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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Sep 13. 2021

크리스토의 예술혼, 파리 개선문을 감싸다.

개선문 씌우고 싶다던 크리스토의 꿈, 60여 년 만에 실현

 "래핑 된 개선문은  바람에 의해 흔들리고 빛을 반사하는, 마치 살아있는 물체와 같을 것이다. 주름이 움직이면 개선문의 표면을 사람들은 손으로 만지며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파리 생각에 아침부터 가슴이 설렜다. 파리의 개선문이 거대한 천으로 감싸지는 크리스토의 거대한 프로젝트가 완성돼 9월 18일부터 공개된다는 소식이다. 예술적 동반자였던 아내  잔 클로드와 함께  랜드마크를 천으로 감싸는 독특한 대지미술로 유명한 세계적 예술가 크리스토는 이 프로젝트를 1960년대부터 구상해 왔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중 지난해 5월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예술가를 기리는 프로젝트가 사후 1년여 만에 완성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감동적이다.  


아주 오래전 처음 파리에 도착했던 날의 느낌은 아직 생생하다. 사진으로만 보던 노트르담 대성당, 센강과 퐁뇌프, 그리고 샹젤리제와 개선문을 둘러보면서 "내가 정말 파리에 왔구나!"를 실감했었다. 파리에 살면 수없이 지나치게 되는 파리의 랜드마크들이다. 기억의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는 파리. 파리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뛴다. 다리, 성당, 기념물 등 도시의 랜드마크를 떠올리면 가슴이 설레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텐데,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보면 무엇이든 뒤집어 씌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지 예술가 크리스토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크리스토 블라디미로프 자바체프는 1935년 6월 13일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소피아 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뒤 오스트리아 빈 예술아카데미를 거쳐 예술의 본고장 파리에 도착했다.  1958년 파리에서 평생의  동반자 잔 클로드를 만났다. 홍보담당자 겸 사업 매니저였던 잔 클로드는 크리스토와 생년월일이 똑같았다. 두 사람은 결혼해 부부가 되었고  예술적 동지로 평생을 함께 했다.

Christo and Jeanne-Claude,  사진 Wolfgang Volz
퐁뇌프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1985)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가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62년 독일 베를린 장벽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204개의 휘발유통을 쌓아 거리를 막으면서 다. 이후 그들 작업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포장(래핑)'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크리스토의 '포장'방식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성장한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크리스토는 불가리아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예술 전공자들은 당의 사업에 동원되곤 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유럽횡단 철도 주변의 지저분한 것을 잘 가리면서 풍경과 지평선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사회주의 경제의 진실을 은폐하도록  감싸는 방법은 크리스토에게 예술적 영감을 자극했다. 크리스토는 잔 클로드와 함께 그 기억을 조형적으로 전개시켜 나갔다. 작은 오브제를 완전히 감싸는 것부터 시작해 점점 대상물의 크기를 키워나갔다.   1969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근처의 해안지대 2.4㎞를 천으로 씌우면서 주목받기 시작하 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이름으로 그들은 전 세계의 유명 랜드마크를 천으로 씌우는 '포장(wrapping)' 기법으로 독특한 대지미술을 펼쳤다.

‘둘러싸인 섬’(1980~83)

분홍색 천으로 마이애미의 섬들을 둘러싼  ‘둘러싸인 섬’(1980~83)을 비롯해 1985년의 파리 퐁뇌프 프로젝트, 1991년 일본 사토 강 계곡의 우산 설치작업, 1995년 베를린 제국의회청사 래핑 작업  등으로 이어졌다. 작업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이들을 세계적 예술가 반열에 올린 베를린 의회청사 래핑 작업을 동독 국회에 처음 제안한 것은 1971년이었다. 분단 시절이라 단번에 거절당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 제안했지만 거절 당했다.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다시 용기를 내 1990년부터 662명의 국회의원에게 개별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프로젝트의 허가 여부가 국회 회의 안건으로 채택될 정도로 관심을 모았고 1995년 2월 25일  드디어 프로젝트 허가를 받아 진행할 수 있었다. 처음 제안한 지 24년 만이었다. 이들은 10만㎡에 이르는 내화 폴리프로필렌으로 의사당 건물을 둘러싸고 15km의 밧줄을 사용해 이것을 고정했다. 7월 7일 철수될 때까지 50만 명이 이 프로젝트 현장을 방문했다. 2005년에는 뉴욕 센트럴파크에 오렌지색 천으로 감싼 철문 7503개를 설치해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이들의 작업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규모면에서 엄청난 대지미술이라는 점도 독특하고 방식도 독특하다. 또한  예술작업에 대한 이들의 철학이 독특했다. 이들은 관람객의 신체적 참여를 중요시한다.  눈으로 감상하는 예술이 아니라 실제 만져보고 바람과 햇빛을 느끼고 그 위를 걸어볼 것을 제안한다. 관람자가 방문할 수 없는 장소의 작품은 제작 과정을 기록한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예술이란 존재 그 자체에 의미를 두며, 자유로운 예술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 예술이란 어떤 압박이나 권력,  이데올로기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작업을 위해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든 작업 구현을 위한 자금은 스스로 마련한다는 철칙을 세웠다.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업하기 위해 직접 제작한 드로잉이나 콜라주 작품, 입체 모형 등을 팔아 제작비를 마련했다. 독일 의사당 래핑 작업처럼 길게는 구상부터 실현까지 20년 이상이 걸리는 작업도 일정기간 전시한 뒤 철수한다. 기록으로만 남긴다. 예술이란 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험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 멋진 예술적 동지를 갈라놓은 것은 죽음이었다. 잔 클로드는 지난 2009년 74세로 먼저 타계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은 이어졌다. 크리스토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예술은 계속된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활동을 이어갔다.  2016년 이탈리아 이세오 호수에 노란색 인공 부유물들을 띄우는 ‘떠 있는 부두’를 선보였고 2018년에는 영국 런던 서펜타인 호수에 7000개 이상의 석유드럼통을 설치해 만든 ‘런던 마스타바’를 선보였다. 크리스토는 지난해 5월 31일 뉴욕 자택에서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아내 곁으로 갔다.  파리 개선문을 포장하는 숙원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Christo in his studio with a preparatory drawing for "L'Arc de Triomphe, Wrapped"

크리스토는 1960년대 개선문 주변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개선문을 씌우는 프로젝트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파리 퐁뇌프, 베를린 의사당 건물 등 생애 중 많은 프로젝트를 성사시켰지만 실현하지 못했던 프로젝트였다. 비용 조달, 허가 등 장애물이 많아 미뤄지던 프로젝트는 조카 블라디미르 자바셰프가 퐁피두 박물관 및 프랑스 문화재위원회 당국과 협력해 진행됐다. 2만 5000㎡ 이상의 직물로 개선문을 둘러싸는 작업은 신속하고 주도면밀하게 진행됐다. 앞서 나폴레옹이 군사 작전 중 전사한 군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이 기념비의 석조물과 조각품을 보호하기 위해 비계와 보호 장비를 설치하는 데에도 몇 주간 소요됐다.

크리스토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완성된 작품은  바람에 의해 자극되고 빛을 반사하는 살아있는 물체와 같을 것이다. 주름이 움직이면 개선문의 표면은 관능적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손으로 만지며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멋진 작품은 9월 18일부터 10월 3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지만 갈 수 없는 상황. 아쉬운 대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재단의  웹사이트(https://christojeanneclaude.net/press/arc-de-triomphe-wrapped/)에서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VnFT4aG7w . 

 (글 중 사진들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재단의 웹사이트에서 프레스를 위해 공개된 것으로 Wolfgang Volz 가 촬영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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