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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Sep 02. 2021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이문열이 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소설은 대학교 2학년 때 읽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대사에 종종 "~읍니다."가 등장하는 30년도 더 지난 옛날 책이다. 그럼에도 삼키듯 읽어 내려가지는, 흡입력 있는 책이다. 임형빈과 서윤주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핵심이지만, 기억에 남는 대사는 임형빈의 친구가 한 말이다.


"하지만 난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아. 정말로 미운 건 이 거리의 낡고 비뚤어진 가치관이야. 모든 것을 수직선상에 놓고 상하관계로 파악하려는 그 가치관. 시인과 법관과 정치가를 한 줄로 세워 등급을 매길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발상 말이야. 그래서 내가 택한 게 그중 가장 못 한 것이라는 데 대한 감추어진 비웃음이 소름 끼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번 연도 4월. 국가직 공무원 시험을 마지막으로 그 이후에 책을 제대로 펼친 적이 없다. 무슨 심보였을까. 그냥 하기 싫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시험 때려치우고서 취업을 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도 아니었다. 이곳저곳을 방랑했다. 때로는 아빠 옆에, 때로는 엄마 옆, 또는 조카 옆을 전전긍긍하며 내 마음을 달랬다. 달랠만한 것이 도대체 뭐였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그저 어둡고 무거운 기운이 매일 밤 나를 짓밟았다. 아, 이러다간 정말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질 수도 있겠는데? 싶은 생각이 어떠한 한계점을 넘어 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살리기 위해 뭐든 한 결과, 지금 전주로 왔다. 더 정확하게는, 공부하던 이 책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래도 공부를 멈추었던 것이 내 모든 아픔의 근원이었던 것만 같아서, 안전한 내 공간으로 왔다. 추락한다는 건 무엇일까. 아마 어떠한 기분일 것이다. 내가 어디론가를 향해 저 밑으로 끊임없이 허공에서 추락을 하는 기분. 이상하게도 안전한 내 공간으로 온 지금. 그 기분이 더욱 강하게 든다. 아무래도 이제 외로운 공부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기분은 공부가 잘 되는 어떤 즈음부터는 더 이상 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외로움을 지금만 견뎌내면 된다.


이번 연도가 어느덧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연도 초에 공부를 하며 새해를 맞이했던 내가 떠오른다. 그리곤 시험에 좌절한 내가 떠오른다. 그리곤 사랑하는 이와 여행을 떠났던 나. 여행에서 싸웠던 나. 여행을 끝내고서 그와 이별한 나. 그리고 언니가 아프단 소식을 듣고 목포로 급히 내려갔던 나. 목포에서 알바를 하며 조카를 챙겼던 나. 아빠의 암 재발 진단에 강진으로 내려간 나. 강진에서 집 근처 회사로 일을 시작했던 나. 그곳에서 만난 동료들과 즐겁게 놀기도 했던 나. 그리곤 끝없는 추락하는 기분에 쫓겨 결국 다시 전주로 올라온 지금의 나.


이제 남은 3개월과 또 앞으로의 시간 동안 나는 혼자 공부를 할 것이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 브런치를 끊을 것이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종종 이곳에 와서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임형빈이 서윤주를 만나면서 느낀 모든 희열과 좌절의 끝에, 추락하는  순간에 결국 작가는 그에게 날개가 "있다."라고 말하는  같다. 그러나 사랑으로 인한 추락엔 날개가 있을지 몰라도, 원인을   없는 추락엔 날개가 있을 수가 없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 그것은 무중력 상태와 같기에 결국 떠있는 것이다. 나는 공부를 하며 계속 혼자 떠다닐 것이다. 차가운 외로움을 마주해야 한다는  날개 없이 몸을 던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다시 책을 펼쳐 공부를 하려고 한다. 아무에게도 날개가 되어달라 바라지 않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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