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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Aug 16. 2024

드디어 돌로미티] 5. 그레이트 돌로미티 로드,에필로그

돌로미티를 돌아보며


‘시시’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던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드가 가장 좋아했다는 아름다운 카레짜 호수를 방문하는 것으로 돌로미티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했다. 짧은 기간 동안 자동차로 돌로미티를 통과하면서 놀라운 풍경들을 만났다. 말 그대로 주마간산처럼 보긴 했지만 자동차로 여행을 한 덕분에 돌로미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길의 중요성을 안 것은 이미 고대 로마시대부터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로마제국이 번창할 때 식민지와 로마를 잇는 도로를 건설해 로마군단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교역을 활성화했던 역사가 있다.

돌로미티에서의 ‘길’, 그러니까 돌로미티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길은 ‘그레이트 돌로미티 로드(Great Dolomite Road)’라는 이름이 붙은 유명한 길이다. 독일어로 ‘그로세 돌로미텐슈트라세(Die Große Dolomitenstraße)’ 이탈리아어로 ‘그란데 스트라다 델레 돌로미티(Grande Strada delle Dolomiti)로 불리는 그레이트 돌로미티 로드는 의심할 여지없이 이탈리아 북부의 웅장한 산악 지역의 관광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돌로미티 산맥을 가로지르며 남티롤, 트렌티노, 베네토를 통과하는 이 도로가 본격적으로 관광 목적을 위해 건설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원래 노새들이 짐을 싣고 작은 마을과 계곡을 다니던 길에서 마차가 다니던 길이 군데군데 만들어졌다. 이 길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남쪽 경계를 표시하기도 했는데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알파인 산악클럽은 고지대에 대피소를 세우기 위해 차량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볼차노와 코르티나 사이에 차량 접근이 가능한 길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남티롤 관광의 두 선구자 알베르트 바흐틀러(Albert Wachtler)와 테오도르 크리스토만노스(Theodor Christomannnos)는 이 아이디어를 즉각 받아들였다. 돌로미티 지역 전체를 연결하는 야심 찬 계획은 1901년 실행에 옮겨져 연 인원 2500명이 참여해 8년 만에 도로가 완성됐다.

관광분야의 비전을 가졌던 크리스토마노스는 “도로가 없는 호텔은 없고, 호텔이 없는 도로도 없다”는 모토를 만들어 냈고 그 결과 도로를 따라 호텔들이 건설되고 레스토랑이 세워지면서 국제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혹독한 기후와 싸우며 살아왔던 이 지역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이 도로의 건설은 경제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가파른 절벽, 백운암(돌로마이트)으로 형성된 창백한 산괴의 마법 같은 풍경, 다양한 표정을 지닌 깊은 계곡들로 이어지는 돌로미티 지역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중에는 엘리자베드 황후를 비롯해 유명한 소설가도 있고, 작곡가도 있으며, 화가도 있다. 작곡가 중에 구스타프 말러는 1908년부터 1910년까지 매년 여름을 가족과 함께 도비아코(토블라흐)에서 지내며 교향곡 9번과 대지의 노래, 미완성으로 끝난 교향곡 10번을 작곡했다. 코르니타 담페초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도비아코에서 말러 가족이 머물렀던 빌라에는 말러 박물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가보진 못했다.

https://www.guidedolomiti.com/en/great-dolomites-road/

봄과 여름에는 화려하게 야생화가 만발한 고산 초원을 산책하고, 웅장한 봉우리를 오르고, 산악자전거를 타는 등 자연과 함께 호흡한 후 소박한 산장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겨울에는 골짜기와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슬로프에서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는 이곳은 놀라운 아름다움과 지질학적, 지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기에 이른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선 1956년 동계올림픽에 이어 2026년에도 밀라노와 함께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모두 ‘길’이 만들어낸 역사이다.

110㎞ 길이의 그레이트 돌로미티 로드에서는 돌로미티 지역의 중요한 봉우리 대부분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자동차를 타고 가다 파노라마 감상포인트나 주차장에 멈춰 서서 경치를 감상하고 짧은 산책을 하면서 산세의 화려함을 즐기는 것도 좋다. 물론 일부 구간은 도로가 아주 좁고 헤어핀처럼 급하게 굽은 구간도 많고, 오토바이가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해서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돌로미티의 마지막날 숙소는 카레짜 호수와 볼차노에서 가까운 오베레겐(Obereggen)이라는 곳에 위치한 ‘스포츠호텔 오베레겐’으로 정했다. 스키장과 가까운 지역에는 ‘스포츠호텔’이라고 이름 지은 곳들이 종종 있는데 이곳도 바로 스키장 슬로프 아래에 위치해 있어 객실 발코니에서 슬로프가 바로 보였다. 겨울에 스키를 타기에 아주 이상적인 위치다. 여름이라 풀들이 파랗게 덮인 슬로프에는 소들을 방목하고 있었다. 내부 시설을 보면 체력 단련장은 기본이고 실내 수영장, 실외 인피니티풀, 그리고 사우나가 잘 갖춰져 있는데 사우나는 인티니티 풀과 함께 ‘성인 전용’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었다. 객실 키가 있어야 입장이 가능한 ‘자연주의’ 사우나였다.

스포츠호텔 오베레겐의 인피니티풀에서 보이는 풍경

하룻밤을 편하게 쉬고 나서 밀라노를 향해 출발했다. 자동차로 4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이다. 중간에 가르다호수의 시르미오네를 들러 보기로 했다. 가르다 호수는 총면적 370㎢, 최고 수심 346m의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가르다 호수 남쪽에서 충수처럼 삐죽하게 튀어나온 곳이 역사가 깊은 시르미오네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온천이 있어서 로마시대부터 사랑받았고 많은 볼거리와 유명한 식당들이 있다. 날씨도 화창하고 일요일이어서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자 경찰이 나와서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골목에 주차를 해 놓고 호숫가로 갔다. 빙하에 의해 형성된 호수의 에메랄드빛 물이 바다처럼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바다처럼 보이는 가르다 호수.

 

이탈리아에서 가장 넓다는 가르다호수의 물빛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찰랑찰랑하는 호수를 바라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서 다음을 기약하며 고속도로를 타고 밀라노를 향했다. 좋았던 시간을 뒤로한 채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동선을 짰다.

'짐이 있으니 일단 밀라노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내려놓은 뒤 헤르츠에 가서 차를 반납한다. 그리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밀라노 외곽에 있는 피렐리-행가비코카 전시장으로 가서 베니스에서 헤어진 일행을 만나 전시를 보고, 다시 숙소로 온다.'   

숙소는 호텔이 아니라 아파트를 부킹닷컴을 통해 빌렸다.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 에어비앤비처럼 셀프 체크인을 하는데 왓츠앱으로 대문 코드와 열쇠함 비밀번호를 알려왔다. 연립주택처럼 공동 대문을 사용하고 가운데 마당이 있는 독채로 된 복층 아파트였는데 어렵지 않게 찾았고, 문도 무사히 열어 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니 4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처음에 예약할 때 12시에 차를 반납하기로 했으니 시간은  한참 지나 있었다. 밀라노 시내에 와서 반납장소(중앙역 맞은 편의 큰 건물 지하 주차장)로 갔더니 여자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영어를 하긴 하지만 무척 불친절하고 성미가 급한 이 여직원은 우리가 내야 할 비용이 700유로 가까이 된다고 했다. 예약할 때 분명히 478.29유로( 자동변속기, 에어컨, 와이파이, 타 지역 반납, 영업소 서비스요금, 프리 킬로미터, 도로세, 완전면책 보험, 도난보험, 상해보험 포함)였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더니 “더 할 말 없고, 내야 할 비용을 내라”고 했다. 막무가내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서 신용카드를 줬더니 카드가 거부된다면서 사무실로 가야 한다고 한다. 사무실에 가서 영수증을 받아서 자세히 내역을 보니 기름을 가득 채워서 반납해야 하는데 3분의 2만 채웠으니 92유로를 내야 하고, 반납 시간이 경과했으니 하루치를 더 내야 하고, 이에 따른 세금이 추가되니 얼추 700유로 가까이 되는 것이었다.

베니스 사무실에서 3시까지 연장해도 되는지 물었을 때 선심 쓰듯이 괜찮다고 하더니 에누리 없이 하루치로 계산을 하고, 와이파이라고 해서 신청했더니 와이파이가 아니라 GPS였다. 구글지도를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GPS는 없어도 되는 것이었다. 주유소를 잘 찾아서 가득 채워야 했는데 하이브리드 차량에 넣는 휘발유를 찾기가 어려워서 그냥 반납했다. 이래저래 미리 대비하고 잘 계산했다면 200유로 정도 절약할 수 있었지만 어쩔 것인가.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래도 이 차로 몇 개의 봉우리를 무사히 넘었고, 안전하게 반납했으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좀 더 꼼꼼하게 대비하면 된다. 그러니 잘할 때까지 계속 여행을 떠나야 하지 않겠나.


이 글은 컬처램프에서 좀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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