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정오, 오후 낮잠을 쪼개서 잤더니 오늘만 꿈을 세 번 꾸었다. 빙하 밑 거대한 무의식의 발현은 놀랍다. 세 번 모두 너무나 생생하게 소리를 듣고 촉감을 느꼈으며 상황 속에서 감정을 소진했다. 현실에서 보고 만지고 듣고 느끼는 모든 자극은 뇌 속에서 전기신호로 바뀐다. 그렇기에 실재가 없어도 어딘가로부터 전기신호가 만들어진다면 꿈속에서도 오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뇌는 왜 그와 같은 꿈을 만든 것일까. 오늘 꾼 꿈에 대해 나름 해석을 해서 나의 무의식을 분해해보고 싶다.
1. 첫 번째 꿈
시작은 아침에 꾼 꿈부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을 청소하고 축사일을 했다. 사료푸대를 수레를 이용하여 위쪽 축사에서 아래쪽 축사로 옮기는 일인데 정말이지 포장도로가 얼마나 소중한 환경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울퉁불퉁한 돌과 곱게 솟아난 풀이 뒤섞인 길에서 수레를 옮기다 보니 4번 정도 넘어졌다. 내가? 아니 수레가 넘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짜증 나서 수레 손잡이를 내던졌다. 어쨌든 고된 노동을 끝나고 보니 오전 8시였다. 씻고 몸을 눕혔다. 곧이어 첫 번째 꿈이 펼쳐졌다.
몇 달 전 관계를 정리했던 남자가 나왔다. 아무래도 최근 그에게 연락이 온 것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꿈에서 그는 거뭇한 수염과 까칠한 피부로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게 대금을 불어주려 했다—실제 연락할 때 그가 내게 대금을 불어주겠다고 했었다—. 이선희의 인연을 부를 줄 안다며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연주를 들었다. 그러고 꿈이 깼다. 별거 없다. 실제 최근 그에게 연락이 왔을 때도 뭐 별거 없었다고 난 생각한다. 우린 두 시간가량 통화했지만 근황을 알려주는 정도였고, 통화가 끝난 후에 나는 그를 차단하며 메시지를 남겼다. 아마 그도 굳이 다시 내게 연락할 생각은 없었을 테다. 혹시 있다면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냥 연락하지 마 앞으로, 당신 대금 연주는 꿈에서 들었어.
2. 두 번째 꿈
잠에서 깨고서 배가 너무 고팠다. 밥을 차려먹었다. 배가 부르니 다시 잠이 왔다. 이런 게 휴일 아니겠어? 대략 12시쯤 다시 눈을 붙였다. 두 번째 꿈에서는 형법 선생님이 나왔다. 인터넷 강의로 배워서 실제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는 내가 숨 쉬고 있는 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작년 12월부터 공뭔 준비할 때 이 쌤이 참 좋았다.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필요한 것만 딱딱 알려주는 스타일, 도저히 나이를 추정할 수 없는 외관—50대 같은 올드한 옷차림, 20대 같은 뽀얀 피부, 10대 같은 스포츠 컷 머리—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여하튼 형법 선생님이 꿈에 나와 내게 말을 했다.
"혜리, 공부 안 할 거예요?"
"선생님, 저 검찰공무원 포기할까 봐요."
"빨리 절도죄부터 다시 시작해요."
꿈속 배경은 식당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먹고 있었고 나는 그저 그 앞에 앉아있었다. 지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자각 및 밥 먹은 지 얼마 안 된 이때 타이밍이 이 꿈을 만든 듯하다.
3. 세 번째 꿈
오후에는 한강이 쓴 채식주의자 소설을 읽었다. 전에 읽었지만 다시 꺼내어 읽었다. 역시나 글이라는 것은 편한 자세로 읽다 보면 잠이 오게끔 한다. 그래서 난 또 잤다. 세 번째 꿈에서는 조카가 나왔다. 울고 있었다. 자동차 장난감을 손에 쥐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나로 치자면 엄마—가 자기를 버리려고 한다고 했다. 그 말에 엄마를 쏘아보았다. 엄마는 모른 채 하고 있었다. 조카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자동차 장난감만 있으면 되니까 버리지 말아 달라고. 그러다가 꿈이 깼다. 이건 내 안 깊숙하게 있는 조카에 대한 불쌍함과 엄마에 대한 분노가 발현된 걸 거다.
정말 이상하게도 이 꿈이 깨고서 조카가 아파서 지금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황급히 차 키를 챙겨 시동을 걸어 목포에 갔다. 입원실에 들어서자 엄마와 조카가 보였다. 방이 너무 더웠다. 엄마에게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자고 했다. 엄마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 조카가 더욱 아플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창문으로 먼지가 들어올 테고 아이가 땀을 계속 흘리면 몸이 더 지칠 거라고.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엄마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여하튼 조카랑 좀 놀아주다가 강진으로 다시 왔다.
오늘 세 가지 꿈을 꾸며 내가 궁극적으로 얻은 결론은, 잠을 쪼개서 잘 바에는—이렇게 꿈으로 고통받으니—안 자고 있다가 밤에 자는 게 낫다는 지극히 자연이치적인 상식을 구태여 재확인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