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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Mar 22. 2024

봄과 꿈

나의 꿈에 대하여 






  아침 5시 50분쯤 일어나 20분간 간단한 준비를 하고 자동차키와 수건을 챙겨 집을 나선다. 요가원에 가서 2시간 정도 아쉬탕가 수련을 한다. 오전 수업이 있는 날이면 수업 장소로 이동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곧장 집으로 돌아온다. 간단하게 식사를 챙겨 먹고 정리를 한 뒤 오후 한두 시쯤 낮잠을 잔다.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처럼 꽉 차오른 에너지로 남은 집안일과 독서, 그 밖의 할 일을 조금 한 다음 저녁 수업을 하러 간다. 저녁 수업을 마치면 보통 10시 반 정도가 된다. 집에 돌아와 씻고 유튜브도 보며 쉬다가 잠을 청한다. 

  직장인으로 살다가 전업 요가 강사가 된 지 3년째, 나의 일상은 이렇게 흘러간다. 자유롭게 스케줄을 조정하고 활동할 수 있는 프리랜서지만 내 일상은 단조로운 편이다. 비슷비슷한 일상에서 대체로 안정감을 느끼지만 가끔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조금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여기가 끝인가? 하는 질문이 어딘가에 고여 있다가 둥실 떠오른다. 


  며칠 전에는 낮잠을 자다가 악몽을 꿨다. 좋지 않은 기분을 어서 털어버리고자 백팩에 노트북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익숙한 거리를 걷는데 봄기운이 느껴졌다. 내내 바라던 봄이 왔구나 하며 여행 온 사람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문득 '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떠올랐다고 해야 할지 떠올렸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꿈'이니까 어쩌면 나는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꿈이라는 단어에는 조금 머쓱하고 오글거리는 구석이 있어 멀리 했던 것 같다. 

  꿈을 말하는 일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본다. 몇 해 전 회사를 다닐 때였다. 지방 출장이 잦았던 우리 팀은 그날도 양재동에서 출발해 저 멀리 거제로 가고 있었다. 내가 운전을 했는지 팀장님이 했는지 기억이 흐려졌다. 어쨌든 우리는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멀리 뻗은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팀장님이 말을 꺼냈다. 꿈이 있냐고 물었다. 흔히 직장에서 있는 선배의 훈수 두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질문 자체였고 일이 아닌 삶을 묻고 있었다. 얼마 전에 본인이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누군가 꿈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고 약간은 충격을 받았다고, 그래서 아직도 꿈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거구나 싶어 이렇게 말을 꺼낸다고 했다. 나 또한 팀장님의 질문에 충격을 받았다. 다 큰 우리가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꽤 신선하고 좋은 일이구나, 싶었다. 


  봄이 내려앉은 거리를 걷다가 다시 꿈을 떠올렸다. 내가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요가 강사가 되는 것도 꿈이었으니 어느 정도 꿈을 이루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더 낮은 집,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지금도 땅과 가까이 있고 싶어 일부러 저층을 골라 입주했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그날의 날씨를 온몸으로 맞이할 수 있는 주택과는 분명 다르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 대한 추억이 각별해서 지금도 여전히 몸과 마음이 지치는 날이면 옛날 시골집과 닮은 주택에 사는 삶을 상상해 보게 된다. 몇 해 전, '꿈'이라는 글감으로 이런 글을 썼다. 

  오늘은 이삿날. 아내라는 명패, 며느리라는 명패를 모두 박스에 넣고 단단히 봉한다. 경북의 시골 마을,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그곳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할머니의 소원을 이루는 날이기도 하다. 꿈같던 이야기. 할머니 집 뒤로 펼쳐진 너른 땅에 집을 지었고 2주 전 완공됐다. 이 멋진 전원주택에는 귀여운 막내고모, 정 많은 큰고모, 게으른 아빠가 함께 산다. 옥탑방은 내 방으로 남겨주셨다고 한다. 역시 할머니는 내 취향을 잘 아신다.
  이 집에서는 모두가 자유롭다. 맡은 바 없이 살아가고, 흐르는 시간을 알차게 쓰지 않는 것에 죄책감 같은 건 없다. 그저 여름이 오면 우거진 초록을 만끽하고 통통한 옥수수를 골라 푹 쪄 먹는 걸로 충분하다.
  너무 집에만 있기엔 심심하니까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요가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사랑방 앞 넓은 마루에서 삐걱삐걱 나무 소리를 내며 균형을 잡아본다. (중략) 햇빛 아래에서 신나게 재채기하며, 그렇게 더 많은 것들을 또렷하게 감각하며 살고 싶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하고 다소 비생산적인 것 같아 부끄럽지만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게 내 꿈이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며 살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꾸는 건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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