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커피 : 좋은맛나쁜맛

역시 커피는 진한 쓴맛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글 이진성 (코니셔커피클럽 대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은 어떤 맛일까? 특색 있는 맛있는 짜장면이 너무 많아 어느 것이 최고라고 정하기 힘들다. 최고의 짜장면을 정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짜장면에 대한 취향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커피도 마찬 가지로 좋은 맛을 정의할 때 누군가가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난 동의할 수 없어”라고 한다면? “그래. 네 의견도 맞아. 취향을 존중해야 하니까.”라고 해야 되나?

절대 아니다. 커피에는 좋은 맛과 나쁜 맛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존재한다.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커피는 수백 년 이어진 커피맛과 향에 대한 연구 결과가 수도 없이 존재하며 커피를 마셔보고 평가하는 평가자(taster)가 작성한 관능검사의 결과와 그 결과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향미 분석 데이터가 많이 축적돼 있다. 즉, 좋은 맛과 향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확립되어 있다는 얘기다.

수많은 훌륭한 맛의 커피가 존재하므로 이것이 최고의 커피라고 특정하기 어렵다면 가장 비싼 커피를 기준으로 좋은 맛과 향을 정하면 되는 것 아닐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기준은 커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커피가 가장 맛있는 맛과 향을 지닌 커피라고 할 수 없는 것은 희소성이라는 요인이 맛과 향 자체보다 가격에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좋은 커피 맛과 향에 대한 연구는 우리에게 커피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앞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커피를 마실 때 ‘세포벽이 타서 나온 나쁜 맛과 냄새’란 이걸 말하려고 했던 거로구나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몇 번 쌓이면 커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해진다. 생두 종류에 따른 커피맛과 향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알아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종류 불문 모든 커피 안에 존재하는 좋은 맛, 나쁜 맛에 대해 알아보겠다.

모든 커피 안에는 좋은 맛과 나쁜 맛이 공존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 두 가지 맛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아야 커피의 추출방식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커피콩 안에는 서로 다른 위치에 좋은 맛, 나쁜 맛이 경계를 이루며 이웃해 있다. 좋은 맛은 커피 세포벽 안에 위치한다. 세포벽에 눌어 붙어있는 이 좋은맛 부분을 쉽게 설명하면 탄수화물, 기름, 단백질, 여러 당분들 수분 등이 열에 의해 성질이 변하며 생긴 물질들이다. 나쁜 맛은 나무와 같은 목질의 세포벽이 타며 생긴, 말 그대로 나무 탄맛이다. 좋은 맛은 커피가 볶여질 때 세포벽 안쪽에 눌어붙어 있는 수용성 고형분이고 나쁜 맛은 열에 의해 탄 세포벽에 포함되어 있다.

볶은 커피 속 구조를 전자현미경으로 찍어 얻은 흑백 이미지에 색을 입힌 이미지


위의 사진은 볶은 커피 속 구조를 전자현미경으로 찍어 얻은 흑백 이미지에 색을 입힌 이미지다. 청회색 부분이 세포벽, 황갈색 부분이 세포벽에 눌어붙은 수용성 고형분, 수용성 고형분 위에 방울방울 붙어있는 것이 커피 오일이다.

컬러화 된 전자현미경 이미지를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십여 년 전 일이다. 좋은 맛 나쁜 맛의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게 된 것도 위의 사진과 같은 연구의 결과이다. 청회색 세포벽에 붙어있는 황갈색 부분 즉 수용성 고형분층이 좋은 맛을 내는 부분이고 방울진 커피 오일이 향을 내는 부분이다. 청회색 세포벽에 포함된 탄맛은 나쁜 맛이라고 정확히 구분 지어 얘기할 수 있다.

나쁜 맛이라고 단정 지어 부를 수 있는 것은 세포벽이 탈 때 나는 맛은 커피맛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화학약품 같은 탄내이기 때문이다. 세포벽은 나무와 같은 목질(wood)인데 나무는 섬유질과 그것을 붙이는 수지(resin)로 구성돼 있으며 우리가 숯을 구우면 섬유질 부분만 남고 수지 부분은 녹아 타서 연기로 날아간다. 장작을 태울 때 눈이 매운 이유는 수지 부분이 타며 탄내와 연기를 내기 때문이며, 수지가 제거된 숯이 탄내와 연기가 훨씬 덜한 것은 이런 이유이다.

커피의 세포벽도 커피를 볶을 때 수지 부분이 타는데 이 탄 냄새가 세포벽 안에 남아 있는 것이 나쁜 맛이다. 다행히도 커피의 수용성 고형분은 물에 빨리 녹고 오일은 수용성 고형분과 함께 추출되어 나오기 때문에 수용성 고형분, 커피 오일 모두 세포벽의 탄내에 비해 빨리 녹아 나온다. 이 시간차를 이용하여 수용성 고형분과 오일을 뽑고 세포벽의 탄내가 녹아 나오기 시작할 때 추출을 멈추게 만든 것이 에스프레소 추출 방식이다. 커피의 좋은 맛은 최대한 많이, 나쁜 맛은 최소한으로 뽑아서 마시는 커피 안에 추출해 넣기 위해 기구를 개선하고 발전시켜 온 것이 현재의 에스프레소 기계이다.

KakaoTalk_20190917_131956421-Custom-2.jpg?w=1080&ssl=1 커피의 좋은 맛은 최대한 많이, 나쁜맛은 최소한으로 뽑아서 마시는 커피안에 추출해 넣기 위해 기구를 개선하고 발전시켜 온 것이 현재의 에스프레소 기계다.


커피는 깨끗한 쓴맛과 쓴맛에 뒤에 숨은 신맛, 코로 느끼는 향의 조화가 좋은 커피의 정의라고 했다. 굳이 깨끗한 쓴맛이라고 쓴 이유가 바로 이 세포벽이 타며 나는 맛과 냄새가 없는 맛이라는 의미이다. 수지가 탄 냄새는 어떤 경우에도 깨끗한 쓴맛을 선사하지 않는다. 에스프레소 기계를 이용해 추출할 경우 세포벽의 탄맛이 나오려고 하는 순간 추출을 중단시키므로 세포벽의 탄내에서 다른 추출 방식에 비해 자유롭다. 즉 강하게 볶아도 탄내가 많이 나지 않는다. 신맛이 쓴맛에 숨게 만들 만큼 강하게 볶을 수 있다는 얘기다.

KakaoTalk_20190916_154952574-Custom.jpg?w=1080&ssl=1


KakaoTalk_20190916_154829252-Custom-1.jpg?w=1080&ssl=1 드립커피


필터 드립으로 추출할 경우 이 정도로 강하게 볶으면 약하게 볶을 경우보다 탄내가 많이 난다. 탄내가 나지 않게 하려면 커피를 연하게 볶을 수 밖엔 도리가 없다. 필터 드립 추출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하면 신맛을 내는 성분들인 식초(acetic acid), 개미산(formic acid), 말릭 산(malic acid)들이 수용성 고형분 중에서도 물에 빨리 녹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리게 추출되는 수용성 고형 분내 쓴맛 뒤에 숨어 있을 수가 없이 커피맛을 시게 만든다. 필터 드립으로 뽑는 것을 전제로 탄맛을 없애기 위해 커피를 연하게 볶아 커피 본연의 진한 쓴맛은 안 나고 시큼한 맛이 나는 커피를 자두맛이 난다든지 복숭아, 사과의 새콤한 맛이 난다고 하는 것은 커피맛을 왜곡하는 것이다. 커피는 누가 뭐래도 ‘진한 쓴맛’으로 마시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명언과 인문학의 로맨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