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아의 비밀 54

마무리

by 혜림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아름이에게 가야 했다.

아름이에게 가서 네가 하려던 것을 우리가 해냈다고 이야기해야 했다. 아름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풀리기를 바랐다. 아름이 마음이 편해졌으면 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필요한 물품을 각자 준비해서 만나기로 했다. 한 사람씩 아름이와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지연이는 터벅터벅 방으로 들어왔다.

집은 조용했다.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조용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직도 아까 있었던 일이 생각나 몸이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살며시 문을 닫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준비해서 샤워실로 들어갔다. 수건은 문고리에 걸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틀었다. 금세 수도에서 따뜻한 물이 쏟아졌다. 따뜻한 물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욕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거울에 하얗게 김이 서렸다. 자연스럽게 거울을 손으로 닦고 자기 얼굴을 봤다. 좀 피곤해 보이긴 해도 편안한 표정이었다.

선반 위에 있던 연보라색 입욕제를 욕조에 넣었다. 입욕제가 둥실둥실 뜨면서 욕조의 물을 예쁜 연보라색으로 물들였다.


아, 이제 진짜 끝났구나!

이 입욕제처럼 우리에게 좋은 일이 가득 퍼지겠구나.

욕조에 발을 넣었다.

욕조 안은 뜨끈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자 노곤해졌다.

모든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밀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겼다.


이제 정말 평화가 찾아왔다.


샤워하고 나와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모습이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보여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연이는 말수가 적은 편이라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의외로 성격이 급한 편이다. 몸에 묻은 물을 다 닦지도 않고 드라이기를 들어 머리를 말렸다. 여유롭게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있었다.


화장대를 보니 예전에 사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헤어 에센스가 보였다. 평소 같으면 그냥 보고 지나쳤겠지만, 오늘은 왠지 바르고 싶었다. 손에 헤어 에센스를 듬뿍 짜서 비볐다.

양손 가득 헤어 에센스를 머리카락에 바르니 싫어하는 향기가 코를 찔렀다.

‘윽. 역시 이 에센스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지연이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옷장 문을 열었다.

이렇게 코디해보고 저렇게 코디해보았지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옷장 안의 옷이 모두 나왔다.

아마 지연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옷장을 많이 뒤지며 옷을 고른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아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는 거라 가진 옷 중에서 제일 예쁘고 좋은 것으로 고르고 싶었다. 한참 동안 혼자 거울을 보며 이것저것 대본 뒤, 제일 마음에 드는 옷으로 골랐다.


아름이를 만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 기분을 유지하고 싶었다. 잠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 소중한 친구 아름이.

제일 예쁜 모습으로 너를 만나러 갈게.


한참 뒤척이던 지연이는 탁자 밑에서 책을 꺼냈다. 지연이는 자기 전에 책을 읽었다. 특히 지금처럼 마음이 떨릴 때 그것을 달랠 수 있는 건 책뿐이다.

마법 지팡이를 살짝 흔들자 마법 지팡이 끝이 밝아지고 따뜻한 우유가 담긴 머그잔이 나타났다. 지연이는 따뜻한 우유를 천천히 마시며 책을 읽었다.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단어 하나하나가 기분 좋게 느껴지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10분 정도 읽으니 잠이 왔다. 침대 옆 탁자에 빈 머그잔을 올려놓고 마법 지팡이의 불빛을 후 불었다. 마법 지팡이의 불빛이 꺼졌다.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4시 30분.


알람을 끄고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일어났다.

밖을 보니 하늘이 아직 컴컴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부랴부랴 이를 닦았다. 막상 옷을 입으려니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고를 시간이 없었다.

막상 아름이에게 간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되었다. 지연이는 아름이에게 가져갈 물건을 이것저것 꼼꼼하게 챙겼다.

신발을 신기 전에 물티슈 한 장을 뽑아서 신발을 문질렀다.

이 정도의 더러움은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오늘은 아름이를 보러 가는 날이라 그런지 신경 쓰였다.


문을 열고 나가자 시원한 새벽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직 날이 밝지 않아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무서움을 떨치려는 듯 가방 뒷주머니에 있는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신나는 노래로 골랐다.

산뜻한 노래가 주변의 분위기를 바꿔주었다.


지연이는 하늘을 보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 봄이가 보였다. 지연이는 새벽이라 시끄러울까 봐 작은 소리로 봄이를 불렀다. 그런데 봄이가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연이가 부르는 소리가 너무 작았나 보다. 봄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봄아!”

봄이를 부르며 등을 살짝 치자 봄이가 뒤돌아보았다. 자세히 보니 봄이도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그래서 지연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봄이는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현우랑 김민규 둘 다 늦잠 자서 10분 늦을 것 같대.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늦잠이라니.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지연아, 우리끼리 저기 놀이터에 가서 놀고 있을까?”

두 사람은 어느새 이어폰 하나로 노래를 같이 듣고 있었다.

봄이랑 단둘이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놀이터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그네를 탔다. 새벽이라 그런지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봄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네를 잡자마자 그네 위로 올라섰다. 그네를 높이 타기 위해 무릎으로 시동을 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지연이는 피식 웃었다. 지연이는 봄이 와 반대로 그네에 앉아 발로 살살 굴리며 그네를 탔다.

“어제 집에 가서 뭐 했어?”


봄이가 그네를 타며 물었다.

봄이를 보려고 했지만 보이는 건 봄이의 무릎뿐이었다. 봄이의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너무 높이 들어야 해서 얼굴을 보는 건 포기했다.

지연이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두 발을 보며 말했다.

“어…? 어 그냥 어제 씻고 책 읽고 바로 잤어.”

사실대로 말하기 부끄러웠다.

내일 입을 옷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골랐다는 건 비밀이다.

그 말을 들은 봄이가 탄식을 했다.

“나는 어제 밀린 비디오 게임했는데, 역시 지연이는 다르구나. 책을 읽었다니 대단한걸?”

“10분만 읽었다는 건 비밀이다.”

“그럼 나도 비디오 게임했다는 거 비밀로 해줘.”

매거진의 이전글아멜리아의 비밀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