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메리 Aug 09. 2021

생의 맛

멀리서 가볍게 다가오는 TV 소리에 천천히 눈을 뜬다. 차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천장을 비추는 것을 바라본다. 밑층에서 아빠가 사그락 거리는 소리, 옆에서 강아지가 몸을 긁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휴대폰을 켠다. 일곱 시 정각 즈음이다. 팔을 짚고 느리게 몸을 세운다. 멍하니 계속 앉아있다 보면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른다. 이젠 몸을 일으킨다. 이불을 개고 밀대로 바닥을 훑고 창문을 열어젖힌다. 터덜터덜 밑층으로 내려간다. 이렇게 내게. 또 다른 하루가 주어졌다.


강아지와 아침 산책 겸 축사 길을 나선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얕은 바람에 흔들린다. 햇빛에 반사된 잔디밭이 바닷물처럼 반짝거린다. 들판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들도 눈에 들어온다. 거센 산바람과 장대비를 견뎌낸 저마다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이럴 땐 삶이 제법 아름답다고 느낀다. 곧이어 축사가 보인다. 축사 문을 열 즈음엔, 등에 땀이 기분 좋게 맺힌다. 흑염소들과 인사한다. 안녕. 코끝이 찡하게 흑염소똥냄새가 올라온다. 그래도 사료를 주고 나면 어느새 괜찮아진다. 흑염소들이 사료를 허겁지겁 먹는다. 금세 배가 부른 몇몇은 경계를 풀고 내게 다가온다. 흑염소가 뿔이 있어서 가끔 무섭지만 여태 위협적인 녀석은 없었다. 흑염소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검은색 동공이 찌그러진 프라이팬 모양이다. 이 흑염소들은 자본주의의 흐름에 따라 종국엔 도살되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활달함이 불쌍하다. 이럴 땐 삶이 잔인하다고 느낀다.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한다. 차에 타고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한다. 내가 대체 왜 이곳에 가야 하는지, 지금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출근길에는 이렇듯 쉴 새 없는 자가진단이 휘몰아친다. 머리가 순식간에 복잡하게 꼬인다. 회사에 도착해서 주차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꼬여있다. 커피를 내려마신 후 업무를 한다. 사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감이 안 온다. 그냥 한다. 시키면 별 말없이 묵묵하게 한다. 이럴 땐 삶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오전과 오후를 보내는 와중에 동료분들과 간간히 대화를 한다. 그러면 또 즐겁다. 나이 때 비슷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 행동인지 몰랐던 아이처럼 행복해진다. 이럴 땐 삶이 또 나름 버틸만하다고 느낀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병원에 있을 언니가 생각난다. 저녁엔 아픈 가족을 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무력함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서. 의도와는 다르게, 생각의 흐름은 늘 즐거웠던 하루의 순간이 곧 죄책감으로 변하고 마는 장애가 나타난다. 때로는 내가 음식을 먹는 미각조차, 순간에 분열되어 자책과 슬픔으로 나뉜다. 그 감정의 끝은 머지않아 이 광활한 대지 위에 혼자 남겨질 것이라는 불안함으로 마무리돼버리고 결국 울음이 터진다. 이럴 땐 삶이, 끝없이 추락하고 마는 모래 지옥 같다고 느낀다.


밤이 되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보석 같은 밤하늘 별을 바라보러 밖에 나간다. 강아지와 함께 조금 선선해진 바람과 차분한 하늘을 마주한다. 자신이 견뎌내어야만 하는 몫에 부담을 느끼고 그로부터 탈출하고 싶다가도, 가족 때문에 숱한 순간을 견뎌냈을 세상의 모든 인생들을 생각한다. 누구나 버텼다면 나도 버틸 수 있다. 오늘도 버텼으니 내일도 버틸 수 있다. 그곳에서도 버텼으니 이곳에서도 버틸 수 있다. 이럴 땐 삶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길만한 거대한 물결이라고 느낀다.


이 힘듦도 곧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과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의 막연함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널을 뛰는 감정과 생각이, 어느새 지나온 시간과 공간 속에서, 또 다른 하루를 그렇게 시작하고 끝내고를 반복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