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어서야 ’ 아토피‘라는 병명을 타인에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 글자가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내 안에서 극단까지 흑화 되었던 이 병이 조금씩 힘이 약해지기도 했고, 어떤 계절은 깜빡 잊을 정도로 잠잠했다.
보통 아토피가 서른을 기점으로 사그라든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기에, 그때가 이제 왔나 보다 했다.
어릴 때, 늘 빌던 ‘병을 낫게 해 달라 ‘는 소원을 신이 아닌 시간이 들어주었다.
그렇게 가장 빛난다는 10, 20대를 온통 몸을 긁으면서 보낸 나는 서른이 되었고,
꿈에 그리던, 아토피를 잠시 잊을 수도 있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토피와 드문드문 만나서 그런가, 다른 이에게 병명을 말하는 게 가능해졌다.
시간이 해결해 준 뒤에야 누군가에게 나를 보여줄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것을 한껏 쥐고 있을 때는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그게 진짜 멋있는 건데. 그러니 이건 애매하게 멋있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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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봄, 나는 디자인대학원생이 되었다. 디자인이 아닌 회화과를 가고 싶었는데, 인생은 늘 예상 밖이다.
오랜만에 학교를 다니니 의욕이 넘쳐 회화과 교수님께 따로 메일을 보내 허락을 받고 <드로잉으로 사고하기> 수업을 청강하게 되었다.
이 수업에서 처음으로 나는, 공개적으로 ! 제 발로 뚜벅뚜벅 나가 누구도 물어보지 않은 나를, 정확히는 나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20명이 넘는 아이들 앞에서, 일주일간 작업한 드로잉들을 펼쳐 보이며, ‘저는 2살 때부터 아토피 환자로 살아왔고, 그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설명했다.
그림은 대체로 빨갛고, 긁고 있는 인물이 등장했기에, 아이들은 듣는 내내 호러 영화를 보는 것 마냥 뽀얗고 평평했던 미간을 찌푸렸다.
발표가 끝나고,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박수를 쳤다. 짝짝짝
나도 이번 발표 내용을 수십 번 연습했었기에, 무사히 끝냈음에 안도했다. 끝났다. 했다. 하긴 했다. 짝짝짝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자마자, 그 안도도 잠시, 수십 명의 아이들의 미간 주름이 떠올랐다. 안타까운 시선, 안쓰러운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 역시 불편하긴 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지..’
복잡한 생각들을 이어가는 사이, 발표 수업이 끝났다.
가방에 주섬주섬 드로잉을 넣고 있는데, 천천히 한 친구가 다가왔다.
학생 1 : 혹시 드로잉을 찍어가도 될까요? 저희 오빠가 아토피인데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나 : 아 ! 네! (그리고 그림을 꺼내 잘 찍을 수 있게 들고 있었다.)
학생 1 : 오빠가 얼마나 힘든지 체감하기 힘들었는데 오늘 발표를 듣고 조금 이해하게 되었어요. 잘 봤습니다.
나 : 어.. 진짜요?.. 감사합니다 !
무슨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발표는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고, 작업 또한 나를 위한 것이므로 그림을 선보였을 때 좋은 반응을 기대하긴 어렵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발표 내내 찌푸린 얼굴들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위로하고 있었는데,
가끔 상상 속에서만 생각했던 긍정적인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니 반갑고 신기했다.
여운은 길었고, 한동안 너무 슬프고 고맙고 감동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더, 발표의 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누군가의 고백을 받았다.
학생 2 : ‘제 친구가 아토피인데요’
학생 3 : ‘저도 사실 아토피인데요’ (20살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이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학생 4 : ‘이런 것을 그림의 주제로 할 생각은 못 해봤는데, 새로워요.’ (참고 : 그는 이제 갓 20살이다. 모든 것이 새로울 나이..!)
발표 이후 또는 나를 개인적으로 마주할 때마다 학생들은 작업에 대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의 피드백이 너무 소중했고, 이 작업을 지속해도 되겠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줘서 감사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쌓인 크고 작은 순간들은 ‘아토피’와 관련된 처음이자, 유일무이한 좋은 기억이 되었다.
아토피로도 좋은 추억이 쌓일 수 있구나.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 얼떨떨했다.
청강 문의 메일을 보내고, 그림을 보여줄 마음을 먹고, 발표 준비를 하고, 발표를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2023년 봄이 아토피와 함께 좋은 시절로 기억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애매하게 멋있는 용기로, 좀처럼 사랑할 수 없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끌고 가고 있다.
아직은 작업을 통해 희망을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이 가능해지는 날은 올 것이다.
30년을 참고 버텨 좋은 날도 있었던 것처럼, 시간이 또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