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전시]무나씨,《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12월 12일 ~2026년 2월 13일, 스페이스K 서울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검은 색의 먹으로 그려진 인물들에는 표정이 없다. 나이도, 성별도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다양한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명상적인 이미지들이 언제부터인가 SNS 상에서 화제가 되었고, 미술품 컬렉터인 방탄소년단 (BTS)의 RM이 작품을 소장했다고 해서 더욱 화제가 됐던 작가 무나씨(본명 김대현, b.1980) 의 첫 미술관 개인전이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린다.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The Season We Fade Away)》라는 제목으로 12일부터 내년 2월 13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여러 수집가에게서 빌려온 작품 14점과 새로 제작된 신작 18점 등 총 32점이 출품됐다. 빌려온 작품 중에는 RM이 소장한 ' 영원의 소리'(2023)도 포함되어 있다. 검은 배경에 세 인물이 있는데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은 말을 하고, 한 사람은 듣고, 한 사람은 들으려는 사람의 귀를 막고 있는 묘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품으로 RM은 양주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와 직접 구입했다.

2959_10130_5852.jpg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The Season We Fade Away)》에 출품된 작품 중 RM이 소장한 ' 영원의 소리'(2023) (사진 함혜리)

홍익대 동양화과를 나온 무나씨는 대학 졸업 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2009년 첫 개인전을 통해 화가로 데뷔했다. 작가명은 불교 용어 '무아'(無我)에서 나온 것인데 대학 때 글을 쓸 때부터 사용해 왔다. 그는 한지에 먹과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무표정한 인물들로 감정의 흐름을 표현한다. 전시 개막에 앞서 만난 작가는 " 인물만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일종의 무언극으로 제 작품을 바라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품에서는 무언극의 배우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하얀 배경에 인물들만 그리던 기존의 작업들과 달리 최근 작업에서는 인물과 함께 물, 돌, 나무 같은 자연물이 감정을 드러내는 은유적 장치로 쓰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 하는 물은 물리적 특성인 수용성과 유동성을 강조하며 나를 마주하는 거울 또는 감정을 흘려보내는 매개체로 역할 한다.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물결로 시각화해 내면의 움직임을 화면에 담는다. 그러면서 관계와 감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회화에서 무엇이 드러나고, 사라지는지를 탐색한다.

2959_10131_2927.jpg 무나씨의 2025년 작품 '나는 저기 그것'과 '나는 여기 이것'

2025년 작 '나는 저기 그것'과 '나는 여기 이것'에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인물과 수면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내가 타자를 바라볼 때 그 사이에 있는 수면에 비친 나 자신, 그리고 타인의 이미지가 겹쳐졌을 때 보여지는 환영같은 것을 그린 것이다. 작품 '찰랑'(2024)에서는 두 인물이 물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인물의 움직임으로 인해 출렁이는 물결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감정을 표현한다.

한 사람이 누워있고, 또 다른 사람이 뒤에 누워 껴안고 있는 모습을 담은 '석원'(2025)에는 돌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전에는 나와 타자 사이에 경계를 강하게 긋고 벽을 세워서 나 혼자만의 자유를 추구했다면 지금은 타자와 경계 없는 관계에서 느끼는 자유의 감정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스며들듯이 느낌 자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며 "작년부터 물과 불, 바람, 돌 등 자연물을 가져와 감정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데 물이 공포와 편안함의 감정을 표현하고 돌은 안정감이나 나를 보호해 주는 것들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2959_10132_3228.jpg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는 무나씨의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에 전시된 '석원' (2025)

작가의 화면에는 주로 두 인물이 함께 등장한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태도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작가는, 스스로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사이의 경계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두 ‘나’를 한 화면 안에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서로 충돌하던 내면이 화해를 모색하는 과정을 은유한다. 전시명에도 쓰인 작품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2025)는 한겨 울 눈에 뒤덮인 두 인물을 보여준다. 차가운 눈밭에 엎드린 인물과 그를 끌어안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의 모습에서 서로를 향한 끈끈한 유대감과 동시에 고립의 정서가 함께 떠오른다. 작가는 "경계를 허무는 것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에서 경계가 지워지는 것을 상상하면서 제목을 지었다"고 말했다.

인물은 무표정하고 모두 검은색으로 묘사하는 대신 작가는 인물의 시선, 손짓, 몸의 자세로 감정을 표현한다. 화면 속 인물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요가 동작을 하며 함께 어울리고 있는 '각자의 도와 생', 두 사람이 흙으로 자기 마음을 빚어 상대방에게 내미는 '잘 빚은 마음' 등 사람과의 관계와 마음을 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2959_10136_4915.jpg 무나씨, 각자의 도와 생'

이번 전시의 대표작품인 '고사관수도'(2025)와 그 아래 7m 길이의 병풍 작업 '마음을 담아'(2025)는 무나씨의 작품 특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고사관수도'는 조선 전기 화가 강희안의 산수 인물화 '고사관수도'에서 영감을 받은 동명의 작품으로 한 인물이 고요히 아래를 관조한다. '마음을 담아'에는 빛이 반사되는 잔잔한 수면과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있고 다른 사람이 그 눈물을 받아 수면에 띄우니 연꽃이 되어 수면에 별처럼 떠서 뒤의 인물이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두 인물의 뒷모습과 자세는 치열한 내면 탐구의 시간을 지나 이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듯하다. 작품 앞에 놓인 방석에 앉아 잠시 자신의 감정을 내려놓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2959_10137_4942.jpg 마음을 담아, 2025, Ink on Korean paper, 140 x 700 cm


2959_10133_3412.jpg 무나씨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The Season We Fade Away)》 전시전경 (사진 함혜리)

감정을 주제로 삼는데 대해 작가는 "인간의 감정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부분이고, 제가 유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나의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다양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으로 어떻게 해소 하는지 등 여전히 표현할 것이 많은 영역이기 때문에 감정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959_10134_3657.jpg 강서구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인전을 갖는 작가 무나씨가 작품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앞에 서 있다. (사진 함혜리)

작가는 "관계와 감정에 대한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지만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고 가장 두려운 것이 내가 가진 감정을 마주하는 일"이라며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주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작업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인물의 숫자가 한명이거나 둘, 혹은 셋, 혹은 여러명으로 달라지지만 이미지는 한결같이 검은 색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하면서 들은 '검은색만으로 온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에 매료됐고,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어둠을 좋아하기도 해서 검은 색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검은색 안에서도 먹에만 한정짓지 않고 아크릴, 잉크 등 다양한 검은 색으로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무나씨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선을 그으며 보낸 시간들을 작품을 보면서 느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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