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전시] 행위예술 이건용의 '사유하는 몸'

2.5-3.28, 페이스갤러리 서울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네모난 합판 위에 흰 분필로 원을 그린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 원 가운데, 원 너머를 가리키며 외친다. “여기, 저기, 거기.” 그리고 다시 원을 넘어가 등진 상태에서 뒤를 가리키며 외친다. “거기.” 그런 다음 분필로 그은 원 위를 걸어가며 “어디, 어디, 어디”라고 외친다.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중 행위미술의 중추적인 인물로 꼽히는 이건용(b. 1942)이 4일 그의 개인전《사유하는 몸》이 열리고 있는 이태원 페이스갤러리에서 보여준 퍼포먼스 ‘장소의 논리’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아리송하다. 이 퍼포먼스를 발표한 1975년 당시의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퍼포먼스를 마친 뒤 작가는 “원 하나를 그은 것은 정확한 하나의 설정이고, 내가 지정한 장소성을 정확하게 소통한 뒤 그 설정된 한계 속에서의 관계성을 보여주려 했다”면서 “여기, 저기, 거기는 절대 좌표가 아니라 각자가 서있는 자리와 몸의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고 말했다. 마지막의 ‘어디, 어디, 어디’는 그 관계의 정확성을 되짚는 행위인 듯하지만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에 담긴 의미를 과잉 해석하진 말라”고 했다. 지나친 상징과 거대한 철학을 덧씌우면 바로 그 정확한 설정이 흐트러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정확하게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늘 생각해서 중학생 때부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혼자 공부했다”면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고 했던 말을 가슴에 안고 언어의 정확성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고 말했다.

2월 4일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이건용작가가 '신체의 논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뒤의 벽에는 1975년 발표한 퍼포먼스 '신체의 논리' 사진이 걸려있다.(사진 함혜리)

그가 ‘신체와 정확성’을 주제로 다양한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인 1970년대 그의 작업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저항’으로 읽혔다. 고등학교 미술교사 시절 시도했던 작품은 지하에 폭발물이 장치되어 있을 것이란 억측을 불러 파헤쳐졌고, ‘정권 비판적’인 퍼포먼스 때문에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되어 고문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는 ‘작품발표 금지’ 통보를 받았는데 이건용은 그 문서를 동료들 앞에서 퍼포먼스처럼 태워버렸다.

이런 웃지 못할 일화를 들려주면서 이건용은 “감시를 받는 예술가였음에도 국립군산대학교 교수레 임용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그의 퍼포먼스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세상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며 “나를 ‘돈 사람’이나 ‘틀린 사람’이라고 했던 부분들이 내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동력이 됐다”고 답했다.

페이스갤러리에서 2월 5일부터 3 월 28 일까지 열리는 이건용의 개인전 《사유하는 몸》은 작가의 예술 활동 50 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1970 년대 중반에 초연된 초기 퍼포먼스의 기록 영상과 사진, 작업 노트 등 역사적 의의가 깊은 아카이브 자료를 비롯해 회화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다. 전시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신체와 논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전개 속에서 이건용의 실천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조망한다.

1970 년대 중반부터 신체를 매개로 한 수행을 본격화한 그는 이를 ‘퍼포먼스’가 아닌 ‘이벤트’, 이후에는 ‘로지컬 이벤트(Logical Event)’로 지칭했다. 걷기, 먹기, 손의 움직임과 같은 일상적 행위는 단순히 즉흥적 제스처가 아니라, 신체·공간·시간의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형식적 실험으로 확장되었으며, 작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다양한 매체로 이어왔다.

전시는 사진, 작가 노트, 영상 작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건용에게 퍼포먼스의 기록은 행위 이후에 남겨진 부산물이 아니라, 기존에 설정된 논리를 다시 읽고 재구성하는 작업의 또 다른 단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 작업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실천을 폭넓게 아우르며, 1970 년대에 형성된 그의 논리적 실험이 이후 시기까지 지속되고 확장되어 온 방식,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핵심 맥락을 조명한다. 특히 ‘동일면적’(1975),‘실내측정’(1975)의 초연 영상과 ‘건빵 먹기’(1977), ‘화랑 속의 울타리’(1977), ‘손의 논리 3’ (1975) 등 당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들을 작품으로써 처음 공개한다.

1975년 백록화랑에서 열린 《오늘의 방법》전에서 처음 선보인 ‘동일면적’과 ‘실내측정’은 길이와 면적을 측정한다는 단순한 규칙을 설정한 뒤, 종이를 접고 펴거나 테이프를 자르고 잇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공간과 신체, 오브제 사이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드러낸 작업이다.

이건용의 퍼포먼스는 과거의 사건으로 고정되기보다, 기록을 통해 끊임없이 현재의 문제로 다시 독해된다. 신체를 통해 수행된 논리와 그 흔적은 관객으로 하여금 행위와 구조, 그리고 기록 사이의 관계를 차분히 따라가도록 이끈다.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이건용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주요 인물이자 한국 전위 예술 그룹 ST(Space and Time)의 창립 멤버로 신체와 행위가 시간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 행위미술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75년 스스로 이벤트(Event)라 명명한 퍼포먼스 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며, ⟨장소의 논리⟩(1975), ⟨이어진 삶⟩(1977),⟨달팽이 걸음⟩(1979) 외 다수의 퍼포먼스 실연을 통해 신체를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매체로서 활용했다. 가장 잘 알려진 신체드로잉 연작 중 하나인 《바디스케이프(Bodyscape)》(1976~)는 이러한 방법론을 확장해 회화와 미술 제작의 기존 방식을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신체를 매개로 작업하는 그에게 85세인 지금의 신체는 50년 전과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 또한 즐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50년 전과 비교해 나이도 많이 들었고 신체의 변화도 있는데 그게 재미있는 거예요. 손이 떨리고 기운이 빠지면 그 나름대로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거든요. 건강하는 노쇄하든 몸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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