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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y 01. 2023

건축 탐구] 인간과 동물을 위한 집

경기도 파주 '카라 더 봄센터'가 보내는 메시지  

산책을 하다 보면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참 많다. 이렇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다시 반려견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는다. 하지만 강아지가 혼자 집에서 있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나의 이기적인 생각을 꾹꾹 눌러 참는다. 여행을 갈 때마다 강아지를 맡길 곳부터 걱정해야 했던 상황이 마뜩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떠나보냈을 때의 슬픔을 다시 반복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회자정리라고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그 슬픈 감정이 한 구석에 남아 있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을 넘었다고 한다. 극진하게 아끼고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한편에선 키우던 반려견을 무정하게 내다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그나마 시민운동 단체에서 유기견을 보호하고 다시 입양을 주선해 주고 있어서 불쌍한 동물들이 구제되곤 한다. 이번 건축 오디세이에서는 동물권행동 카라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소를 찾았다. 홍재승 건축가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사회적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제안해서 취재하기로 했는데 일반적인 동물권에 대해, 그리고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역할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왔다. 

유기견의 재 입양률은 매우 낮은 편이어서 1년에 기껏해야 100건 정도이고,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유기견이 해외로 연간 50건 정도 입양된다는 얘기도 처음 들었다. 갓 태어난 강아지들 보느라 쇼윈도에서 발길을 뗄 줄 모르게 만들었던 충무로의 애견 분양(판매) 업소들이 얼마나 '동물권'을  착취하는지도 알게 됐다. 동물과 함께 살아가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데 이 글이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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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와 교육-입양이 이뤄지는 사회적 공간의 구축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는 개발 붐이 일고 있는 파주시와는 분위기가 한참 다르다. 민가는 거의 찾기 힘들고 얕은 산과 논밭이 대부분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국내 최초로 건축가의 디자인으로 지어진 동물보호소 ‘카라 더 봄 센터’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사단법인 동물권행동 카라가 운영하는 ‘카라 더봄센터’는 위기에서 구조된 동물들을 치료하고 교육하고 입양 보내는 종합 반려동물 복지공간이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 명에 이르렀지만 버려지는 동물도 부지기수요, 여전히 식용으로  즐기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은 크게 부족한 우리의 현실에서 이 공간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카라 더봄센터로 가는 길에 많은 상상을 했다. 동물보호소라니 당연히 철창이 있을 것이고, 병들고 늙은 개와 고양이들이 우리에 갇혀 살아가는 풍경은 매우 비참하고, 그래서 우울할 것이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주차장에 도착해서 만난 풍경은 완전 딴판이었다. 외부는 주변의 산과 같은 짙은 갈색 벽돌로, 내부는 밝은 크림색으로 마감된 단정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 오른쪽에는 동물병원이 있고, 현관을 들어서니 말끔하게 정리된 로비에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드리운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중정에선 흰둥이 개 한 마리가 햇빛아래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다가 방문객이 등장하자 유리창에 코를 들이밀고 아는 체를 한다. 


2020년 10월 개관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간 카라 더봄센터는 모든 동물이 존엄한 생명으로서 본연의 삶을 영위하고, 균형과 조화 속에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어진 동물을 위한 집이다. 이등변 삼각형 형태의 4022㎡(1216평) 대지에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건물을 이루는 벽돌 한 장, 잔디 한 뼘 모든 것에 후원자들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담겨 있다. 버려지거나 고통받다 구해진 200여 마리의 개와 50마리의 고양이가 입양을 기다리는 동안 카라의 활동가들과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보호를 받으며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동물보호소라는 이름처럼 외부환경으로부터 안전한 셸터를 만드는 단편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 시설이 단순히 기능적인 건축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회적 선순환 고리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건축, 동물권에 대한 이해와 성숙한 사회적 여건이 윤활제 역할을 하는 생태적 유기체로서의 건축이 되어야 했습니다. ” 

카라 더봄센터를 설계한 건축가 홍재승(플랫/폼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동물보호소를 기능적 관점으로만 보자면 견사와 묘사가 있는 시설이지만, 기능의 건축을 넘어 사람들이 동물권에 대해 이해하고 인식을 개선하게 만드는 사회적 공간을 구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라는 국내 동물권이 새로운 차원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동물 구조와 보호, 입양, 교육과 시민참여까지 가능한 ‘토털 반려동물 보호복지센터’를 2016년부터 준비해 왔다. 우연히도 그 해 불법 개 농장에서 구조된 ‘조조’를 입양하면서 카라와 인연을 맺게 된 홍 소장은 자연스럽게 이 시설이 들어설 땅을 찾는 것부터 설계까지 도맡아 하게 됐다. 

홍 소장은 “건물의 주 이용자가 200여 마리의 개와 50여 마리의 고양이인만큼 설계는 이들의 습성 및 행동양식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면서 “동물의 습성과 편의를 최대한 세심하게 고려해 모든 동선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어지는 선진적인 동물보호소인지라 매뉴얼도, 기준도 없었기에 홍 소장은 카라 활동가들과 독일 뮌헨과 베를린에 있는 유기동물보호소 티어하임(Tierheim) 견학도 했다. 티어하임은 우리말로 ‘동물의 집’이란 뜻이다. 독일은 700여 개의 동물보호단체 네트워크와 세계최고의 동물보호법이 마련된 나라로 티어하임의 입양률은 90%에 달한다. 홍 소장은 “건축적 구성과 프로그램을 답사하는 것이 견학의 목적이었지만 운영과  유지관리, 시설의 사회적 역할을 실제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면서 “특히 티어하임이 기피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일부로서 주거지역과 근접해 있으면서 마을의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커뮤니티 시설로 작동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아직은 갈길이 먼 우리의 실정에선 부지선정부터 어려웠다.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지어지는 만큼 예산은 제한되어 있고, 민원 소지가 많은 민가와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하며 1000평 이상의 크기인 땅을 찾아야 했다. 인근에 군부대가 있으면 훈련 중 총성 때문에 예민한 동물들이 지내기 어렵다. 계약 직전에 마음이 바뀌어 무산되기도 했다. 거의 1년 만에 지금의 부지를 발견했다. 홍 소장은 “나지막한 긴 땅이 고요하고 빛이 잘 들며 시야가 탁 트여있으면서도 민가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적합했지만 이등변 삼각형의 땅이라 시설을 배치하기는 다소 난해하고 비효율적인 인상이었다”고 말했다. 

카라 측에선 현대화된 동물보호소로서 기능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이고 상징성도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원했다. 카라 더봄센터 설립 기획부터 운영까지 총괄하고 있는 전진경 카라 대표는 “동물보호소가 원래 기능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불쌍한 동물을 살처분하기 전에 잠시 보호하는 비참한 시설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그런 우울한 보호소의 개념이 아니라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는 공간, 진정한 동물권이란 어떤 것인지를 건축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땅의 모양을 살린 삼각형 선순환 구조의 디자인이 선택됐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끝도 없었다. 건립 소식이 알려지자 인근 마을 주민까지 달려와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거세게 반대했다. 전 대표는 “주민 설명회를 통해 카라의 사회적 역할과 지역사회에 대한 배려, 주변환경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의 형태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해를 구한 결과 이장님부터 마을 주민 모두가 건설 과정 내내 응원해 주셨다”며 “이제는 이런 장소가 마을에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신다”라고 전했다. 

지금의 건물을 조감도로 보면 모서리가 라운드로 둥글게 처리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홍 소장은 “각각의 변은 인간, 동물, 자연을 상징하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삶과 건강을 상징한다”면서 “이 같은 삼각형의 순환구조는 상징적이면서도 아름답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땅이 지닌 단점을 최대한 장점화한 것”이라고 이라고 설명했다. 

센터장의 안내를 받아 견사와 묘사를 둘러봤다. 1층의 견사는 안과 밖이 연결되어 있어 동물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주로 폭력에서 갓 구조되는 등 심리적으로 위축된 중 대형견들이 머물면서 적응기를 갖는다. 복도에는 위생관리를 위해 세면대, 개수대 및 분사형 호스가 설치되어 있다. 2층의 견사는 각 방마다 1m로 돌출된 발코니가 있다. 크기와 성향이 비슷한 강아지들이 3~4마리씩 공동생활을 한다. 고양이들은 높이 올라가는 성질을 감안해 천정고가 높은 방을 설계해 주었다. 개별 공간 외에 계단시설 등을 갖춘 공동 놀이방을 두어 고양이들이 사회성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2층에는 활동가들이 사용하는 업무공간과 주방, 휴게실이 있다. 동물을 배려한 카라 더봄센터의 최고 미덕은 동물의 활동성을 고려한 내부 중앙 정원과 입체화된 산책로다. 

“동물들에게는 계단이 매우 낯설고 어려운 시설입니다. 산책과 운동이 필요한 동물들을 위해 중앙정원에는 잔디광장을 두고 옥상까지 이어지는 내측 경사로를 이용해 입체화된 긴 동선을 만들었습니다.”

중앙 정원에서부터 삼각 도넛형태의 건물 안쪽에서 건물 안쪽의 경사로를 따라 옥상까지 올라가 봤다. 사방을 바라보니 구릉지와 주변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물의 눈으로 보더라도 평화로운 풍경일 것 같다. “한나라의 위생성과 도덕성은 동물들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떠올랐다. 이런 시설이 굳이 이렇게 외딴곳에 자리잡지 않아도 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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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본문은 서울신문에 연재하는  건축 오디세이를 위해 작성한 것입니다. 사진 =텍스처온텍스처, 카라더봄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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