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우는 문장 1월 13일

자각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 우리는 때로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어렴풋이 알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결국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누구도 경계를 넘어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바로 그 간단한 이유로.'

- 폴 오스터, <뉴욕 3부작> , '잠겨있는 방' 중


폴 오스터의 ‘잠겨있는 방’은 어릴 적 같이 자라며 생각을 나눴지만 10년이 넘게 단절된 채 잊고 살았던 친구의 아내로부터 그 친구가 사라졌다는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1986년 발표한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의 세 번째 소설이다. 뉴욕 3부작 중 첫번째 ‘유리의 도시’는 잘못 걸려온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실제로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이 이 소설의 계기가 됐다.

‘ 잠겨있는 방’의 도입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삶은 우리가 죽으면 같이 죽고, 죽음은 우리에게 매일같이 일어나는 그런 일이다.' 이런 글. 참 멋지다.

폴 오스터의 글은 '자신의 정신을 탐구하는 여행'이라고 번역자 황보석은 평한다. 1인칭 소설로 관찰자의 입장에서 써 내려가는 글에서 '자신'은 유령처럼 '부유하는 자아'로 다가온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때 이런 한탄을 한다. 실제로 내가 나를 모를 때가 많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내가 나 안에 있는 것일까.

우리의 마음과 정신, 심리를 이해하는데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전의식, 의식,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집중하면 떠오르는 기억처럼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있는 것(전의식), 신체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 (의식), 감각기관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잠재해 있는 본능, 열정, 억압된 관념 같은 것 (무의식)으로 의식을 나눌 수 있다고 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성격은 의식세계와 관련이 깊다. 성격은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구성된다고 했다. 원초아는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충동 덩어리다. 자아는 원초아의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초자아는 사회문화적인 규범이 내면화된 것으로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양심과 이성은 초자아의 영역이다. 성적인 차원에서의 본능적인 에너지(리비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할 때 비현실적 방법으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심리적 작용(방어기제)까지 정신영역을 파헤쳤다.

이것만으로 나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영원한 수수께끼는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닐까. '나'의 모양을 설정해 놓고 그것이 나라고 착각하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를 나로 착각하고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 사회학자 챨스 쿨리의 ‘거울자아이론’은 흥미롭다.

하물며 내가 나를 이해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나부터 잘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 현대건축 평전>(박길룡 저)을 읽다가 발견한 시 구절에서 속이 뜨끔했다.


간혹 창문을 두드리며

방 안으로 들어오는 싶다는 이도 있지만,

팔짱을 낀 나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

-남진우, <우리 시대의 표류물> 중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의 나는 아니었을까. 나를 알고, 자세를 바꿔야 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건축 책에 이런 시를 소개한 저자의 깊은 마음이 고맙다. /표제 이미지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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