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만나다》화이트큐브 서울 , 2026. 1.21~3.7
서로 다른 배경을 지녔지만 타향에서 각자의 예술적 언어를 형성한 두 여성 작가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해 서울에서 조우했다.
화이트큐브 서울에서는 레바논 출신으로 파리를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에텔 아드난(1925∼2021)과 한국 전쟁 기간 중 세 아들과 이별하고 프랑스 파리로 떠나 작업한 이성자(1918∼2009)의 2인 전《태양을 만나다》가 21일부터 3월 7일까지 열린다. 이주와 망명, 그리고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예술적 언어를 구축해 온 두 작가의 작업을 하나의 대화로 엮는다. 에텔 아드난의 작품이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되는 자리이기도 한 이번 전시에는 두 작가의 회화와 태피스트리, 판화 작업 등 19점의 작품이 나란히, 번갈아 가며 화이트큐브 서울의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마치 한 작가의 다른 작품인 것처럼 두 작가의 예술적 언어는 자연스럽게 공명하고 각 작품의 색감이나 질감은 따로 있을 때보다 나란히 함께 있을 때 훨씬 시각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화이트 큐브 글로벌 아트 디렉터 수잔 메이는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지닌 아티스트의 작업을 대화하듯 엮어내고자 기획한 전시“라며 ”에텔 아드난과 이성자는 서로 다른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고, 고향을 떠난 이주민이며, 독자적인 조형 언어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공통점이 이들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을 잇는 또 다른 주제는 '우주'로 전시 제목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에도 반영이 되어있다. '태양을 만나다'는 작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하던 아드난이 1968년 발표한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죽음을 기리며 쓴 시의 구절에서 가져왔다.
메이 디렉터는 “이들이 활동하던 1960년대 달탐사를 계기로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은 두 작가에게 중요한 창작적 동력으로 작용했다”며 “두 작가는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사유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우주’라는 공통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이성자의 작업은 고요하게 떠오르는 선, 사각형, 원 등 원초적인 형태들이 지구의 경계를 초월한 우주적 공간 질서 안에서 연결돼 작동하는 듯이 보인다. 이성자는 1995년~2008년 ‘우주시대’ 연작을 남겼다.
당대의 우주론적 상상력은 에텔 아드난의 글쓰기에 영감을 주었으며 회화와 태피스트리에서 천체의 형태가 점점 더 빈번하게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원형과 공중에 떠 있는 사각형은 해와 달을 환기했고, 지평선은 간결한 색의 띠로 환원됐다. 강렬한 색면에 의해 화면의 이차원성이 부각되면서 풍경은 새로운 관점에서 구성됐다.
두 작가는 모두 30대 이후 작업을 시작했으나 각자가 처한 환경은 다소 달랐다.
이성자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정에서 결혼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당시엔 용납되지 았았던 이혼을 감행하고 프랑스로 이주하며 깊은 단절을 겪는다. 세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이성자는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소외와 남성 중심의 추상 미술계에서 자신의 예술적 위치를 찾아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1953년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 입학 후 서구 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고, 앙리 괴츠(Henri Goetz) 문하에서 추상미술의 어휘를 배워나갔다.
우주와 무의식에 관심을 두는 초현실주의에 경도됐던 스승 괴츠의 가르침은 이성자의 회화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초기 구상시대의 단단한 붓놀림이 해체되고 흩어진 작은 붓자국들이 이룬 성좌와 다양한 색의 면이 중첩된 표면과 제스처가 화면을 채웠다. 1950년대 후반 작업에서 고향에 대한 기억과 모성의 속성을 기하학적 형태와 화면의 질감에 담아냈던 작가는 이후 1961~1968년 <여성과 대지(Woman and Earth)> 시리즈 , 1969년 뉴욕 여행 중 영감을 받은 <도시(City)> 연작 등으로 이어지는 다층적인 시각적 언어를 구축했다.
아드난은 파리에서 예술가의 길을 걷기까지 이성자와는 다른 굴곡진 과정이 있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미국에서도 공부했다. 미국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1972년 고향으로 돌아갔고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1977년 레바논 내전의 참상을 다룬 소설 ‘시트 마리 로즈’를 출간해 ‘프랑스 아랍국가상’을 받기도 했지만 이 소설로 인해 결국 조국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아드난은 캘리포니아에서 거주하며 강의하던 시기에 서부의 빛과 풍경을 색과 면으로 표현하며 회화 작업으로 발전시켰다. 훗날 파리에 정착한 이후, 단절의 경험은 보다 정제된 추상 회화 언어로 응축된다. 아드난은 팽팽하게 당져진 캔버스를 작업대에 수평으로 펼친 후 순수 안료를 그대로 얹어 색의 면들을 만들어 냈다. 색의 면과 띠가 맞물리며 이루는 화면은 멀리서 바라보면 안온한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색 표현은 1960년대 태피스트리 작업으로도 이어져, 색채 어휘를 보다 느리고 손끝이 감각하는 매체로 변주한다. 이성자가 작은 붓질로 여러 번 칠하는 작업 방식은 마치 바늘로 직조물을 만든 것 같다.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았고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체류했지만,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의 시대적 배경은 전혀 다르다. 이성자의 작품은 주로 1960년대 것이지만 아드난의 작품은 2010년부터 파리에서 별세한 2021년까지로 말년의 작품들이다. 타피스트리 작품 ‘ 황폐한 해변’과 ‘Farandole’는 1960년대 처음 제작되었고 2022년 재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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