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친구와 강원도에서 번지점프를 했다. 어느덧 10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번지점프대 위에서 느낀 차가운 바람의 촉감마저 모두 살아난다.
국내 최고 높이로서 63m라는데,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았을 땐 솔직히 낮아 보였다. 아, 뭐여, 다들 너무 안일하게 뛰나 본데? 이 자만으로 5만 원을 내고 체험권을 샀다. 매표하는 곳에서 나와 번지점프대쪽으로 걸어갔다. 점프대 맨 밑, 철제로 둘러싸인 작은 사무실이 보였다. 그곳엔 동네에 꼭 한 명씩은 있을 것 같이 생긴 아저씨가 계셨다. 안내에 따라 리프트에 올라탔다. 아저씨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안경 지금 주세요." 라며 리프트가 채 도착하기 전에 미리 내 안경을 벗겼다.
리프트가 덜컹 거리며 점프 지점에 도착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내 등 뒤로 줄을 연결하고선 점프 발판대 문을 열었다. 발판대에는 동그란 노랑선이 그려져 있었다. 뛰는 곳이란 표시다. 아저씨가 내게 그곳에 서보라고 했다. 아주 천천히 발판대에 섰다. 아저씨가 이젠 밑을 바라보라고 했다. 안경을 벗었지만 밑으로 눈이 향했을 때 대략적인 높이는 가늠할 수 있었다. 밑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고 저기 콩알만 하게 친구가 나를 보고 있었다.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차가운 바람이 머릿결을 흐트러놓았다. 쇳소리를 내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줄. 튼튼한 거죠?"
"그럼요."
"정말 튼튼한 거죠?"
"튼튼해요."
발판대에서 양손을 활짝 펼쳤다. 시선을 정면을 바라보았다. 강원도 산맥이 참으로 아름다운 곡선으로 이곳을 둘러싸고 있었다. 잠시였지만 외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혼자만의 고독에 빠지려던 찰나, 등 뒤로 꽂히는 한 마디가 들렸다.
"겁먹기 전에 뛰어야 한다!"
아저씨가 말했다. 그리곤 바로 쓰리! 투! 원! 점프! 를 외치셨고 나는 그 점프 소리에 팔을 가슴으로 감싼 채 몸을 밖으로 던졌다. 나는 아직도 그때 내 몸이 경험한 그 압력을 기억한다. 차가운 바람 속으로 몸을 내던진 건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드는 느낌과 비슷하다. 다이빙 한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어떤 용기가 나서 뛰었는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준비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않았기에 뛸 수 있었다. 그 아저씨 말대로, 겁을 먹기 전에 뛰려 했기에 뛸 수 있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다. 공부는 매일 쌓여가는데도 엊그제보다는 어제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전에 알던 것들이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독서실에서 한숨을 내쉬며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고민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여기서 더 겁을 먹기 전에 그냥 풀어야 하고, 읽어야 하고, 외워야 한다는 사실. 그때 번지점프대 위에서 뛸까 말까 보다, 아 난 못 뛰겠다고 느낄 법한 찰나에 그 아저씨가 등 뒤에 외친 건 단 하나의 보호였던 것이다. 그 모든 두려움과 어두운 것으로부터의 보호. 내가 나를 막아서려는 그 자기 파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은, 역설적이게도 준비가 되기 전에 거침없이 나를 내던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