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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r 16. 2022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 4.4

삶의 종착역은 죽음, 그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

부산에 당일 출장을 갔다가 서울행 기차 시간을 한 시간 늦췄다.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1944~ 2021) 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부산행 기차 안에 비치된 KTX 잡지에 전시 소개란을 보니 전시는 3월 27일까지였고, 끝나기 전에 다시 부산에 올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전시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총 43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가 지난해 7월 14일 타계하기 전, 전시를 위한 작품 선정에서부터 작품 수정 보완 및 공간 디자인까지 마무리했다고 한다. 작가가 생의 마지막까지 깊은 애정을 쏟은 전시라니 꼭 보고 싶었다. 해외여행 중 중요한 전시를 보러 일부러 미술관을 찾아가기도 하는데 하물며 부산에서 열리는 데 안 본다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고층 아파트가 빼곡한 해운대의 일요일은 외국처럼이나 낯설었다.

볼탕스키는 2 세계 대전  독일군에 점령됐던 파리가 나치로부터 공식적으로 해방된   후인 1944 9 6, 나치에서 해방된   달이  되지 않은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타계한 날은 지난해 7 14일인데 이날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인 혁명기념일이다. 해방과 혁명, 그의 사고를 지배했던 죽음이나 상실감과는 대척점에 있는 단어들이다. 예술가의 삶은 그런  같다.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태인 의사 아버지와 작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유태인에 대한 홀로코스트가 진행됐던 전쟁 중에 출생했다는 점이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너무 어려서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위험과 외부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유년시절을 지배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그것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죽음이나 인간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볼탕스키는 독학으로 미술을 전공했지만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작업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진 설치작가로 활동했다. 그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사진 학자인 형 뤽 볼탕스키와 피에르 부르디외 공저로 아마추어 사진에 관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평범한 예술: 사진의 사회적 효능에 관한 시론>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볼탕스키는 사진적 레디메이드 활용의 대표적 작가로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는 사진 옷을 이용해 죽음의 속성, 죽음으로 인해 떠올려지는 불안과 상실감, 두려움,   없는 섬뜩함을 표현한다. 그의 사진 설치 작업은 죽은 자를 추모하는 제단 형태를 취하며 평범한 사람을 기리거나 얼굴이 확대된 어린아이의 사진을 취하기도 한다.  애잔하고 뭉클하다. 

전시는 본관 3층과 이우환 공간 1층에서 이루어지며 그가 직접 한글로 디자인한 “출발(Départ)”, “도착(Arrivée)”, 그리고 “Après(그 후)”가 출품된다. 이 텍스트는 섹션을 구분하는 단어라기보다는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그가 전 생애에 걸쳐 관객에게 던졌던 질문인 '삶과 죽음'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황혼(Crépuscule)>이었다. ( 2015(2021년 재제작), 전구, 가변크기, 작가 소장). 하나의 가지에서 나온 나무처럼 전선들에서 뻗어져 나온 전구들이 켜져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꺼진다. 빛나던 생명이 다해서 꺼지는 것처럼.

흔히 그는 ‘쇼아(Shoah)’ 작가라고 알려져 왔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홀로코스트(Holocaust)'라 부르지만 유대인들은 '쇼아'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히브리어로 '대재앙'을 뜻한다. ) 사진을 활용한 설치 작품들은 그래서인지 매우 우울하다. 작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내면의 함축적인 메시지인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을 환기시키려 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꺼내는 것은 언제나 불편한 일이지만 볼탕스키는 그 불편한 진실을 끊임없이 찾아 나간 작가였다.

볼탕스키는 코로나로 인해 더 이상 죽음을 숨길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고 인식했다. 동양에서 죽음의 수자로 인식되는 '4', 우연히도 그가 태어난 해가 1944년이었다. 작품 제목은 여러 가지를 함축한다. 볼탕스키가 우리에게 던져왔던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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