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허구일 뿐이라고 인정하자!

행복수업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인생은 결국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아가기로 동의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b.1972)의 인생관입니다. 그는 착시효과를 이용해 일상에서 접하는 친숙한 공간을 실재와 허구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건축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키웠다는 그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작가적 상상력을 풀어놓습니다. 고정된 인식의 틀을 깨는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유쾌한 낯섦을 경험하게 합니다. 특히 그의 작품은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물리적 체험이 가능해서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어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2001, 2005년), 휘트니 비엔날레(2000년) 등의 미술행사를 비롯해 PS1 MoMA(뉴욕), 바비칸 센터(런던), 모리미술관(도쿄), MALBA(부에노스 아이레스)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소개된 바 있습니다.

그가 작품에 즐겨 사용하는 것은 거울입니다. 건물의 입면을 바닥에 놓고 그와 같은 사이즈의 거대한 거울을 설치해 바닥에 누우면 거울에서는 건물에 매달린 것처럼 착시효과를 냅니다. 실제 모습을 비추는 거울 속 이미지는 허구 그 자체입니다.

건물의 입면을 바닥에 놓고 커다란 거울을 설치해 마치 건물에 매달린 것처럼 착시효과를 만들었다.

'수영장'이라는 작품도 유명합니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은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마치 사람이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수면처럼 보이는 반투명 막이 있고 그 아래는 빈 수조입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위에 있는 사람들이 물속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건물 벽의 일부를 공중에 설치한 작품도 있습니다.

프랑스 낭트 광장에 설치한 작품.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Art

국내에서는 2012년 송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심도 있게 소개됐습니다. 기존 공간을 완전히 바꿔 4개의 장소 특정적 작품을 선보였지요. 전시 제목은 'Inexistence' 였는데 단어 자체는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지만 'In'과 'existence'를 떼어 놓고 보면 '현존하는'이라는 상반된 의미가 됩니다. 실재하지 않는 현실과 실재하는 작품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때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로 설치된 '대척점의 항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물 위에 배가 띄워져 있는 작은 선착장인데 아래층에서 올려다보면 배들이 하늘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서울과 대척점이 되는 도시가 작가가 태어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지요. '대척점의 항구'의 연장선에서 2016년 '추억의 푸에르토리코'라는 작품도 발표했습니다.

'푸에르토 항구의 추억'(2016) / 이미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Art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 10일부터 '그림자를 드리우고'라는 제목으로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3월 31일까지 예정인데 코로나 19 감염증 확산 우려로 미술관이 임시휴관 중입니다. ) 전시에서 작가는 4개의 공간에 남한과 북한을 은 유적으로 드러낸 조각 작품 '구름' 외에 한국의 무영탑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탑의 그림자'와 '자동차 극장' 등의 신작을 선보였습니다.

'구름(남한, 북한)'©Leandro Erlich Studio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에서는 상반되는 것들이 공존하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도 가능해집니다. 유쾌하고 기발한 그의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눈으로 보이는 것이 실재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재'인 것으로 하기로 동의한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가 실재라고 생각하는 것도 실제로는 우리가 처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인생에서 내가 처한 시간과 공간이라는 콘텍스트를 간과해선 안 되며 , 그러기에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인생은 결국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아가기로 동의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인생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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