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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Apr 26. 2024

첫 마음





  지난 화요일 밤 요가 수업이 끝나고 아영 선생님과 둘이 센터에 남았다. 그날따라 회원님이 많이 안 오시기도 했고 늦은 밤시간이라 평소보다 좀 더 쉽고 편안한 동작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앞자리에서 간간이 눈웃음을 보내주던 아영 선생님은 그날의 수업이 좋았나 보다.  

"예전에 완전 요가 처음 할 때 되게 작은 요가원? 요가원이라고 하기도 뭐 한 그런 곳에서 시작했는데 그때 요가를 하던 느낌이 생각났어요. 뭐 잘 모르고 어려운 거 안 해도 그냥 좋았었거든요."  

  아영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공감이 되어 작게 소름이 돋았다. 요가를 하는 것만으로 설레고 좋던, 내가 요가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마음에 들던 때가 있었는데. 훨씬 더 요가에 진심이 되어 무르익은 지금도 좋지만 그때의 첫 마음은 또 다르게 특별하고 소중하다.


  몇 년 전 진지하게 요가를 배워보겠다 결심하고 지도자과정(TTC)에 등록했다. 지도자과정이 시작되기 몇 주 전부터 요가원에서 수련을 할 수 있게 해 주는데 나는 당시 회사를 다니고 있던 터라 퇴근하고 가장 늦은 수업에 간신히 출석할 수 있었다. 퇴근 후 4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혹시나 늦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요가원으로 향했다. 이미 신발이 빽빽한 요가원에 들어서서 선생님과 수련생들의 말소리, 웃음소리를 들으며 옷을 갈아입고 어둑한 수련실 한편에 매트를 깔고 앉으면 그제야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선생님은 오늘 컨디션은 어떤지 저녁은 뭘 먹고 왔는지 같은 것들을 한 명 한 명에게 물어봐 주셨다. 사람들은 낯설어하면서도 가끔은 뼈해장국을 방금 먹고 왔다는 웃긴 대답을 내놓았다. 다 같이 한번 웃고 나면 긴장이 풀어지고 따뜻한 요가원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간 뒤 선생님은 마음에 드는 향을 하나씩 골라 손바닥에 덜어가라고 작은 아로마오일 병 대여섯 개를 조르르 늘어놓으셨다. 활력이 필요하면 상큼한 향을 고르라기에 레몬 오일 세 방울을 손에 덜어 조심히 오므리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소중한 것을 펼쳐보듯 살며시 손바닥을 펴 슥슥 가볍게 비비고 그대로 코 앞에 갖다 댔다. 깊게 몇 번 숨을 들이마시면 상큼한 향이 딸려 들어왔다. 사실 그때 무슨 요가 동작을 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렇게 늦은 밤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던 몇 가지 장면들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시간이 흘러 요가를 가르치고 있는 지금, 그때보다는 조금의 지식이 생겼고 아사나(동작)도 한층 늘었지만 이렇게 첫 마음을 생각하며 어떤 그리움에 빠지는 건 처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던 설렘과 행복감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익숙해서 자주 그 즐거움을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좋아서 시작한 일도 직업이 되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여전히 요가를 좋아하지만 그때처럼 마냥 티 없이 신나지만은 않은 건 잘 해내고 있는 것보다 자꾸 부족한 것, 더 연습하고 공부해야 할 것에만 집중해서 그런 게 아닐까.

  아영 선생님 덕분에 '뭐 잘 모르고, 어려운 거 안 해도 그냥 좋던' 아주 처음의 마음을 꺼내봤다.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왜인지 힘이 난다. 당분간은 조금 더 가볍게 요가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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