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 심리> (1)
오늘의 도서,『디자인과 인간 심리(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입니다. 1988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35년 넘게 전 세계 디자이너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디자인 분야의 대표적인 고전입니다. 심리학과 디자인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를 통해 디자인의 중요성을 흥미롭게 풀어낸 덕분에 일반 심리 분야의 대중서로도 유명합니다. 실제로 초판은 제목도 'The Psychology of Every Thins' 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위에 보시는 것처럼 'The Desgin'으로 바뀌었죠. 제대로 열거나 닫기 어려운 문을 ‘노먼의 문(Norman’s Door)’이라 부르게 될 정도로, 이 책은 디자이너들의 바이블로 통합니다.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나쁜 디자인 사례를 날카롭고도 유쾌하게 짚어내며, 왜 디자인이 사람의 심리를 이해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저자인 도널드 노먼은 미국의 인지심리학자로, 이 책을 통해 디자인이 단순히 미적인 측면뿐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깊이 이해하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오늘날 널리 알려진 사용자 중심 디자인(User Centered Design)의 핵심 개념으로 연결됩니다. 이 책 이후로 노먼은 심리학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인지공학의 아버지가 됩니다. 1993년 '감성중심 디자인(Emotional Design)'을 제시하며 최초로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이를 계기로 현재의 UI/UX 디자인 분야가 본격적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 책은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 종사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도서로 손꼽힙니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3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사례와 알기 쉬운 도식을 통해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바람에, 시리즈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디자이너가 주목할 만한 핵심 개념과 사례를 각 장별로 정리하려 합니다. 책에 관해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거두절미하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노먼은 복잡한 현대 기기(30년 전 서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놀랍죠...?)를 지적하며,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제품의 목적과 사용법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합니다. 노먼은 문 손잡이를 당길지 밀지 몰라 헷갈리는 사례를 통해 직관적 디자인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제품 자체만으로 의미를 전달합니다. 별도의 안내문이나 경고문을 부착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문에 '당기세요', '미세요', '밀지 마세요'와 같은 스티커를 붙이지 않아도, 손잡이의 형태와 배치만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올바른 방향으로 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은 디자인입니다.
이 챕터에서는 사용자가 어떤 행위를 수행할 때 나타나는 ‘실행과 평가의 간격’을 설명합니다. 이 개념은 쉽게 말하면, 사용자가 시스템(또는 제품)을 사용할 때 겪는 두 가지 주요 인지적 거리(gap)를 의미합니다. 즉, 사용자가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와 그 결과를 이해할 때 사이의 간극입니다.
노먼은 인간의 행동을 단순히 하나의 ‘행동’으로 보지 않고, 7단계로 나누어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사람이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을 취한 뒤, 시스템이나 제품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평가하는 일련의 흐름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의 간격, 즉 실행(Execution)의 간격과 평가(Evaluation)의 간격을 겪게 됩니다.
실행의 간격은 사용자가 하고자 하는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생깁니다. 즉, 목표는 있는데 시스템을 어떻게 하게 만들지 불분명할 때죠. 예를 들어, 라디오를 듣고 싶은데 켜는 방법을 모르는 상황입니다. 평가의 간격은 사용자가 무언가 행동한 뒤, 그 결과가 실제로 어떤 영향을 줬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라디오에서 아무거나 눌렀다고 해봅시다.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인지, 켜졌다는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아래와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행의 간격 : 사용자가 목표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 모를 때
평가의 간격 : 사용자가 행동의 결과를 이해하지 못할 때
이 두 간격이 바로 사용자가 ‘답답함’,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바로 이 간격을 최소화하는 사람입니다. 즉,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쉽게 실행하고, 그 결과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은 디자인의 핵심 역할입니다.
도식을 보면, 인간의 반응은 세 가지 의식의 수준을 거쳐 일어납니다. 디자이너가 놓치기 쉬운 부분으로, 디자인 전략을 짤 때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말이 어려웠지만 풀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본능적 수준에서는 인간이 지각하는 감각적 신호가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버튼이 빨갛게 깜빡이기만 해도 우리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위험'이나 '중요한 상황'임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요소들이 이 수준에서 작동합니다.
행동적 수준은 반복을 통해 학습된 기술과 습관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입니다. 자전거를 타는 동작처럼 익숙한 행동에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 기대가 어긋날 경우, 사용자는 즉시 혼란이나 불편함을 느낍니다. 디자이너는 기대와 실제 사용 경험이 일치하도록 조율해야 합니다.
숙고적 수준은 감정과 판단의 차원으로, 사용 경험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모두 사용한 뒤 "이거 괜찮았어",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어"라는 긍정적인 감정이 남는다면, 그것은 이 숙고적 수준에서 좋은 경험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인 만족과 기억, 브랜드 충성도는 바로 이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라디오의 사례를 다시 떠올려볼까요? 어디서 실패했는지를 노먼의 관점에서 하나씩 짚어보면 훨씬 명확해집니다. 예를 들어, 본능적 수준에서 디자인한 라디오는 켜질 때 짧은 신호음이나 빛으로 반응합니다. 사용자는 ‘아, 지금 켜졌구나’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겠죠. 행동적 수준까지 고려한 라디오의 전원 버튼은 자연스럽게 눌러보고 싶게 생겼습니다. 약간 튀어나와 있고, 손가락이 닿는 면이 넓거나 누르는 촉감이 있어서 사용자가 주저 없이 조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용자의 수준별 반응과 디자인 원칙을 교차해 보면,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꽤 정확히 드러납니다. 결국, 좋은 디자인은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판단하는 눈을 길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좋은 디자인은 이 세 가지 의식 수준 모두를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행동에서 사용자가 망설이거나,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결과에 감동하지 못했다면 그건 디자인이 놓치고 있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행동’, ‘인지’,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그게 바로 노먼이 말하는 진짜 디자인의 시작점입니다.
그래프에 등장한 피드포워드(Feedfoward)와 피드백(Feedback)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은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거쳐야 할 일종의 개안의 순간을 만들어줍니다. 막연하게 '이게 불편한데 왜 그런 걸까?' 하고 지나쳤던 순간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하나하나 분석 대상이 됩니다. 마치 도구 없이 어둠 속에서 더듬던 사람에게 손전등이 생긴 느낌이랄까요.
노먼은 추상적이던 개념들을 꽤 명쾌한 언어로 풀어줍니다. 사람과 시스템 사이에 생기는 어긋남, 그리고 그걸 어떻게 좁혀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힌트까지. 읽다 보면 ‘이거 메모해 둬야겠다’ 싶은 포인트가 계속 나옵니다. 동시에 읽고 나면 일상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카페 문 손잡이를 보고도 “이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의심이 들고, 버튼 하나 누를 때도 '어? 이 피드백은 좀 부족한데?'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옵니다. 분명 그냥 쓰면 되는 것들이었는데, 이제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거죠.
한 번 UX의 눈을 뜨면, 다시 예전처럼 순진하게 사물을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그게 또 이 책의 묘미입니다. 무언가 하기 어렵다면 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디자인의 문제인 거죠. 주변 사람들은 제가 세상의 (거의) 모든 디자인에 괴로워하는 '프로 불편러'라고 부르는데요. 이 책을 통해 모두 같은 눈으로 세상을 다시 뜯어보자는 사심으로, 첫 번째 책으로 선정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