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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Jul 21. 2021

개의 프로다움

요즘 강진에 내려와서 가장 자주 접하는 것은 산. 풀.  흑염소 그리고 개—꼬미. 강아지. 3살. 암컷—다. 둘째 언니 강아지를 내가 잠시 목포에서 데려와 돌보고 있는데, 실상은 이 개가 나를 돌보고 있는 것 같다. 이젠 개라고 지칭하면 안된다. 그녀라고 하겠다. 그녀는  REAL 프로다. 어쩔 땐 내가 과연 그녀 없이 이 강진 라이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싶다. 내심 둘째 언니가 다시 목포로 안 모셔갔으면 좋겠다.



내가 출근하고 퇴근하기까지 시간—최근에 강진 집 앞으로 일을 다닌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음—을 제외하고는 우린 뭘 하든 같이 한다. 몸을 맞대며 같이 자고, 아침에 같이 일어나고, 동시에 아침밥을 먹으며, 흑염소 사료를 주러 축사에 같이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함께 축사가는 길, 인도자의 뒷모습



아빠 없이 아침저녁으로 흑염소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다. 흑염소 축사에 가기까지가 꽤나 큰 담력이 필요하다. 그곳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명체가 많다. 발이 많이 달린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왜인지 형형색색인 더듬이를 가진 기어 다니는 것들이 땅만 기어 다니는 게 아니라 별에 별 곳을 다 기어 다닌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생태계 파괴범 황소개구리가 보호색을 뗘서 그런지 땅을 밟은 줄 알았는데 물컹한 게 두꺼비들이었다. 으헝 또 있다. 축사 안에서 날아다니며 소리 내는 각종 큰 새들. 이러한 새가 날 때면 내 머리 위로 똥이 떨어지진 않을까 너무 걱정된다.



여하튼 이러한 무서움에서 나를 구원해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그녀다. 함께 있으면 정말이지 사귀었던 남성들로부터는 여태 느껴보지 못한,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든든함이 있다. 곁에 계속 있으면서 느끼건대 뭐든 경험해봐야 제대로 안다는 말이 새삼스레 와닿는다. 이 개님은 생각보다 현명하고, 생각보다 감정이 풍부하며 결코 나보다 열등한, 아직 진화가 덜 된 존재. 또는 지능이 낮은 존재가 아니다. 사실, 모든 가축들이 난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해왔지만 이 개는 특히나 그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한다.


본인보다 몸집이 큰 검은 생명체 앞에도 당당한 그녀



이 깨달음에는 여러 계기가 있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말하자면 굉장히 눈치가 빠르다는 점이다. 남들이 봤을 때는 겁이 많은 개로 쉽게 판단하겠지만—나 또한 그렇게 봤다—그것은 겁이 많은 게 아니라 상황 판단이 빠른 거였다. 그녀의 유전자는 보다 안전한 곳으로만 다니게끔 그녀를 이끌고 있다. 꼬리를 내리고 엉덩이 근육에 힘을 준 채 뒷다리를 살짝 들고 귀를 쫑긋한 그 상태.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모든 위협으로부터 그녀는 항상 긴장하고 있기에 대비할 수 있다. 산속을 같이 걸을 때 내가 발견하지 못한 두꺼비를 그녀가 대신 발견해주고 그래서 다신 밟지 않도록 도와준다. 또는 꼽등이와 같이, 바라보는 것 자체가 해로운 해충 따위를 나보다 더 심하게 무서워해서 아니, 심하게 발견하여 먼저 멀리 떨어진다. 그것을 보고 나도 그녀 쪽으로 빠르게 도망간다.



또 하나는 그녀가 한국어를 알아먹는다는 점이다. 나는 그녀를 앉혀놓고 차분하게 말했다. 집에서는 2층 다락방에서만 그녀와 함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1층은 아빠가 지내야 해서 그대의 털이 날리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다고. 그러고 나서 그녀에게 간식을 하나 수여해주었다. 다음날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하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퇴근 후 집 문을 열었다. 정말이지 1층 거실이고 어디고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2층 계단으로 조심히 올라가자 그녀가 계단 앞에 딱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나를 보고는 세차게 꼬리를 흔들대며, 나 정말 너 말대로 1층으로 안 내려갔어. 빨리 육포 줘. 느낌을 풍겼다.



그녀도 소크라테스 책을 좋아할 것만 같다



가족들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를 그녀가  내려가도록  물체로 막아놓으라고 했었다. 그것이 아마 모든 인간이 모든 가축에게 하는 일반적인 생각의 흐름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계단 난간 사이로 언제든 뛰어내릴  있음을 알았다. 중요한  그녀가 그런 마음을  하게  아니라,  하게끔 만드는 거였다. 그녀를 믿은 결과, 3 정도 지났지만 여태  번도 그녀는 내가 산책 끈을 그녀 몸에 휘감을 때가 아니고서는 절대 1층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산책을 갔다 와서도 발을 닦아주면 말하지 않아도  길로 2층을 향한다. 나는 그녀가내가 조현병이 아니고서야한국어를 알아먹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시 나의 눈빛으로  고민을 깊이 있게 공감했으리라고 믿는다. 덕분에 아빠가 퇴원하고서도 그녀와 함께하는 것에 지속적인 허락을 받을  있을 듯하다. 이것이 논제로섬 게임이다.



모든 가축은 인간을 만나서 괴로움이 시작되었다고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에서 말했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 죽일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음을 알아차린다면 서로 괴로움이 아닌 기쁨을 주고받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우리 아빠도 흑염소를 키우고 파는 시스템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뛰어들었지만 나까지 이를 이어받아서  생각은 없다. 물론 관리 보조를  수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흑염소 사업에 자진하여 뛰어들기는 힘들  같다. 언젠가 흑염소가 팔려나가는 장면을 축사에서 목격하였는데,  울음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누구나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은 본능적으로 안다. 흑염소들이라고 모를까. 낯선 이가 친구, 또는 가족의 뒷다리를 잡아챌 때는 죽음이 편재해 있음을 아는 거다. 일하는 아저씨들에겐 죄송했지만, 속으로는 흑염소들이 어떻게 서든지 도망가기를 바랐다.



티비를 즐겨보는 그녀




동물을 도살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이들은 모두 채식주의자가 될 거라는 말. 어디서 들었는데 누가 한 말인지 기억은 안 난다. 나도 아직은 채식주의자로 입맛을 바꾸진 않았지만 머지않아 그 흐름에 몸을 싣게 되리란 것을. 이번에 꼬미, 그녀의 프로다움을 통해 자연스레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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