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초적인 곳에서 겪은 일

너무 부끄러워하지마. 그럴 수도 있지.

by 리나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잠이 들어가는 데,

어디선가 ' 허니.... 허니... '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벌써 꿈 속인가? 뭔 헛소리가 들리지?

나는 눈도 뜨지 않고 달달한 잠으로 빠지는 찰나를 즐기고 있었다.


뭔가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져 눈을 떠보니, 남편이 침대 앞에 우뚝 서 있다.

"왜? 왜 무슨 일 있어?"

놀라서 묻자,

"내가 뭔가 누른 거 같은데 물이 안 멈춰."

"응? 어디?"


남편을 따라 들어간 욕실,

임기응변으로 내려놓은 듯한 변기 뚜껑. 그 사이로 물이 뿜어져 나와 욕실 바닥이 흥건하다.

'정지'버튼을 누르자 한방에 해결


"미안해, 그런데 변기가 이렇게까지 'sophisticated'할 필요가 있어?"

"그러게 ㅎㅎ"


지난 두 달 동안 한국에서 세 곳의 호텔에 묵었다. 가는 호텔마다 욕실의 변기는 남편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 Toilet Seat이 따뜻한 건 감사한 거지만 너무 어려워."

영어 설명서를 첨부해 놓았지만 이 설명서 또한 제품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번역해 놓은 거라 이 제품에 익숙지 않은 나 또한 각 버튼의 기능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벽에 있는 버튼에 손댈 필요 없고, 어쨌든 변기에서 일어나면 물은 자동으로 내려가니까 신경 쓰지 마."

하고 말았었는데, 불쌍한 남편 ㅠㅠ

용변 후 물을 한 번만 내리는 것도 아니고, 물을 여러 번 내리고 싶으면 변기에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되나? 신경 쓰지 말라는 내 말을 무시하고 한국형 '비데'를 스스로 작동해 보려고 했었던건가?


잠을 깨운 것도, 상쾌하지 못한 욕실에 나를 끌어들였던 것도 너무 미안했던지 남편은 조용하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없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

"프런트에 전화해서 직원 부르려고 했어?"

"...................."

"응? 갑자기 궁금해서. 어떻게 했을 거 같아?"

"...................."



하와이 박물관에서 '동아시아' 도슨트로 봉사하셨던 남편의 큰어머님이 생각났다.

1950년대 말부터 교환교수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해외 생활하셨던 분들이 퇴직 후 코네티컷 외곽의 고향에 적응하지 못하시고 결국은 미국령 내에서 가장 미국 같지 않다고 여기시는 '하와이'에 정착하셨다.


서울에서 박물관과 갤러리를 모시고 다니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라테를 마시며 카페 창밖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 놓인 젖은 우산에 비닐을 씌워주는 기계?를 한참 보고 계셨던가 보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primitive'한지 몰라."

여전히 미국이 세상의 중심인 줄 착각하고 사는 일부 미국인들을 폄하시며 하신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