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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Sep 16. 2021

미필적 고의와 수험 생활

미필적 고의라는 말은 인간 특유의 모순적 행위를 너무나도 잘 표현한 언어다. 적극적으로 결과 발생을 의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예견 가능한 결과는 용인할 의사. 이도 저도 선택하지 않는 인간의 못남을 적당하게 포장한 법률 용어다. 내가 형법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극히 나만의 생각이지만, 치졸한 인간의 밑바닥을 세밀하게 파헤쳐 행동양식을 분류해놓았기에, 형법은 철학, 심리학, 사학을 아우르는 인문과학이다. 그것도 형벌권을 발동시키는 기준으로서 아주 '실용적' 인문과학이다. 


아니라는 거 알면서 하는 모든 행동들. 모순으로 가득 찬 인간이 저지르고야 마는 실수들. 주로 미필적 고의가 대두되는 부분은 '음주운전'이다. 술 마신 후 온전한 운전을 할 수 없으리란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아예 사고를 내려고 작정한 것은 아닌 심적 상태. 그날의 운에 맡기고 사고 나면 어쩔 수 없다는 태도. 이러한 행위는 형법에서 미필적 고의를 적용하여 고의범으로 처벌한다. 끔찍한 결과를 용인할 의사가 있었다면, 그것을 놓고 과실이라 보지 않겠단 거다.


미필적 고의를 수험생활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내가 시험을 아예 작정하고 망치려는 생각으로 공부할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본다면 그것은 고의적 행동이자 동시에 미친 행동이다. 그러나 미필적 고의는 시험을 망칠 의도는 없다는 상식선에서 출발한다. 공부 말고 딴짓을 하면 시험이 결국 망치고 마리란 것을 앎에도, 딴짓을 하고야 마는 심적 상태. 역설적이게도 불합격의 결과에 치를 떠는 수험생이 많지만, 공부시간에 딴짓을 하는 수험생은 더 더 더 많다. 미필적 고의가 이렇게 무서운 거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잠깐씩 주위를 둘러본다. 위와 같은 미필적 고의를 품은 자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책은 앞에 펼쳐 있으나 유튜브를 용인하는 자세. 해가 중천에 떴으나 잠을 좀 더 수용하는 행위. 공부는 혼자 하는 것임을 알지만 카톡으로 어떻게든 외로움을 달래려는 욕구. 나는 과연 이러한 미필적 고의로부터 자유로울까? 슬프게도 내가 이들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을 모순의 끝판왕이다. 궁금들 하시겠지만~ 구태여 여기서 나의 모순됨을 말하진 않겠다. 


여기서 잠깐, 착각할 수 있는 것이 회복을 위한 휴식과 미필적 고의를 품은 향락은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 공부 체력관리를 위한 걷기 행동이나, 머리 휴식을 취하기 위해 클래식 음악으로 잠깐 눈을 붙이는 건 정말이지 회복이다. 공부는 50분하고 휴식은 꼭 10분씩 취해야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10분이 20분이 되고, 20분이 2시간으로 갑자기 변하다가 어느새 하루가 제쳐진 상황. 적절한 휴식 시간이 지났음을 알지만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 순간. 미필적 고의가 발동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순간만큼은 시험에 떨어질 결과를 조금이나마 용인한 것이다. 


살면서 어떻게 이러한 모순을 피하며 살 수 있겠나. 그러나 형법에서 미필적 고의를 일반 고의범과 동일하게 처벌한다는 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당신이 그 시간에 논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핑계를 댈 수 없다는 점. 시험이 몇 점 차로 떨어졌건 불합격에 결과를 놓고선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라고 하소연할 수 없다는 점. 왜냐하면 미필적 고의는 궁극적으론 범죄사건이건 수험생활이건 추잡한 인간의 행동을 적나라게 비추는 거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니까 결론은, 혜리야 그만 추잡스럽게 행동하고, 빨리 정신차려서 공부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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