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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sae

2000년대에는, 아토피가 옮는 병이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표면이 거칠고 울긋불긋하니, 행여나 닿으면 간지럼증이 옮을까 봐 ‘혹시 이거 옮아?’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너무 어릴 때라,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확신할 수 없어 그 뒤로 조심했던 것 같다.

그때는 나병, 에이즈, 그 외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던 때라,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나도 모르는 새에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는 것.

코로나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겪어 알지만, 그때는 막연한 감각이었다.

아토피가 옮지 않는 병이라 정말 다행이다. 만약 전염되었다면, 나는 더 고립되었겠지. 나병 환자처럼, 코로나 환자처럼 격리되어 살아야 했겠지.


그러나, 아쉽게도, 옮지 않는 대신 유전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기적처럼 괴력을 발휘해 아토피와 싸워서 이겼다고 해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태어난 순간부터, 금도 아닌 은도 아닌 수저도 아닌 아토피를 가지고 태어날 아이와 함께 그의 유년시절을 또 한 번 더 같이 살아낼 자신이 없다. 노하우도 없다.

그에게 세상의 희망을 말할 자신은 더더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 엄마가 순수하고 낙천적인 사람이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는 유전이 되는지 모르고 그랬지만, 나는 아니까. 아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니까. 알고도 그럴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 되는데 실패했다. 아니, 그것까지는 물려받지 못했다고 하자. 또 아토피 핑계를 대는 건 너무 지긋지긋하니.


어쩌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보자.

모녀 또는 모자가 시시때때로 긁고 있는 상상을 해보자.

각질을 떼며, 누가 더 각질을 많이 모으나로 대결을 하는 상상을 해보자.

그러다, 갑자기 아이가 나에게 ‘해결책 하나 없이, 왜 이런 삶을 대물림 하냐’고 말한다. 고 상상해 보자.

흔한 영웅 서사를 대입해 어찌어찌 변명을 한다한들, 앞으로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오직 그 자신뿐이다.

(근데, 영웅 중에 아토피를 가진 영웅도 있나?)

아무튼, 아주 조금,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궁금하긴 하다. 같은 조건에서 이 아이는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나처럼 숨을지,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 살지, 감정을 실컷 표출하면서 살지. 궁금하긴 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영향을 받고, 주고, 내 가치관이 바뀌고, 그래서 결국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이 후회스러울지, 아니면,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냐고 안도하고 기뻐할지

, 궁금하다.

그러나 일단은 패스한다.. 좀 더 그럴듯한 시련을 물려줄 수 있을 때를 기약하며..


한 때, 큰 시련이 왔을 때의 생각이다. (아토피보다는 덜한 시련)

진짜 안 좋은 일과 진짜 좋은 일이 있다고 하자.

분명 그때는 그랬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진짜 좋았던 일이 독이 되었던 적도 있고, 진짜 안 좋았던 일이 하나의 좋은 기회로 돌아온 적도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이후로, 일어난 일에 있어 좋고 나쁨을 미리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든 좋은 일이 안 좋은 일이 될 수도, 안 좋은 일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더 지나면 또 모를 일이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 나에게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나에게 출산이 선택 사항이 될 수 없음에 지금은 조금 슬픈 마음이지만, 나중엔 아닐지도 모르니까.

아토피 역시도 마찬가지다.

흔한 영웅 서사처럼, ‘아토피’라는 시련이 닥쳐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나는,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물려줄 것이 여러 개 생긴 내가, 아이를 낳기로 마음을 먹을지도 모르니까. (근데 그땐 노산이려나.. 아니 지금도 노산..)

그러니 인생은 모르는 일 !


<봄희와 나>, Gouache on paper panel,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