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의 중, 고등학교 교복 치마 길이는 유독 길었다.
친구들은 치마를 수선집에 맡겨 허리를 줄이고 치마 길이를 짧게 해서 예쁘게 입고 다녔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한창 클 나이라 엄마가 내 사이즈보다 큰 교복을 맞춰주면 다행이다 생각하고 그대로 입고 다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다리 뒷면 - 허벅지와 무릎 뒤(오금) - 이 온통 상처로 뒤덮여 있어, 어떻게서든 치마로 가려야 했기 때문이다. 치마를 무릎 밑까지 내려 입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무릎 선까지가 최선이었는데, 상처가 애매하게 가려서 움직일 때마다 치마 끝 선이 상처에 닿아 아프고 거슬렸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으면 상처가 어느 정도 가려지는데, 오르막을 오를 때나 계단을 오를 때는 각도상 내 뒷사람에게 보일 수밖에 없어, 혹시나 상처를 볼까봐 늘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 대부분이 긴 체육복을 입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 역시 교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긴 체육복 바지로 바로 갈아입는 것이었다.
성인이 된 뒤에도 피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늘 긴 바지를 입고 다녔다. 한여름에도 스키니 진을 입고 다녔고, 추워지면 그때서야 입고 싶었던 치마를 마음껏 입었다. 스타킹을 신고.
노출은 너무나 두렵고, 늘 피부를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다. 옷은 또 다른 나의 피부이자 보호막으로써의 역할을 해준다. 옷은 붉은 피부와 타인의 시선이 맞닿지 않도록 막아준다.
피부를 가릴 목적 없이 옷을 입고 싶다. 자유롭게 입고 싶다.
아토피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맞이하는 첫여름에도 어김없이 피부가 심해졌다. 그림으로 상처를 표현하고 있으니, 이 상처들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했다.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고, 나는 가리지 않고 나갔다. 얼마간은 그랬다. 그러나 그 뒤로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보이는 것을 의식하면서 옷을 입고 싶지 않았다.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뭐가 되었든, 상처를 의식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02.
학교에서 누드 크로키 수업이 있었다. 인생에서 타인의 몸을 보고 그릴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크로키를 하는 동안, 몸의 아름다운 선과 형태를 마음껏 그려볼 수 있어 좋았다. (이후 따로 누드 크로키 정기 클래스를 끊어 4회 정도 더 그렸다.)
모델은 타이머를 맞추고 포즈를 취한다. 시간은 처음엔 3분이 주어지고, 그다음엔 1분 30초 > 1분 > 30초가 주어진다. 그 시간이 지나면 모델이 포즈를 바꾸기 때문에, 몸의 전체적인 형태를 빠르게 파악한 뒤, 그려나가야 한다. 30초가 주어졌을 때는 몸의 디테일은 거의 생략되고, 몸의 곡선 몇 개만 남는다. 5-6개 정도의 선만으로도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총 6번-6명의 모델을 그렸는데, 모델의 포즈가 다양하고 역동적일수록, 몸이 날씬한 것보다 살이 접히고 굴곡이 많을수록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드로잉이 많이 나왔다.
03.
인간의 몸은 아름답다. 그러니 내 몸도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내 몸은 선과 형태를 인지하기 이전에 색과 질감이 앞선다.
내 몸을 보면 제일 먼저 얼룩덜룩한 흉터와 붉은색 상처와 꺼끌한 질감이 보인다.
사람들은 내 얼굴 생김새를 파악하기 이전에 인중 위 붉은 상처나 볼에 하얗게 튼 각질을 먼저 본다.
내가 모델이 된다면, 내 몸은 어떻게 그려질까. 30초 크로키에는 선이 아닌 붉은색만 칠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형태를 앞선 색, 형태를 앞선 질감.
그것이 나의 몸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몸을 가리는 이유이고,
그것이 내가 몸을 그리는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