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없는 여자아이

by hyesae

처음부터 혼자인 게 좋았던 건 아니다.

그냥 혼자여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인기 많은 여자아이가 되고 싶은 인기 없는 여자아이였다.

나는 배경처럼 서있다.


‘OOO 학생’이기 이전에, ‘아토피가 심한 애’로 먼저 각인되었던 것 같다.

들키기 싫어 늘 살짝 뒤로 물러나 있었고, 학교에서, 반에서, 언제나 무리에 섞이지 못했다.

그냥 혼자 있기 뻘쭘할 때면, 공부를 하거나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고, 그해만 60권가량의 책을 읽었다.

(그 시절 시작된 책에 대한 집착과 강박적 읽기는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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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에 익숙한 내가 인생에서 딱 2번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올 수 있었는데, 그 두 번 모두 그림 덕분이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처음 미술을 배우던 날이다.

학원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며 칭찬하던 순간,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가 배경에서 빠져나왔다.

그 이후로 배경 같은 아이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불리기 시작했다.

미술로 두각을 내니, 더 이상 나를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건지, 중학교 때 나를 괴롭혔던 애가 ‘그때 미안했다 ‘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물여섯, 일러스트(펜화)를 시작했을 때 또 한 번 내가 그린 그림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번건 스케일이 좀 컸다.

스쳐 지나갔던 이들이 해당 게시물을 보고 다시 연락을 주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내 그림을 봤다는 제보를 받았다.

그림 덕에 카페에서 서비스를 받기도 하고, 식당을 갔다가 우연히 팬을 만나기도 하고 다른 채널에서 내 그림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런 엄청난 일이 생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데, 하필 사랑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나는 결국 그것을 단단히 붙들지 못하고 놓쳤다.

그리고 다시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여러 차례 그림을 그만두려고 했다.

취미로 그린 그림이 어쩌다 유명해져서 아주 잠시 적지 않은 돈을 벌긴 했지만, 금세 식었다.

나의 본업은 생계형 디자이너로, 그림은 사치였다. 사치가 아니라고 해도,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 시간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림을 놓지 못했다.

나는 인기 많은 여자아이가 되고 싶기 때문에, 그림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잘하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사실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더 그런 일이, 3번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나는 다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나에게 순수한 그리기의 즐거움보단, 사랑받고 싶은 욕망의 형태로 굳어져버린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실패한 예술가일지도 모른다.

뼛 속까지 수단인, 그리기를 나는 계속하고 있다.

마치 그림만이 이 어둠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듯이.


<수업시간>, Pen on paper,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