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선물
클래식 음악이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19가 시작됐을 때 아침에 일어나면 버릇처럼 뉴스를 열었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환자가, 어느 지역에서 발생했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루 종일 코로나 뉴스를 들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면역력을 키우겠다고 운동도 하고 좋아 보이는 음식을 준비해 먹으며 밀린 일을 했다. 넷플릭스에 뭐가 재미있는지 정보를 교환하며 엄청 긴 시리즈도 순식간에 다 마쳤다.
모두가 그렇듯이 평범한 일상이 무너진 가운데에도 글쓰기는 나를 붙잡아 주는 일상의 루틴이었다. 멍하니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면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글을 썼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 두 달 정도가 지나니 쌓인 스트레스가 무기력증을 가져왔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었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왜 그렇게 바빴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도 그저 막막했다. 우울했다. '코로나 블루'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다행히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집 앞산에 산책을 자주 나갔다. 그리고 뉴스 검색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대신 음악을 듣기로 했다. 세상은 아직 코로나가 잠식하고 있었지만 클래식 음악은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튠인 라디오( TuneIn Radio)에서는 광고 없이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인터넷 라디오를 찾아 들을 수 있다. 나는 라디오 스위스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 진행자는 스위스 방송이라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로 방송으로 하는데 나는 프랑스어로 진행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최근 방송국을 하나 더 추가했다. 캄 라디오 calm radio라는 것인데 캐나다에서 송출되는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다. 작곡가별, 장르별로 음악을 찾아서 들을 수 있다. 무드가 필요하면 무드 있는 라운지 음악을, 메디테이션이 필요하면 메디테이션 음악을 찾아 들으면 된다. 세상은 참 좋아졌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주로 듣는다. 선율이 좋아서 귀가 맑아진다. 뇌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늘 아침 책장에서 책을 하나 뽑아 들었다. ( 아무 책이나 눈길 가는 대로 뽑아 들고 하루 종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게 버릇이다.) ' 365 클래식'( 진회숙 지음 , 청아출판사). 일 년 365일 매일 한곡씩 추천해 주는 게 이 책의 내용이다. 오늘은 무슨 음악을 들어볼까? 날짜를 찾기 전에 책갈피 해 놓은 게 있어 열어본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책의 저자는 4월 8일,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를 추천했다. 이 책은 좋은 점이 QR코드를 첨부해서 바로 유튜브로 연결해 준다. 듣고 싶으면 바로 찾아서 들을 수 있다. 이렇게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로 아침을 열었다.
1890년 로마 콘스탄치 극장에서 초연된 자연주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봄의 시칠리아는 온갖 야생화가 피어 꽃 향기가 섬 전체에 진동을 한다고 한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오렌지 꽃 향기는 어떨까? 모르지만 아마 비슷하게 생긴 하얀 치자꽃 향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렇게 오렌지꽃 향기가 진동하는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페라의 앞부분에 마을 젊은이들이 들판에서 한데 어울려 부르는 합창곡이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이다. 흰색 오렌지 꽃은 북미에서는 결혼식 부케에 주로 사용된다는데 향기도 좋지만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한다.
"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석양은 먼 들녘에 내리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교회의 종소리가 우리를 부른다.. 이 석양이 지나면 우리는 또다시 아침을 맞겠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책갈피를 해 놓았나 싶다. 시칠리아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칠리아는 다음 여행지로 점찍은 곳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꿈꾸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 생활을 오랜 전에 책으로 냈다가 최근 재발행했는데 유튜브에서 책과 시칠리아를 소개하는 것을 보고 더 그 생각이 굳어졌다. 김영하는 시칠리아가 "신화의 배경이 되기에 적합한 곳, 그리고 이탈리아 다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곳", 또 "음식이 맛있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시칠리아에선 추운 겨울을 함께 지내는 사람만 친구라고 한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간다면 나는 봄에 가고 싶다. 바람에 날리는 오렌지 꽃 향기를 맡으러 가고 싶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시칠리아 여행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바람결에 실려 온 꽃 향기가 선물 같은 아침이다.
(시칠리아 이미지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