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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Aug 02. 2021

<추천 전시> 평행한 두 세계에서  진실 찾기  

이창원 개인전, 성곡미술관 , (~8.8)

오랜만에 미술관 나들이를 했다. 보고 싶은 전시들은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 지나가 버린다.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아있기는 할 테지만 당연히 전시회장 공간에서 보는 것만 못하다. 성곡미술관에서 지난 5월 7일부터 열리고 있는 이창원 개인전을 가까스로 봤다. 놓쳤으면 후회했을 좋은 전시였다.

좋은 전시는 시각적 감동을 넘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작가 이창원이 '평행한 두 세계'라는 제목으로 펼쳐 놓은 전시가 그랬다. 그의 설치 작업은 우리가 보는 사실과 실체 혹은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작품으로 말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고정 불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아집과 편견에 의한 환상일 수 있다고.  


이창원의 설치 작업은 평행한 두 세계의 상호 대립과 긴장으로 이뤄진다. 일차적 세계는 이미지가 파생되어 나오는 현실의 세계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고 접하는 비 미술적 사물들이다. 예컨대 광고 전단, 플라스틱으로 된 물건들, 신문지, 커피 가루, 찻잎.. 그리고 이 비 미술적 사물들에서 발생한 설치작품과 풍경, 인물화 등 이미지들이 나란히 존재한다.  두 개의 물질, 즉 원본과 이미지에는 공통점이 없다.  평행선 처럼 접점이 없다.

이 일차 공간과 2차 이미지 사이에 작가의 ‘예술적 개입’이  있다. 작가는 높낮이의 차이, 형태, 조명, 거울을 이용해 이미지를 창조한다. 작가는 숨기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인다. 바로 이것이 현.실.이다.

작가는 '우리가 표면적으로 체험하는 예술성과 경이로움이 실제로는 흔해 빠진 일상에 근원을 둘 수 있음'을 지적한다. 원본과 이미지라는 두 세계( 평행한 두 세계)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우리가 받는 충격은 더욱 강렬해진다.

패널과 커피가루로 만든 덕수궁 석조전의 이미지. ‘대한제국의 꿈’
‘대한제국의 꿈’ 디테일. (왼쪽). 오른쪽은 찻잎을 붙여 만든 인물성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이창원은 전통 조각에 대해 고민하던 중 군생활에서 우연히 빛이 주는 변화를 접하게 된다. 군대 내 교회의 유리에 색칠을 해 스테인드글라스 효과를 내는 작업이었다. 빛과 색채가 조합해 환상적인 미적효과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1998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며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 실험을 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빛의 반사'와 '그림자'를 이용한 평행한 두 세계라는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한 이창원 작가의 중간 회고전 성격을 띠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이창원의 작업은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리플렉션 이미지, 평행세계, 기여 화광, 성스러운 빛 등인데 이번 전시에서 두루 만날 수 있다. 덤으로 독일 유학시절의 실험적인 작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리플렉션 이미지는 2000년대부터 작업한 시리즈로 빛의 반사를 이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방식을 전개해 보인다. 예컨대 블라인드처럼 좁고  패널을 여러  벽면에 설치하고  층마다 커피가루, 찻잎을 얹고 조명을 비추면 커피가루나 찻잎의 높낮이에 따라 그림자가 생기고 전체가 하나의 풍경화로 나타난다. '대한제국의 '(2019, 나무 패널, 커피가루) 역사의 흥망을 목격한 덕수궁 석조전을 가벼운 커피 가루로 재현해 보인 작업이다. Luxaflex(2003)처럼 광고 전단지를 선반에 놓기도 하고, '자화상'에서 보듯이 직접 선반에 채색을 하며 같은 방식으로 작업한다.  

2012년 이후 시도하고 있는 평행세계 시리즈는 보도사진과 거울의 반사 기능을 적극 활용한 작업이다. 사건 사고가 실린 신문을 수집한 뒤 특정 이미지의 실루엣을 정교하게 오려 거울 위에 붙이고 그 부분에 조명을 비춘다. 어두운 공간에서 거울이 빛을 받아 생긴 반사 이미지는 본래 내용과 다르게 추상적이며 환상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실재와 환상, 현실과 환영, 원본과 복사본으로 제시되는 두 세계는 원본으로부터 무한한 새로운 실체가 파생되는 현대사회의 현상을 보여준다. 작품 ' 평행세계-시간을 가로지르는 손', '두 도시'에서 볼 수 있다.

기여 화광은 2016년부터 선보인 시리즈다. 조선왕조 실록 기록 가운데 밤하늘에 붉은빛이 나타나 길흉을 예고했다는 데서 흥미를 갖고 시작했다. 각종 광고 전단지를 턴테이블 위해 올랴놓고 조명으로 비추면  알록달록 한 전단지는 총천연색의 추상적 반사광이 되어 벽에 나타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 외곽을 두르는 산등성이 형태로 목재 구조물을 만들고 그 구조물 뒤에 '아파트 분양, 입시, 다이어트 등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를 겨냥한 광고 전단지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빛을 비춘다.  광고전단지에서 비롯된 황홀하고 매혹적인 무지개 빛과 함께  여명이 밝아오는 서울을 보는 느낌이다. 고상함과 비속함, 예술적 체험과 세속적 현실이 평행한 두 세계를 보여준다.

성스러운 빛은 2005년부터 시도한 '성스러운 빛' 시리즈는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플라스틱 용기를 투과한 빛의 반사를 활용한 작품이다.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플라스틱 용기를 모아 불투명한 유리판 뒷면에 붙이고 여기에 빛을 비추면 유리 앞면은 마치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보인다.

 우아하고 성스럽기까지 한 빛의 이면에는 싸구려 플라스틱 용기가 자리한다. '약속의 징표'와 '무제'를 통해 그 극명한 대립을 제시한다. 누군가는 속고, 누군가는 속이는 세상이 참 얄궂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진짜 세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사는 것이다. 모두 다 똑같다.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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