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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Aug 07. 2021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곽처럼 둘러싸고 있는 하얀 병실 커튼을 젖혔을 때, 눈에 확 들어온 건 언니가 아니었다. 가슴과 옆구리를 휘감고 있는 투명한 선들. 그 속에서 어디론가 빨려가는 노란 용액들. 코 밑 초록색 튜브로 연결된 산소호흡기. 그 호흡에 맞춰 삐삐 소리를 내는 네모난 기계. 그러고 나서 언니가 보였다. 도저히 몇 달 전 한옥마을에서 전동바이크를 신나게 몰던, 풍성한 머릿결에 탐스럽게 아이스크림을 먹어대던, 그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색색거리며 숨을 내쉬는 얼굴과 여러 튜브가 꽂혀있는 팔목이 너무 말라버렸다. 차갑고 뾰족한 사물에 파묻혀 혈색도 회색빛 같았다. 그간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금지되어 보지 못했던 중환자의 첫 실상을 마주한 거다. 엄마와 나는 잠시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얼어붙은 몸을 서서히 깨어 언니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엄마와 응급 중환자실에서 빠져나왔다. 자동문 밖은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득 퍼져있었다. 오후 세시. 신발 밑, 뜨겁게 달궈진 열기에 서둘러 몇 발자국 걸었다. 해를 등지자 햇빛이 목 선을 타고 넘어왔다. 바로 앞 전북대병원 편의점이 보였다. 편의점 밖 그늘 밑 벤치에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때늦은 점심을 해결하려는 젊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더위와 밥을 같이 먹어댔다. 나도 배가 고팠다. 엄마에게 편의점에 가자고 말하려 했다. 뒤돌아보니 엄마는 어느덧 멀어진 응급실 앞에 그대로 서있었다.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벌건 눈두덩이를 비비고 있었다.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가자. 조용한 내 목소리가 감정을 더욱 복받치게 했는지 엄마는 아예 가방에서 천을 꺼내어 적셨다.


응급실 앞 통로를 막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엄마의 팔목을 끌고 천천히 걸었다. 엄마는 곧잘 걷더니 보도블록 옆 화단에 깔린 바위에 털썩 앉았다. 조금만 더 걸으면 편의점 벤치가 있다고 말을 할까 하다가 나도 바위에 앉았다. 바위는 이미 불판처럼 달아올라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울기만 했다. 화단에 깔린 나무들로부터 풀내음이 났다. 편의점 한편에 있는 사람들이 우릴 쳐다보았다.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 울음소리, 바로 옆 도로에서 차들이 오가는 소리, 편의점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귀가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소음의 틈새를 파고드는 엄마의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태양빛에 등이 타들어가는 듯했지만 우린 그 바위 위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나는 엄마 손을 잡아주지도, 등을 토닥여 주지도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엔 누군가가 내게 말했던 "넌 최악의 여자다."라는 말이 맴돌았다. 난 정말 최악인 사람일 수 있겠다란 생각이, 흐느끼는 엄마에게 더욱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 엉덩이 밑 바위와 같은 존재였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언니의 몸 상태가 나아져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덕분에 내일 회사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허겁지겁 다시 강진으로 운전해서 내려왔다. 고속도로를 바라보는데 어제 언니를 처음 본 그 이미지가 계속 겹쳐 보였다. 코가 찡하더니 눈물이 흘렀다. 그냥 그렇게 혼자 바위처럼 뜨겁게 달궈지며 액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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