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 자동차로 4박 5일] 4. 알페 디 시우시와 카레짜 호수
발 가르데나(Val Gardena) 지역의 중심지인 오르티세이(Ortisei, 해발 1236~1238m)는 겨울에는 유명한 스키 리조트이고, 여름에는 산악 하이킹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는 돌로미티의 랜드마크인 세체다(Seceda)와 고원지역인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 Seiser Alm)로 갈 수 있는 곤돌라 탑승장이 있다. 전날 오후에 세체다를 다녀왔고, 이튿날에는 알페 디 시우시를 가는 것으로 플랜을 짰다. 오르티세이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여기저기 다녀도 좋고 알페 디 시우시에 있는 호텔에 묵으며 일출과 일몰도 보고 트레일 코스를 따라 트레킹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짧은 일정 상 오르티세이에 하루밖에 머물 수 없어 무척이나 아쉬웠다.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자동차를 호텔 주차장에 두고 세체다 탑승장과 반대편에 있는 곤돌라 탑승장으로 갔다. 알프스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건너가면 바로 ‘Mont Seuc’ 곤돌라 탑승장이 나온다. 빨간색 곤돌라(정확하게는 로프웨이)를 타고 몇 분만에 해발 2005m인 Mont Seuc (발음이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몽쉐익이라고 불러본다)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유럽에서 가장 넓은 고산 목초지이면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 지역이기도 한 ‘알페 디 시우시’가 펼쳐진다.
알페 디 시우시는 2000m의 고원지대에 펼쳐진 52㎢ 넓이의 초원지대이다. 돌로미티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여름에는 화려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겨울에는 반짝이는 눈이 덮인 부드러운 언덕이 크로스컨트리 스키어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는 세계적인 명소다. 곤돌라에서 내려 보니 웅장한 바위 산들이 솟아있고 푸른 초원이 넘실넘실 드넓게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다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다른 스키리프트와 체어리프트가 있었다. 체어리프트는 아랫마을 야생화밭을 갈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올라올 때 창구에서 뭔가 추가로 살건지, 왕복권만 살건지 물었었는데 그냥 Mont Seuc 왕복권만 32유로를 주고 타고 올라 왔던 터라 그 리프트는 별도의 티켓(편도 10유로)이 필요했다. 이 대목에서 슈퍼섬머권을 사진 않은 것을 또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도 많지 않아서 체어리프트는 패스하고 그냥 걷기로 한다. 왼쪽으로 평지로 가는 코스와 언덕으로 올라가는 루트가 있는데 일단 오르는 길을 택했다.
언덕에 올라가니 역시나 예수님이 못 박혀 있는 십자가 상이 있다. 큰 십자가 상 말고도 걸으면서 보니 작은 십자가상들이 나무 아래나 갈림길 등 곳곳에 있었다. 눈이 많이 쌓이는 계절이면 아마도 흰 눈밭에서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돌로미티, 알페 디 시우시는 6월에서 7월로 넘어가는 바로 그 시기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날씨가 화창하고 야생화들이 만발하기 때문이다. 비록 기간을 짧았지만 여행시기는 제대로 선택한 셈이었다. 드넓은 고원의 언덕에는 야생화가 만발해 있었다. 보라색 토끼풀, 노란 민들레, 하얀 소국들이 뒤섞여 피어있는 모습이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걷다가 서서 뒤를 보든 옆을 보든 아름다운 풍경이다. 알페 디 시우시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암봉들이 이뤄내는 숨 막힐 듯한 경치와 어우러지며 푸른 목초지가 펼쳐진다.
드넓은 고원에는 가운데로, 주변으로 트레일 코스가 다양하게 있어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여기저기 하이킹(혹은 트레킹)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래 저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시간도 없었고, 이날은 신발이 적절치 않아서 지레 포기했다. 알페 디 시우시는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되는 것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트레킹화를 트렁크에 챙겨 짐을 싸고, 운동화를 신고 올라왔는데 많이 후회했다. 역시나 산은 산이었다. 야생화가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풀이 길고 억세기까지 했고 고원의 언덕을 내려갈 때도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다음번에 가게 되면 시간은 좀 더 여유 있게 잡고, 반드시 트레킹화를 신을 것이다.
사쏘 룽고, 사쏘 피아토(어디가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같은 바위산들을 전망할 수 있는 몽쉐익 산장에서 수제 햄버거로 점심 식사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당근 등 야채와 생강을 갈아 만든 주스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냥 보기만 하고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였다. 곤돌라를 타고 다시 내려와 다음 행선지인 카레짜 호수(Lago di Carezza)로 향했다. 오르티세이에서 카레짜 호수까지는 54㎞거리, 자동차로 1시간 20분 걸린다.
돌로미티를 가는 서쪽의 관문인 볼차노를 지나가게 되는데 평지로 내려오니 벌써 웅장한 자연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서 어딘지 섭섭함이 밀려왔다. 며칠간 사방이 기이한 산으로 가득한 돌로미티에서 지내면서 웅장한 자연의 품에 안긴 기분이었다. 기이하고도 웅장한 자연 풍경을 언제나 다시 보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카레짜 호수는 브라이에스 호수, 소라피스 호수와 함께 돌로미티의 3대 호수로 꼽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크기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고산지역의 호수인데 볼차노에서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편이다. 한 바퀴를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이 채 안 걸리니 산책하기에도 딱 좋다. 시계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아 전망대에 섰다. 빙하가 녹은 물이 고여 이루어진 호수의 짙은 에메랄드빛 호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그 뒤로 하늘 높이 뾰족하게 솟은 늘 푸른 가문비나무가 빽빽한 라테마르(Latemare) 숲, 그리고 라테마르 산맥의 웅장한 바위들이 거인처럼 서있는 풍경은 그림같이 아름답다. 정말 요정이 나타나 춤을 출 것 같은 풍경이다.
전망대의 설명문이 설치한 지 오래된 듯 군데군데 뜯겨 나가 있다. 영문 설명을 읽어보니 라테마르 숲의 스프러스(Spruce, 가문비나무)는 수령이 600년이나 되고 높이가 50m까지 자란다고 한다. 나무 둥치의 지름은 1.5m. 이 나무들은 건반 악기의 사운드보드나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의 공명통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그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윗부분에 가문비나무가 사용됐고, 내부 블록과 라이닝에는 버드나무, 뒷목과 목에는 단풍나무가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스트라디 가문에서 17~18세기에 만든 현악기 중 바이올린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악기 중 가장 훌륭한 악기 중 하나로 여겨지며,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꿈의 악기가 아니던가. 그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가문비나무 중에서도 카레짜 호수의 라테마르 숲 가문비나무가 최고로 꼽히는 이유가 무엇일지 단견이나마 짚어봤다. 알프스의 맑은 공기와 물을 머금으며 그 긴 세월 동안 비와 바람과 눈, 그리고 혹독한 추위를 품어내며 단단해 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음색은 결국 그것을 이루는 나무가 품고 있는 기억들을 포함한 대자연의 소리여서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리라. 요즘 클래식 음악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앞으로는 현악기의 소리 너머로 자연의 소리가 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돌로미티의 마지막날 숙소는 카레차 호수와 볼차노에서 삼각형 꼭짓점 정도에 위치한 로 가는 중간 지점의 산맥 줄기에 있는 오베레겐(Obereggen)이라는 곳에 위치한 ‘스포츠호텔 오베레겐’으로 정했다. 볼차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음날 밀라노까지 가야 하는 부담을 좀 줄일 수 있었고, 별 4개짜리 호텔치고 가격도 적절했다. 무엇보다도 스포츠호텔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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