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매 May 24. 2022

못 해도 그냥 할 거예요

<매트 위의 사람들> 1 






2022년 3월 21일 월요일, 춘분 


새로운 회원님이 오셨다. 도톰한 검정색 집업자켓을 입고 조심스럽게 들어와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매트를 펴셨다. 오늘 함께 할 요가는 아쉬탕가 요가라고, 순서가 정해져 있고 조금은 어려울 수 있지만 따라 하실 수 있도록 잘 알려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행동은 조심스러웠지만 어떤 결심 같은 것이 그분의 표정에서 읽혔다. 눈빛은 많은 걸 말해준다. 수업에 함께 한 분들에게 고루 관심을 둬야 하지만 처음 오신 분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집업자켓도 양말도 벗지 않고 수련을 시작한 그분 옆에서 계속 아사나를 보여드리고 다운독에서의 발 간격도 조정해 드리며 머물렀다. 너무 힘들지는 않으셨을까,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끼셨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며. 


수업이 끝나고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그 회원님을 마주쳤다. 수련실에서 나가실 때는 급하게 인사를 하셔서 잘 못 여쭤봤는데, 잘 됐다 싶어서 어떠셨냐고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 

"너무 시원하고 좋아요. 열심히 할게요. 저는 못해도 그냥 할 거예요." 

많이 놀랐다. '너무 시원하고 좋아요'는 의지적인 다짐 비슷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저는 못해도 그냥 할 거예요'라는 말을 듣고는 마음이 놀라서 딱 멈춰버렸다. 1층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걸어가면서도 그 문장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나보다 훨씬 삶을 오래 사신 분이, 몸과 마음에 담긴 사연이 훨씬 많을 분이 그런 말씀을 글도 아닌 말로 하시다니. 그날 밤, 받은 격려와 감동을 곱씹으며 부지런히 마음에 새겼다. 


가볍고 즐거우면서도 강력했던 그분의 말은 내가 수련을 할 때에도 또 다른 낯선 순간을 만날 때에도 종종 떠올랐다. 내가 그날 이렇게나 감동받았다는 걸 그분은 아실까. 조금 더 자주 뵙고, 그 마음을 전수받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