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희망을 안고 새 아침을 맞자
지난 주말 서울의 서쪽 끝에 갈 일이 있었다. 서울 미래유산 답사의 필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그 날은 구로구 오류지구에서 답사가 진행됐다. 온수역에서 출발해 유한공고 교정에 있는 고 유일한 박사의 묘소, 성공회신학대학교 초입의 근대건축물 구두인관, 그리고 성공회대 뒷산 '더불어 숲길' , 항동 철길을 답사하는 코스였다. 긴 장마 끝이라 무척 습도가 높고 더운 날씨였지만 천왕산 초입 야트막한 언덕에 조성된 더불어 숲길을 걷는 동안은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구로 둘레길의 일부인 '더불어 숲' 길은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강조했던 고 신영복(1941~2016) 교수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산책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육사에서 경제학 교관으로 재직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20일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 1988년 특별 가석방되어 출소한 후 작가로, 교수로 많은 글과 강의를 통해 사람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 한 관계론을 설파했다. 그가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노트를 정리한 ‘담론’ 등에는 깊은 울림을 주는 글귀들이 가득하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 슬하에서 붓글씨를 시작한 고 신 교수는 감옥에서도 오랫동안 붓글씨를 연마해 서도의 경지에 다다랐다.
그는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민중의 글씨체를 모색하던 중 어머니의 필체에서 영향을 받아 어깨동무체라고도 불리는 ‘신영복체’를 만들어 적지 않은 작품을 남겼다. 더불어 숲 산책로에는 선생이 남긴 글을 담은 시화 팻말 36개가 세워져 있어 사색하며 걷기에 아주 좋다.
'담론'을 읽다 보면 견디기 힘들었던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고 신 교수가 세상과 삶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이 전해져 뭉클하다. 감옥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 줌 햇살을 보며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새롭게 다졌다는 글이 기억에 남았는데 산책로에서도 그 대목을 만날 수 있었다.
산책로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글은 ‘처음처럼’이다. 소주 '처음처럼'으로 낯이 익은데 이날 고 신 교수가 '처음처럼'이라는 글에 담고 싶었던 뜻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 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참 좋은 글이다. 맑은 아침, 푸릇푸릇 돋아나는 풀, 첫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날아가는 어린 새가 저절로 그려진다. 처음처럼은 초심을 버리지 말자는 다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이 글을 읽으며 진정 ‘처음’이 중요한 이유가 우리가 초심에 담았던 희망의 소중함 때문임을 알게 됐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새날을 맞아야겠다. 매일매일의 희망과 희망이 모이면 그것이 쌓여 행복한 삶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