 것을 화이트 와인과 먹고 있는데 냄새와 비주얼에 침이 꼴깍 넘어가는 겁니다.

그 신사분에게 이건 어디서 샀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니까요. 그랬더니 도 웃긴 건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우리를 그 집으로 안내해 주고는 “여기 진짜 맛나. 난 마르세유에서 이 집 튀김과 타파스 먹으러 일부러 온다니까. 요거요거가 맛있어. “라고 친절하게 일러주고는 “참, 와인은 요기 요 앞에 카페에서 사면돼. “라면서 식사를 마치러 갑니다. 그분이 일러 준대로 타파스 바 피카피카(피카피코 일지도 모릅니다)에서  해물 모둠 쟁반을 주문하고 맞은편 와인바에 자리를 잡고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습니다.

한 접시에 17유로(2만 원 정도)인데 둘이 먹다가 하나가 사라져도 모를 만큼 맛있었답니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지요. 나이 지긋한 네 명이 와서 떨어져 앉게 되자 난감해 하기에  자리를 바꿔 줬더니 매우 고마워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세트까지 온 것이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했어요. 세트의 명물인데  그걸 모르냐며 손을 잡고  파는 곳까지 데려가서는 계산까지 해 주고 맛있게 먹으라고 했는데 그게 바로 티엘 la tielle 이란 것이었습니다. 티엘은 문어와 꼴뚜기 등 해물을 잘게 다져 토마토소스에 버무린 것을 속에 넣고 구운 빵입니다. 식전요리로 먹는데 배를 타러 나가는 사람들이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어 오래전부터 세트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합니다.  

세트에서는 여름마다 미디 운하에서 1666년 항구 건설을 기념하는 수상 창 시합이 열린다는데 꽤나 유명한 여름 축제인 듯합니다. 매년 여름휴가철에 재즈 페스티벌도  열린다고 하니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시장에 다시 가서 해물 쟁반에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싶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푸르른 지중해와 마랭 공동묘지와 함께 세트를 생각하면 입맛을 다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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