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by hyesae

20대 때 가장 좋아한 국내 소설가는 ‘박민규’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하나같이 약하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주인공은 매번 지는(꼴등) 야구단의 팬이다.

<핑퐁>의 주인공은 왕따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주인공은 못생긴 여자다.

<지구영웅전설>의 주인공은 바나나맨(히어로)으로, 영웅이지만 백인이 아니라 황인 영웅이다.


박민규는 이 주인공들을 데리고 큰 사회와 작은 인간과 인생을 위트 있게 이야기하는 작가다.

분명 너무 슬픈 상황인데, 주인공들도 슬픔을 얘기하는데, 문체는 가볍고, 쉽고, 명랑하다.

주인공들의 삶은 쉽지 않지만 그 속에 매몰되는 느낌이 아니다.

살아간다. 계속 살아가기로 한다.


20대 초에 접한 그의 소설은 너무 와닿았고 큰 위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소설의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주옥같아서 문장을 실컷 수집한 뒤 자주자주 꺼내 읽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약하고 미미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인공들에게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주인공 옆에서 나도 같이 씁쓸한 경험을 했다. 이 시기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감정이 ‘씁쓸함’ 일 정도다. 그들과 나를 동등한 존재로 여기면서, 울고, 원망하고, 버텼다.

지금 돌이켜보면 과몰입했다는 사실이 조금 웃기지만, 결국 수많은 소설 속 인물들 덕분에 그 시간을 견딘 셈이다.

책이, 소설이, 가상의 인물이, 한 사람을 살아가게 만들었다.


그랬다. 소속이 문제였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건강한 신체의 건강한 정신을 담은 소년이 왜 전철 안에서 조롱을 받는가. 삼미슈퍼스타즈의 잠바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동창인 조 부장에게 왜 굽신거려야 하는가? 삼류대학을 나왔기 때문이다.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 소속이 인간이 거주할 지층을 바꾸는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결국 지구의 인간은 두 종류다. 끝없이 갇혀 있는 인간과 잠시 머물러 있는 인간. 갇혀 있는 것도 머물러 있는 것도 결국은 당신의 선택이다. <핑퐁>, 박민규
따를 당한다는 것 말이야… 소외가 아니라 배제되는 거라고. 아이들한테? 아니, 인류로부터. 살아간다는 건, 실은 인류로부터 계속 배제되어 가는 거야. 깎여나가는 피부와도 같은 것이지. 그게 무서워 다들 인류에게 잘 보이려 하는 거야. <핑퐁>, 박민규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 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살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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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나 작가는 <태도가 작품이 될 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스처가 연약한 만큼 그것이 맞서는 힘의 상대적인 강함이 드러나고, 결과물이 아주 작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고 강요되는 구조의 폭력과 모순이 더 크게 노출된다.


이 책에 소개되는 예술가들은 초록색 페인트를 흘리면서 경계를 그리고, 거리에서 얼음조각을 녹을 때까지 밀고 다니고, 빙판 위에 엎드려 누워서 뜨거운 입김을 불면서 40분 동안 얼음을 녹이는 행위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 무의미한 행동을 통해 사회를 조명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쓰고 고통스럽게 노동을 해도 세상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기운 빠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이야기한다.


박민규 작가가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박보나 작가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메시지는 닮아 있다.

박보나 작가의 말처럼, 작고 연약한 화자가 거대한 세계와 구조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그들의 작은 움직임과 소리가 오히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예술가의 노동이 미미할수록, 소설 속 주인공이 약할수록, 그들이 맞닥뜨린 사회의 크기와 압력이 더욱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약하지만, 끝없이 무리에서 배제되지만, 노력한다 해도 티도 안 나지만,

그들이 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말할 자격을 얻고,

그들이 그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오히려 더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그 작은 움직임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약자를 살아가게 할 수도 있고, 그들이 또 말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세상도, 조금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움직임이라도, 아주 작은 소리일지라도 계속 말해야 한다.

그럴수록 더 말해야 한다. 자주, 많이 말해야 한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세계가 여기에 있다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도, 그림을 그리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게 얼마나 미미한 일인지… 너무 잘 알지만.

그렇기 때문에,

계속 얘기하는 일이다. 내가 여기 있다고. 이렇게 살고 있다고.


<My universe>, Pen on paper, 2023


p.s

결국 모든 활동의 목적이, 다른 누군가의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감을 주는 일이라는 것이, 누군가를 말하고 싶게 만들고, 결국 무슨 말이든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모인 이야기가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시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활동이 또 다른 활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