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사람들은 변할 준비가 되었을 때에 변한다. 그 전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때로 미처 변화에 도달하지 못한 채 죽기도 한다. 누구든 원하지 않으면 결코 변하게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막을 수 없다.
- 앤디 워홀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대량생산과 대량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미국 문화의 정체성을 팝아트라는 시각예술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미술관과 백화점을 꼽을 정도로 소비사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카네기 공과대학을 나와 뉴욕 광고계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그는 로버트 라우젠버그, 야스퍼 존스의 작품을 접한 뒤 인쇄물에 등장하는 단조로운 제품을 흑백으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특유의 기법으로 뒤집어보기를 시도합니다.
이후 캔버스에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는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캠벨 수프 통조림'을 통해 대량 생산되고 대량 소비되는 상품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1962년 8월 마릴린 먼로의 죽음이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을 때 워홀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고 1953년 영화 '나이아가라'의 홍보사진을 기반으로 실크스크린 작업 '금빛 마릴린 먼로'를 제작합니다. 청록색, 녹색, 파란색, 노란색, 검은색의 단색으로 캔버스를 채운 뒤 그 위에 여러 장의 사진을 바둑판 형태로 배열해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냅니다. 금색의 배경에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먼로의 얼굴을 찍어낸 이 작품은 1962년 11월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습니다. 먼로의 초상화 중 가장 유명하고 팝아트라는 흐름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꼽힙니다. ‘현대적 신화'에 집착해 20세기 후반 미국인의 삶을 기록해 온 워홀은 재클린 케네디,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초상화, 꽃 연작 등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워홀은 기존의 예술품 제작방식과 달리 대량으로 복제하는 작업을 하기에 본인의 작업실을 '팩토리'라고 부르고, 그곳에서 당대의 유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작품 외에 영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당대의 문화를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변화를 서슴지 않았고 시대를 앞서간 워홀, 우리는 그를 현대미술의 아이콘이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