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마음고생 심했겠다.”
갑작스러운 위로에 당황했다.
지연이는 봄이가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고개를 들어서 봄이를 쳐다보았다.
언제 그네에 앉았는지 봄이는 멍한 얼굴로 그네에 앉아 자기 신발을 쳐다보고 있었다. 봄이의 모습을 보자 아름이가 죽고 난 후 벌어졌던 모든 일이 생각났다. 아름이의 죽음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고생했던 일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눈물이 멈춘 것 같을 때 봄이를 보며 말했다.
“조금 힘들었어. 조금….”
또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정적을 깨기라도 하듯 봄이가 하늘을 보며 말을 꺼냈다.
“… 너도나도 모두 다 힘들었을 거야. 근데 이제 다 해결됐고 끝났으니까 지난 일에 휘둘리지 말자. 우리 이제부터 현재에 집중하자. 계속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을 순 없잖아?”
그 순간 지연이 눈에 봄이가 다르게 보였다.
평소 말만 많고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줄 알았던 봄이었다.
봄이가 이런 말도 하다니.
왠지 봄이가 멋있어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봄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지연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봄이가 어색했는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현우랑 김민규 도착했단다! 우리도 빨리 가자!”
봄이가 얼굴이 빨개진 채 후다닥 도망갔다. 지연이는 싱긋 웃으며 봄이를 따라나섰다.
5시 15분.
지연이와 봄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현우와 민규를 발견했다.
현우는 급하게 나왔는지 머리 정돈이 안 되어 있고 민규는 검은색 캡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이~. 이게 누구신가~. 학교의 비밀을 찾아낸 용감한 두 용사가 아니신가~~.”
봄이가 장난을 치며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고 지연이도 킥킥 웃었다.
“아, 좀 그런 말 하지 마.”
민규가 정색하자 현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야, 왜 그래. 난 좋은데. 지구를 지킨 네 명의 용감한 용사들!”
현우가 갑자기 일어나서 두 손을 허리에 올리며 우스꽝스럽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민규도 웃긴 지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하여간 칭찬을 못 해요. 이현우, 자리에 다시 앉아!”
지연이와 봄이는 큰 소리로 웃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에 현우와 민규도 따라 크게 웃었다.
아름이가 죽고 난 후, 침울했던 마음이 이제는 편안함으로 바뀐 것 같았다. 네 사람의 웃음소리는 그 일 후로 가장 편안하게 들렸다.
이제 정말로 편한 마음으로 아름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니까 그때 이현우가 넘어져서 얼마나 웃기던지.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서 막 도망가더라고, 그 꼴이 진짜 얼마나 웃겼는지 너희들이 그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민규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항상 다른 아이들의 말을 까칠하게 비꼬던 민규였다.
민규도 마음이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야, 그만 말해…. 부끄러워….”
반대로 항상 당당한 현우가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둘의 새로운 모습을 본 봄이와 지연이는 서로 마주 보며 또 웃었다. 그냥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러다간 온종일 웃기만 할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났다.
아름이에게 가면서 끝말잇기 게임을 했다.
“비누.”
“누텔라.”
“라면.”
“면접.”
“접수.”
“수산화나트륨. 아싸!”
승리의 미소를 띠며 결정적 단어를 날린 봄이가 끝말잇기 게임에서 이겼다.
“후후후. 넌 나한테 절대 못 이겨.”
“이런 져버렸네….”
끝말잇기 게임에서 진 현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승리의 맛을 본 봄이가 또 이기고 싶은지 끝말잇기 게임을 한 번 더 하자고 했다. 끝말잇기를 다시 하자는 봄이의 말에 현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봄이는 현우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앞 게임에서 이긴 봄이가 시작했다.
“표범.”
“범인.”
“인간.”
“간식.”
“식사.”
“사이클로헥시설파민산나트륨. 이번엔 내가 이겼다! 아싸!”
이런, 봄이가 방심했다. 현우는 벌써 자신이 이겼다고 손뼉을 치며 난리가 났다.
끝말잇기 게임에서 진 봄이는 그런 단어는 처음 들어 본다며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마구 화를 냈다.
결국 민규와 지연이가 끝말잇기 게임의 공정한 판정을 위해 ‘사이클로헥시설파민산나트륨’이라는 단어가 진짜 있는 단어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마법 지팡이로 사전을 소환했다. 사전이 휘리릭 넘어가더니 ‘사이클로헥시설파민산나트륨’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정말 있는 단어였다.
현우와 봄이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들은 현우가 어떻게 이 단어를 알고 있는지 신기했다.
“하지만 아직 동점이야!”
봄이는 한쪽 손을 허리에 올리고 나머지 손으로 현우를 가리켰다. 만화 캐릭터 같았다.
현우는 그런 봄이의 모습을 보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지연이도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다 함께 가는 길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아름이도 같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마 네 사람 다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신나게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아름이의 묘지에 도착했다.
비석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각자 아름이를 위해 챙겨 온 물건들을 꺼냈다.
봄이와 민규는 아름이가 좋아했던 과일과 음식을 챙겼고 현우는 돗자리를, 지연이는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인 메리골드 꽃을 가지고 왔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꽃을 꽂았다.
봄이는 과일을 깎고 과자와 함께 접시에 담아 제단에 올렸다.
네 사람은 돗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