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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Mar 16. 2024

시절인연




  한 달이 끝나면 블로그에 그 달에 있었던 일을 사진과 함께 기록한다. '일상사진집'이라는 머리말을 단 이 카테고리는 2021년부터 시작되어 벌써 꽤 많은 글이 모였다. 가끔 아주 무료한 날이면 몇 개월 전의 일상사진집을 열어보곤 한다. 평범하기만 했던 것 같았던 나의 일상에 참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때와 지금이라는 시간의 간극에서 새롭게 생겨난 관계과 희미해진 관계들을 본다. 한 때는 열심히 만나고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서로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가 전부인 관계. 아쉽다기보다는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구나 싶다.

  

  요가를 업으로 삼으면서부터는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게 되었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만나는 친구는 두 명 정도가 전부인데 요즘 내 주변에는 안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꽤 가까워진 관계들이 많다. 사람들을 사귀면서 새로운 내 모습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의외로 사람들을 쉽게 좋아하고 일단 좋아하게 되면 선물이든 말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더 크게 칭찬하고, 그가 좋아할 만한 것이 있으면 생각해 뒀다가 작은 선물을 하기도 한다. 내향적이었던 내가 스스로 관계를 넓히고 있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즐겁다.


  관계가 얼마나 갈까 생각하고 시작하지는 않지만 지나간 시간들을 보면 각 관계들은 유효한 기한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주어진 환경이나 관심사, 물리적 거리가 달라지면 한때 가까웠던 관계들도 금세 잊혀 버리니 말이다. 최근 요가원에서 알게 된 H 선생님이 카카오톡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아까 시절인연 얘기했는데 선생님과의 인연은 오래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네요'

  고마워서 대화창을 캡쳐해 두었다. 그리고 문득 우리는 시절인연을 이미 여러 번 겪어 너무나 잘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종류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


  모든 관계 사이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의 시절인연. 전에는 멀어질 것을 미리 말하는 단어 같아서 쓸쓸한 기분이 들었는데 요즘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작은 욕심으로 자주 안부를 전하고 그 사람이 떠오르는 물건이 있으면 뜬금없이 선물을 건네면서, 흘러온 인연을 귀하게 여긴다면 내가 붙잡아둘 수 있는 인연도 있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하나의 긴 시절을 내내 함께 하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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