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몽상가들>

낭만을 아는 것과 낭만밖에 모르는 것 사이

by 차혜린


'몽상가'라는 단어를 언뜻 보면 철학가, 낭만주의자와 같은 단어처럼 남들과 차원이 다른 고뇌를 하는 심오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힌다.

영화 <몽상가들>은 이런 우리의 선입견과 동경을 잘 아는 듯이 등장인물들을 한껏 사랑스러우면서도 기괴하게 연출해 푹 빠지게 만들어 놓고는, 그 환상이 깨져야만 한다는 설득을 그린다. 영화를 보기 전 몽상가에 대한 우리의 동경과 관심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완전히 부수어진다.

전쟁 중인 미국에서 벗어나 영화와 낭만을 사랑하는 나라 프랑스에서 지내게 된 주인공 '매튜'는 시위 현장에서 '태오'와 '이사벨'을 만나 친구가 된다. 우리는 '매튜'와 함께 어딘가 다른 세계에서 사는 듯 자유로운 주관을 가진 남매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셋은 영화라는 같은 관심사로 밤새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이틀 만에 ‘우리는 한 팀!’을 외치며 영원할 것만 같은 운명의 사이가 된다.


사실 이 시각 프랑스에서는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중이며, 거리에는 온갖 부서진 건물과 쓰레기들이 그 흔적처럼 쌓여있다. 그 안에서 로맨틱한 데이트를 마치며 길거리에서 키스를 하는 '이사벨'과 '매튜'. 그리고 이들 뒤로 비치는 상점 안 티브이에서는 매일 같은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이 변명을 하는 모습이 이상과 현실만큼이나 대조적으로 비친다.

"나랑 태오는 티브이를 안 봐. 오염될까 봐."

/ 영화 <몽상가들> 중 이사벨의 대사


루브르 박물관 한가운데에서 어린아이처럼 질주하고, 영화에 대한 힌트를 주고 제목 맞추기 게임을 하는 이사벨과 태오는 낭만적이고 당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현실도피임을 본인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본인 남매가 나체로 한 침대에서 자는 사실을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면서도 부모님이 알면 죽어 버리겠다고 하는 것. 이 남매는 현실 사회를 외면하고 퇴행하고 있다. ​적어도 성인이 된 이상 평생을 자기만의 영화 속에서 살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살고 버텨야 하는 건 오염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불안하고 무기력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일상을 아름답게 보내려는 대처방식이 중요하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고, 방에서 달고나 커피를 젓는 것처럼. 그러나 그 위기를 본인과 상관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나가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기는 그 자들이 바로 몽상들이다. 긍정주의와 낙천주의 사이, 낭만을 아는 것과 낭만밖에 모르는 것 사이에는 완전한 차이가 있다. 현실을 돌아볼 줄 아는 직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그게 어른이 될 자격이 있냐 없나를 가른다.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운명의 상대를 본능적으로 판단하면 나중에는 겨우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는 모습에 배신을 입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인간관계이며 인간의 감정은 알 수 없는 거라 말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을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사랑스럽고 심지어는 부럽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또 그게 결국 우리가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다.

우리도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전히 아이이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 그러니 나이, 사회적 지위, 사는 동네를 불문하고 그저 좋아하는 것 하나에 웃으면서 마냥 재밌게 노는 셋의 모습이 부러울 수밖에.


나 또한 무의식 중에 아이와 같은 마음이 가득 차 있다. 그 증거는 꿈에서 발견된다. 꿈속에서 나는 초등학생이었다가, 고등학생이었다가 한다. 보통 초등학생일 땐 가방 메고 집에 하염없이 걸어간다. 아무리 걸어도 집과는 멀어지기만 한다. 빨리 가고 싶어서 뛰다가 제주도에서 경상남도에 도착해버린 적도 있다.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 꿈에서는 친구들이랑 모여서 우리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언제 한 번은 교복을 입고 걷다가 그 시절 친구를 만나서 말을 걸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그 친구가 “사실은 고등학교 때가 그리워서 과거로 왔어”라고 하더라. 그래서 “어? 나돈데..” 하면서 같이 눈물이 고인 채로 깔깔깔 웃었다. 깨고 나니 현실이 너무 공허해서 한참을 빈 천장만 바라보고. 그래서 몽상가에 꿈 몽 자가 있나 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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