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현우는 조용한 분위기가 어색한 듯 두리번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덤 위의 잡초가 보였다. 눈에 거슬렸다.
현우는 잡초를 뽑으려고 스윽 일어났다.
그때 봄이가 말했다.
“너희들 아름이에게 하고 싶은 말 없어?”
현우는 눈치를 보더니 다시 그대로 풀썩 앉았다.
또다시 정적.
잠시 뒤 민규가 말을 꺼냈다.
“저… 내가 먼저 말해도 될까?”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가 머뭇머뭇하자 다른 아이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민규는 비석 앞에 가서 앉았다.
흐음,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말을 시작했다.
“음…. 아름아. 저기 뒤에 애들이 다 듣고 있어서 부끄럽긴 한데… 그래도 말할게. 나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았거든.”
감정이 북받치는 것 같았다.
민규는 잠깐 숨을 들이쉬었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름아. 솔직히 나는 네가 자살했다고 했을 때 믿을 수가 없었어. 그거 기억나? 나 싸가지 없는 아이라고 소문나서 애들이 다 나를 피했잖아. 그때 급식도 혼자 먹고 마법 수업 때도 나 혼자였어.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힘들었거든. 그런데 네가 딱 내 앞에 나타나더라. 나한테 음료수 먹지 않겠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말이지만 난 그때, 네 말에 정말 감동받았어. 내가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민규는 울먹이며 말했다.
“너 같은 친구를 절대로 놓치면 안 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노력했어. 덕분에 현우, 지연이, 봄이도 만나게 되었지. 그 뒤로 사교성이 좋아졌다는 말도 들었어. 생각해보니까 너한테 참 고마운 게 많네. 말이 너무 길어졌다. 너 말 많은 거 싫어했잖아. 나는 너와 관련된 것들 다 기억해. 정말 고마웠고 네가 베풀어준 모든 것 다 기억할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정말 고마웠어.”
민규가 뒤돌아보았다.
웃고 있었지만, 얼굴이 빨개져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봄이도 울컥했다. 민규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하…. 다 말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다음은 누구?”
“내가 말할게.”
봄이가 앞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야, 이 기지배야!! 누가 너 먼저 가래?? 누가…. 너….”
말을 잇지 못하고 서럽게 울었다.
봄이는 잠깐 울음을 멈추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잠시 후 봄이는 말을 이어갔다.
“야, 너 진짜 답답하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우리 보고 먼저 말했어야지, 비겁하게 너 혼자 꼭꼭 숨겨 두면 어떡하냐? 우리 좀 믿어주지. 우리 봤지? 멋지게 사건을 해결한 거? 그러니까 그… 그쪽 가서도 힘든 게 있으면 숨기지 말고 우리한테 꼭 이야기해. 알았지? 그리고 이 언니가 너랑 잘 어울리는 꽃을 사 왔다.”
봄이가 꽃다발을 들고 흔들었다.
“예쁘지? 이 꽃 이름은 메리골드야. 알아? 이 꽃말 이름이 우정인데 이 언니가 이 꽃을 보는 순간 느낌이 빡 왔지 뭐야. 이건 아름이와 우리를 위한 꽃이다. 이렇게. 이 꽃 보면서 꼭 우리 생각해. 네 눈앞에 꽂아 놓을 테니까 계속 우리 생각해 줘야 해. 알았지? 그리고 이제 진지하게 한마디 할게. 고마웠어. 아름아. 이제 걱정 없이 편히 쉬어. 너 절대로 잊지 않을게. 사랑해.”
말을 끝내자 봄이는 꽃을 꼭 껴안고 목이 나가도록 큰소리로 엉엉 울었다. 꽃다발을 너무 세게 껴안아서 꽃송이가 몇 개 바닥에 떨어졌다. 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울었다.
울음도 전염되는지 어느새 현우와 민규도 같이 울었다. 지연이도 눈물이 흘렀다.
네 사람은 큰 소리로 한참을 울었다. 울고 나니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봄이가 아직도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민규 말대로 다 말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네. 다음은 누가 말할래?”
이번엔 현우가 손을 살며시 들었다.
봄이는 눈이 퉁퉁 부은 채, 웃으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현우는 옷매무새를 손보면서 나왔다. 머쓱한지 머리도 한번 만졌다. 왠지 아름이에게 단정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았다.
“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현우가 긴장한 듯 이마를 닦았다. 현우의 등이 땀에 젖어 있었다.
“아름아, 우리 다시 만났을 때 기억나? 나는 진짜 너를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 그런데 너를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
손에서도 땀이 나는지 현우는 바지에 손을 닦았다.
“솔직히 나 정말 좋았어. 이렇게 잘 맞는 친구가 어디 있겠냐고 정말 하늘에서 내려주신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너 없으니까 알겠더라. 익숙하고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고 하잖아? 너 가고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게 현실이잖아. 열심히 살아보려고. 꼭 지켜봐 줘.”
현우 차례가 끝났다.
남은 건 지연이였다.
자신의 차례인 건 알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떨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여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어디선가 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서지연!! 너 어디 아파??”
뭐지? 나 기절했었나?
“아…. 아니!! 나 괜찮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우, 민규, 봄이 모두가 지연이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봄이가 지연이의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너 아까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 거 아니야? 많이 울면 머리 아프잖아!!”
친구들이 자기를 다 쳐다보고 있어서 부끄러워진 지연이가 허둥지둥했다. 주목받아본 경험이 없었던 탓에, 갑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몰리니까 부끄러웠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 거야!!”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얼굴을 보기 부끄러웠다.
다른 아이들이 조용했다.
‘혹시 내가 실수했나….’
지연이가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자, 민규가 말했다.
“에이, 그런 거였어? 나는 진짜 아픈 줄 알았네. 말을 하지 그랬어.”
현우도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말해도 되고 부담스러우면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천천히 해. 아름이도 이해할 거야.”
지연이는 친구들이 다독여주자 친구들에게 소리친 게 미안했다.
민규가 갑자기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아, 근데 김혜림 선생님은 뭐 하고 계실까?”
현우가 과자를 와삭와삭 씹으며 말했다.
“모르겠어. 뭐 하고 계실까? 궁금하다.”
“으아, 쌤 보고 싶다….”
현우가 돗자리에 누웠다.
모두 현우의 말에 동의했다.
어느새 네 명의 친구들은 모두 돗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넋을 놓고 하늘을 보고 있는데 지연이가 결심한 듯 말했다.
“나 생각이 정리된 것 같은데 이제 일어나서 말해도 될까?”
갑자기 조용해졌다.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지연이의 두 눈이 똥그랗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민규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현우랑 봄이도 민규를 따라 웃었다. 지연이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지연이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민규가 킥킥거렸다.
“하하하. 야…. 당연히 되지. 그런 걸 왜 이렇게 진지하게 말해.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빵 터졌네.”
“아…. 난 또 내가 뭘 잘못한 줄 알았어.”
지연이가 말할 준비가 되자 친구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지연이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 나갔다.
가지런하게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아름아, 먼저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네 덕분에 많은 일을 해결했어. 학생들도 살려낼 수 있었고 교장 선생님도 물리칠 수 있었고, 우리 학교에 걸린 저주도 풀 수 있었어. 다 네 덕분이야. 그러니까 그곳에서는 부디 편안했으면 좋겠어.”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키고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우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 모든 게 다 끝났으니까, 알았지? 마지막으로 고맙고 미안했어. 잊지 않을게. 사랑해.”
말을 마쳤다.
눈물이 나왔다.
눈물을 닦아도 계속 나왔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울었는지 알 것 같았다. 급하게 휴지를 찾아 눈물을 닦고 뒤돌았다.
분명 울고 있는데 웃음이 나왔다. 네 명 다 똑같았다.
서로 눈물에 젖어서 웃고 있는 모습이 웃긴 지 서로를 쳐다보면서 웃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웃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