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by hyesae

소원을 빌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병이 낫게 해주세요.’

생일 초 앞에서, 꽉 찬 달 앞에서, 새해 첫 태양 앞에서, 소중히 쌓은 돌 앞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간절히 빌었다. 달님, 별님, 부처님, 하나님, 산신령님 누구든 제발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이 소원만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정말 유일한 내 소원은 병이 낫는 것뿐이었다.

영원할 것 같았기에, 그것만이 인생 과제이자, 도달해야 할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소원을 비는 횟수만큼, 그 소원이 이루어진 순간을 수도 없이 상상했다.

하늘을 날만큼 기쁘고,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들고, 날마다 콧노래를 부르며,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든다고들 하지 않나.

나의 태몽에는 넓은 들판에 금빛의 꽃과 나무가 펼쳐져 있었다고 하는데, 내가 맞이할 세상이 꼭 그런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 순간을 맞이했다. 완벽한 결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과거를 생각하면 정말 여긴 꽃밭임이 틀림없다.

눈물겨운 소감을 한 번 말해본다면,

소원이 닳을 정도로 정말 정말 간절했었고, 진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해 별로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뭐랄까..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수상자가 눈물 한 방울 안 흘려주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상상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라 당황스럽다. 아무리 스며들듯, 서서히 나아졌다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아무 감흥이 없을 거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나는 이 결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이어 잊었다.

각질 없는 피부가, 갈라지고 피와 진물 냄새를 풍기지 않는 피부가 당연하게 여겨졌다.

거슬리는 것들이 제거되니, 그 존재 자체를 망각했다. 해방감을 느끼기보다는, 기존의 사실은 완전히 잊히고 그 자리를 다른 것들이 차지했다.

긁는 시간은 다른 무언가를 하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따갑고 아픈 피부의 통증은 다른 무언가를 하면서 느끼는 고통과 스트레스로 채워졌다.

아주 가끔, 정상적인 일상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그 순간은 민망할 정도로 짧았다.

그리고 어느 계절, 온도와 습도가 어긋나, 아토피가 심해질 때면 다시 리셋된다. 잊혔던 감각이 그대로 재현되고 또다시 간절해진다.

‘제발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다, 치료를 받고 서서히 사그라들면, 한참 뒤에야 보통의 일상을 다시 살고 있는 나를 깨닫게 되는데,

그럼 나는 이런 말을 혼자 중얼거린다.


‘이거 언제 다 나았지?’

또는

‘어! 없어졌네!’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바로 찾은 사람처럼, 금세 잊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간절함과 고통에 비해 ‘회복한 상태’에 대한 감흥과 감각이 매우 둔하다.

이 현상을 나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고통의 순간은 영원할 것 같고 기쁨의 순간은 찰나라는 사실이, 아니 심지어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조금의 과장도 없이 그랬는데.


치유에 대한 감흥이 없으니, 아팠던 기억만 차곡히 쌓이는 기분이다.

병이 많이 호전되었음에도 여전히 나는 행복하지 않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도, 핑크빛도 아니다.

어릴 적 소원이 무안할 정도로, 나는 또 새로운 소원을 빌고, 매번 더 나은 상태를 바라고 있다.

병이 나아졌다는 사실은 뒤로 하고, 병으로 인해 형성된 불편함(어두운 유년시절, 비혼주의, 미성숙한 인간관계, 자기 비하, 자존감 결여 등)만 잔재처럼 남아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좀 더 이 상황을 기적처럼 여기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낫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죽지 않고 살아서 지금에 와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때의 내가 간절히 바라던 미래가 여기 있고, 금빛의 꽃과 나뭇잎이 눈처럼 내리고 있다고. 말이다.


아니면, 벅차올라 눈물을 펑펑 쏟진 않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담은 소감 정도는 말하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수고했다고, 그 정도는 나에게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그 정도는 해줘야, 간절히 소원을 빌어준 사람도, 상을 준 사람도 뿌듯하고 흐뭇해하지 않을까.


<차라리 연고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Oil painting on canvas,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