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y 04. 2020

[남프랑스 기행  #13] 이곳이 빛의 채석장

Carrieres de Lumieres

여행을 하다 보면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면서 경험의 폭을 넓히고  감각의 폭을 확장하게 됩니다.  감각의 폭을 확장한다는 말을 제대로 느낀 곳이 바로 ‘빛의 채석장’입니다. 지중해의 끝 자락 세트를 출발해  프로방스 지방으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이 레 보 드 프로방스 les Baux de Provence입니다.

프로방스는 프랑스의 남동쪽 지역입니다. 서쪽으로 론 강, 남쪽으로 지중해 동쪽으로 알프스 산맥의 남쪽 줄기에  둘러싸여 산과 바다, 협곡과 고원, 호수가 아우러진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자랑합니다. 공식 명칭은 프로방스 알프 코트다쥐르, 줄여서 PACA라고 합니다. 이 안에는 보클뤼즈, 부슈 뒤론, 바르, 오트잘프, 알프드오트 프로방스, 알프마리팀 이렇게 6개의 지방이 있습니다.

레보드 프로방스는 부 슈 뒤론 지방의 험준한 알피유 산맥의 심장부에 위치합니다. 지금은 폐허가 된 중세의 성채가 바위 산 꼭대기에 남아있고 그 아래 거주 인구 45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고불고불 산길을 올라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말로만 듣던 '빛의 채석장'이란 의미의 카리에르 드 뤼미에르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지옥계곡'(Val d'Enfer)에 있는 거대한 바위 속에 있는 ‘캬리에르 드 뤼미에르’는 예전에 채석장이었습니다. 19세기부터 100년 남짓  흰색 석회석을 채굴하다 1935년 이후 수십 년 간 버려진 곳이었습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와도 같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곤 했지요. 장 콕도는 1959년 이곳을 자신의 마지막 영화 '오르페'의 로케이션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거인의 입처럼 속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동굴. 그 안에서 어떤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걸까요?

호기심 가득한 채 호흡을 가다듬고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한기가 훅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은 찰나일 뿐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에  온 몸이 붕붕 뜨는 느낌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내부 공간에는 소리와 빛이 가득했습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이 온몸의 신경을 자극하며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피카소의 작품들이 거대한 벽에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빛과 소리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거대한 화랑에 들어와 있는 셈입니다.

피카소 작품 게르니카가 고대한 석회석 캔버스에 입체적으로 투사되고 있습니다. 빛과 소리가 공감 전체에 가득하고 온몸으로 예술을 느끼는 순간, 넋을 놓게 됩니다.


'빛의 채석장' 내부.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빛과 소리가 결합한 방식으로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빛의 채석장 내부. 거대한 화랑은  4000제곱미터의 면적의 빛의 캔버스에 비주얼 이미지를 소리와 함께 보여준다.

1975년 저널리스트 알베르 플레시는 버려진 채석장을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오디오와 비주얼이 결합한 멀티미디어쇼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 문화예술 체험공간으로 변화시키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이에 따라 1976년 '이미지의 성당( Cathedrale d'Images)'이라는 이름으로 채석장의 개조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무대 설치가와 음향전문가, 조명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70개의 비디오 프로젝터와 3차원 오디오 시스템을 도입한 스피커 22개를 설치했고 음악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거장의 미술 작품들을 거대한 화랑의 돌벽에 투영하는 슬라이드 쇼를 구현하게 됩니다.  사용되는 벽면의 면적은 4000 제곱미터가 넘는다고 합니다.

구석기시대 인류가 동굴 벽화를 그렸다면 현재의 인류는 빛과 음향을 도구로 한 미디어아트를 동굴에서 실현하고 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반 고흐 등 거장들의 작품과 클래식 음악의 조화는 물론 좋고 그래픽 이미지와 비틀스의 음악도 좋습니다. 올해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을 보여줄 것이라고 하니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습니다만..

레보드 프로방스 시의회는 2010년 말 이후부터 이곳의 관리주체를 캬리에르 드 뤼미에르로 바꿔 운영 중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3개 정도의 영상 쇼를 볼 수 있고 같은 날 입장권만 가지고 있으면 그날 몇 번이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수도 있답니다. 음악의 우주 속을 유영하는 기분은 중독성이 있어서 흠뻑 취할 때까지 있었습니다.

레보드 프로방스 자체는 아주 작지만 동화같이 아기자기한 산골 마을입니다. 산악지방 나는 재료를 사용한 음식식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도 있고, 올리브유와 라벤더 등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길을 산책하다 보니 어느새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고 해가 뉘엿뉘엿해 지려 합니다. 갈길 먼 나그네의 마음이 갑자기 바빠집니다.      

빛의 채석장 입장료 안내판
매거진의 이전글 [남프랑스 기행 #12] 죽어서도 지중해를 바라본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