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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Jul 17. 2021

휴대폰 메모장 들여다보기

요즘 이리저리 오가며 여러 일을 처리하다 보니 휴대폰 메모장 앱을 자주 들여다본다. <차 키 배터리 없음>, <LH 전화하기>, <수건, 큰 대접 챙기기> 대략 요런 것으로 메모장 상단이 가득 차 있다. 비록 지금은 생활용 메모 글뿐이지만, 이 메모장 앱에는 당시의 깊은 고민과 집요한 퇴고를 거친 매끈한 문장으로 쌓여있던 시기가 존재했다. 읽다보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창피할 수도, 비밀일 수도 있는, 그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메모장 글을 용기 내어 소개한다.




*참고로 아이폰 메모장 앱은 글을 쓴 날짜와 시간을 임의로 설정할 수 없음 = 실제 상단에 있는 날짜와 시간에 씀.





1. 차 사고를 당할뻔한 날 이후 쓴 글

이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전주 이마트 앞 큰 삼거리 대로에서 바로 앞차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본 날이다. 만약 그때 엉킨 이어폰 선을 푸느라 4초 정도 늦게 출발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수도 있다. 너무 크게 놀란 사건이라 기억이 생생할 때 휴대폰 메모장 앱에 적은 글이다. 아마 3월 16일? 17일경 사건이 일어났던 듯싶다. 위 글을 시작으로 메모장 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행운으로 차 사고를 피한 이 사건은 나중에 자세하게 글을 쓸 예정이다.





2. 업무 시작 2분 전 쓴 글

회사 출근하고서 9시 땡! 업무 시작! 하기 2분 전에 쓴 글이다. 나의 근무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글이다. 당시 내 자신의 도대체 어떠한 부분을 잘라내고 팠을지…





3. 점심시간에 혼자 밥 먹으며 쓴 글

이날 출근해서 정말 혼자 밥을 먹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위 시간대가 점심시간이라는 점과 출근을 했을 날로 추측해보건대, 혼자 사무실에 남아있을 때 쓴 것 같다. 당시 회사에서 맡은 업무가 예술교육 관련이었는데 궁극엔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4. 새벽에 책 읽다가 쓴 글

어렴풋이 기억나기를 이날 밤에 윤이형 작가 책을 읽다가 눈에 걸리는 문장을 발견해서 쓴 메모일 거다. <나 역시 내 생각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라는 문장인데,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도록 자기반성을 부추긴 문구였다. 당시에 정말 친했던 언니의 결혼식에 못 가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것 같다.





5. 퇴근하고 피시방 갔다 와서 쓴 글

이때가 참 분노로 가득 찬 시기였다. 그래서 피시방에 퇴근하고 자주 가서 좀비 죽이는 게임을 했다. 게임에 대해서도 나중에 글을 쓸 거지만, 흔히들 게임 중독이 현실도피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게임에 대해 가볍게 판단하는 어르신들이 잘 못 생각하는 거다. 게임 중독은 현실을 지극히 있는 그대로 직시할 때 일어나는 행동 양상이다. 여하튼 위 글은 현실을 받아들인 후에 남은 분노를 삭이기 위해 어두컴컴한 피시방으로 향한 날에 쓴 한 문장이다.





6. 아침에 독서실 가는 버스에서 쓴 글

하… 이때 졸라 더 열공할 걸. 쓰읍 ㅜㅜ

위 글은 퇴사 후에 본격적으로 검찰공무원 공부에 한창 빠져있을 때 썼다. 공부 가운데서도 형법이 가장 재밌었는데 저 즈음이 형법 강의 하루에 7시간씩 들을 때였다. 너무나 흥미로운 사건과 예상을 빗나가는 판례들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물론 형법 외에 내가 저리 좋아하는 공부는 당연히 없다. 개인적으로는… 형법은 삶의 양식을 어떠한 기준에 따라 포괄하기에 “생각”이라는 걸 하게끔 하지만, 다른 과목—국어, 국사, 영어, 형소법—은 무작정 반복적으로 외워야 하는 거라 지겹고 어려웠다. 응 그래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합격을 마주하기 전, 공부에 나름 빠져있을 저 시기가 참 귀했고 재밌었다.










2019년도부터 2021년도까지 몇몇 메모를 선택해보았다. 모두 짧은 메모라서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글로써 그때의 모든 걸 붙잡아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 감정, 그 고민, 그 기쁨을.


오늘도 여러 일이 있었고, 여러 사람을 만났고. 여러 곳을 다녔다. 오늘 보고 느낀 다양한 생각은  짧은 문장에서 출발할 것이고 아주 나중에 이곳에 길게 적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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