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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Nov 19. 2024

건축탐방] 사막의 장미, 장 누벨의 '카타르국립박물관'

장 누벨(Jean NOUVEL, b.1945)은 내게 건축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게 해 준 건축가이다. 아주 오래전 파리를 산책하다가 그가 설계한 아랍세계연구소(1987)를 만났을 때의 심미적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침 햇살아래에 서 있는 흰색 건물의 파사드를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픽셀 형태의 창문들은 아랍 전통 문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슬람 사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듯한 아름다운 외관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햇살을 받은 창문들이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이 서서히 눈을 뜨는 것 아닌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니 창문에 달린 조리개들이 자동 빛 조절 장치가 되어 빛의 양에 감응하도록 해 놓은 것이었다. 2만 7000개의 조리개판과 242개의 그릴로 만들어진 창은 햇빛의 세기에 따라 마치 카메라 조리개처럼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조리개 판은 정교한 톱니바퀴로 작동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아랍문양과 햇빛, 조리개, 톱니바퀴 등 과거와 현재, 그리고 하이테크가 어우러진 그 건축물을 설계한 이가 장 누벨이었다.  

이후 파리의 까르티에 재단(1994), 스위스 루체른의 문화센터 KKL(2000), 파리의 케 브랑리 박물관(2006)과 필 하모니 드 파리(2015) 등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을 기회가 되는대로 찾아가 봤다. 한결같이 거대한 모뉴먼트처럼 매우 유니크한 디자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기능적으로도 완벽해 보였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오일머니가 풍부한 중동지역에도 여럿이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있는 루브르아부다비와 카타르 도하에 있는 카타르국립박물관이 장 누벨의 작품인데 중동 쪽으로 갈 기회가 없어서 그냥 사진으로만 보고 버킷리스트에 올려두고 있었다. 마침 얼마 전에 이집트에 취재 갈 일이 생겨서 카타르항공을 이용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도하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스톱오버 서비스를 이용하면 카타르항공과 연계된 호텔을 아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목적은 카타르국립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니 구글맵을 들여다보며 호텔도 박물관과 가까운 곳으로 잡았다. 

이집트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밤 비행기를 타고 도하의 하마드공항에 한 밤중에 내렸다. 세상이 좋아져서 공항에서 호텔로 들어가는 택시도 출발 전에 트립닷컴에서 미리 예약해 둔 상태였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인도인 기사에게 물어보니 박물관은 호텔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짐을 풀고 바로 취침 후 아침에 일어나서 밀린 업무를 보고 오후 시간에 길을 나섰다. 사막의 날씨가 너무 뜨겁지 않을지 걱정했지만 오후가 되니 바람이 불어서 걸을 만했다. 

카타르국립박물관은 도하의 뮤지엄스트리트의 끝에 있었다. 멀리서도 연분홍색 원형판들이 엉키어 있는 모양의 박물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발걸음을 서둘러 가까이 다가갔다. 사진으로만 수없이 보아왔던, 장 누벨이 ‘사막의 장미(Desert Rose)’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는  카타르 국립박물관(NMoQ·National Museum of Qatar)이 정말 내 눈앞에 있었다. 

‘사막 장미’라고 하면 사람들은 “사막에도 장미가 핀다고?”라고 하며 의아해하는데 이 장미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장미꽃이 아니라 모래와 미네랄이 엉켜 장미모양의 결정체로 굳어진 것이다. 장 누벨의 작품은 포스트모던 건축이 가장 수준 높게 표현된 경우라고들 한다. 그는 특히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살리고, 하이테크 한 재료와 현대의 기술로 유니크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건축물을 창조한다. 2019년 3월 공식 개관한 카타르 국립박물관 건물은 그동안 진화해 온 장 누벨 건축의 가장 최첨단에 있는 것 같았다.

카타르국립박물관은 과거 카타르를 통치했던 셰이크 압둘라 빈 자심 알 타니(Sheikh Abdullah bin Jassim Al Thani, 1913~1949)의 역사적인 궁전인 올드 팰리스(Old Palace)가 있는 13만 5000㎡의 부지에 지하 1층~지상 5층, 연면적 4만 6596㎡ 규모로 지어졌다. 외관은 직선이나 직각이 거의 없이 원형판(Disk)들로 이뤄진 비정형 건물이다. 316개의 원형판이 건물 전체를 이루는데 서로 뒤섞이고 맞물리면서 만들어낸 독특한 형태이다. 

곡률과 직경이 제각기 다른 디스크들이 엇갈려 엮인 형태의 이런 비정형 건물을 어떻게 시공했을지 정말 신기한 생각이 드는데 이 어려운 공사를 진행한 것이 우리 현대건설이라고 하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현대건설에서 온라인상에 남긴 글에 따르면 우선 철골로 사막 장미 모양의 구조체를 세운 뒤 7만 6000여 장의 섬유 보강 콘크리트(FRC·Fiber Reinforced Concrete) 패널을 원형판에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디스크(꽃잎) 하나를 완성하는데 4개월 이상 소요될 만큼 정교한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창조자(장 누벨)의 머리에서 나온 디자인은 마치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아서 섞이지 않도록 패널마다 바코드를 부착해 디스크별로 추적·관리했다. 또 세계 최초로 3차원 빌딩정보시스템(3D BIM·3 Dimension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을 건축 전 과정에 도입해 시공오차를 줄였으며 실제 건축물의 3분의 1 크기로 축소한 사전건축물(Mock-Up)을 제작해 각종 품질검사를 실시했다. 

반 바퀴를 돌아서 디스크가 겹쳐져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진입로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섰다. 엇갈려 누운 디스크들은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며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마당에서 열리고 있는 에르메스(HERMES)의 팝업전시를 잠시 보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외부의 모양이 내부까지 이어져서 디스크의 단면들이 엇갈려 천장과 벽에 배치되어 어디에서도 네모지거나 각진 공간을 볼 수 없었다. 바닥은 평평하지만 벽도 대부분이 곡선이고 수시로 디스크들이 지나가고 기둥이 비스듬히 서있는 기둥이 원반을 받치고 있는 비정형의 내부다. 일반적으로 보아 온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내부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 어떻게 전시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카타르국립박물관은 카타르 정부가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온 문화 프로젝트로 2005년 설립된 예술 및 문화기관인 카타르 뮤지엄즈(Qatar Museums, QM)가 관리하고 있다. QM은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아미르 국왕(His Highness the Amir, Sheikh Tamim bin Hamad Al Thani)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셰이카 알 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의장(Her Excellency Sheikha Al Mayassa bint Hamad bin Khalifa Al Thani)이 주도하고 있으며 예술, 문화 및 교육에 있어 카타르가 중동과 그 외 지역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 그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카타르국립박물관이고, 미래를 향하는 카타르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가 되었다.

카타르 국립박물관(관장 압둘아지즈 알 타니)은 카타르의 역사를 보존하고 기념하면서 현시대와 소통하는 동시에 국가가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는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 유물, 구술 역사, 음악, 영화 및 예술 작품 등을 통해 카타르의 문화와 유산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사막의 유목민이 세운 카타르가 어떤 역사와 문화적 바탕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발전해 왔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12개의 전시장에서 테마별로 보여준다. 방문객들은 엇갈려 있거나 둥글게, 혹은 옆으로 길게 있는 건물 내벽에 다양한 영상들이 화려하게 상영되고 있는 1.5km에 달하는 갤러리를 둘러보며 몰입감 넘치는 다감각적인 여정을 즐길 수 있다. 유럽의 박물관을 생각하면 소장품 수준은 빈약하기 그지없으나 건물 자체의 디자인이 콘텐츠를 풍성하게 만들어 보여준다. 앞서 다녀온 사람들은 카타르박물관에는 볼거리가 없다고 하던데 건물 자체가 이루는 공간을 완벽하게 활용해 전시구성을 해 놓은 것은 정말 대단하다. 

2층에 있는 뮤지엄샵의 모양은 사막의 장미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독특하다. 뮤지엄샵에서는 ‘사막의 장미’ 원석을 판매하고 있었다. 색깔은 진한 갈색이고 둥근비늘 모양이 엉켜있는 덩어리다. 그냥 보아 넘기면 돌덩어리일 뿐인 사막의 장미를 보고 이런 건축물을 상상하다니, 장 누벨은 정말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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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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