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뒤적이다 In The Name of God: A Holy Betrayal 이라는 제목에 끌려서 클릭했다.
뭔가 너무 어두운 내용일 거 같아서 잠시 멈춰놓고 인터넷으로 어떤 내용인지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This Netflix docuseries examines the chilling true-crime stories of four Korean leaders who claimed to be prophets and exposes the dark side of unquestioning belief.
'안 보는 게 낫겠다. 혼자 보기엔 너무 무서운 내용이야. 그리고 보고 나면 마음이 너무 힘들 거 같아.'
요즘은 TV에서 본 프로그램 내용이나 장면이 눈에 어른거려 마음이 며칠 동안 힘든 경우가 자주 있다. 그래서
무난한 프로그램만 골라 보게 된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건 지
자극적인 것에도 별로 자극받지 않는 젊은 세대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나는 아날로그인지
'세상은 아름다운 것'하는 계몽 프로그램이나 보는 노땅인 건지
HD, High Definition (고화질) 때문인지
이 넷플릭스 다큐시리즈는 안 보기로. 패스!
요즘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전에는 어른들이 '맞추며 살아', '남편(아내)한테 지는 척 맞춰 줘.'라는 말씀을 젊은 부부들에게 부부가 백년해로할 수 있는 비법인 양 조언해 주시곤 했다.
남편과 나는 환경, 문화, 언어 많은 다른 점이 있지만 성격이 많이 비슷하다.
처음부터 비슷했던 것 같다. 그래서 속내를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사랑하게 되고 부부가 된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도 남편도 둘 중 하나가 상대방에게 맞추어 주며 20년 넘게 살지는 않았던 거 같다.
남편의 일 특성상 자주 국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내가 내 커리어를 계획했던 대로 지속하지 못했던 건 내가 남편에게 나를 맞춘 게 아니라 내 선택이었다. 실패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잘 나가던 남편의 커리어를 밀어주는 것이 불확실한 내 미래보다 더 안정적일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내가 처음 만났을 때는, 나는 불교? 미신?을 믿는 가정에서 자란 한국 여자 였고, 남편은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지만 전혀 가톨릭을 본인의 종교로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던 미국 남자였다.
그러다, '성당'에서 '가톨릭 방식'으로 결혼식을 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우리는 'Catholic Priest'를 만나서 결혼 허락을 받아야 했고, 2박 3일간 가톨릭 교육관에 가서 교육 먼저 받고 오라는 말 한마디에 알지도 못하는 다른 커플들과 교리 교육을 받아야 했다.
"왜 그래야 하는데? 넌 마마보이야."
우리 방식대로 '스몰웨딩'을 주장하는 나에게, 부모님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 하는 남편은
"그냥 그렇게 해 드리자. 대신 피로연은 너한테 맞춰 줄게."
하는 바람에 성당에서 결혼식, 1800년대에 지어진 클래식한 호텔에서 난리법석 춤추고 술마시며 피로연을 했다.
결혼식 후에는 시댁 어른들의 장례식이 아니면 성당에 갈 일이 없었다.
남편도 나도 신앙? 종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며 살았다.
그리고 수년이 흘렀다.
나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엄마가 '사기꾼 집단'이라 깔보던 그 '예수쟁이'가 됐다.
남편에게 기독교에 대해 기회가 될 때마다 얘기를 해 주곤 했다.
"너 갑자기 이런 얘기를 나한테 자꾸 하고 그래? 너 교회 가고 싶으면 가. 그 대신 집에 교회 사람들 데려 오지 마. 그리고 내 앞에서 네가 믿는 그 '예수님' 얘기하지 마."
"내가 당신한테 예수님, 신앙, 천국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건, 너무 좋아서. 그래서 당신도 같이 알았으면 그래서 하는 거야. 좋은 건 사랑하는 사람하고 나누고 싶은 거잖아."
"됐거든. 너 요즘 그 '교회'라는 합법적인 '영업 단체'에 속해서 그 단체의 세일즈맨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내가 노력할수록, 남편을 위해 기도할수록 남편은 고의인 듯 아닌 듯 나와는 반대로 가기 시작했다. 물론 서로 사랑하고 부부로 잘 살고 있었지만 신앙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피했다. 마치 너의 영역, 나의 영역 가르 듯 그 분야 만은 서로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주일에 뉴에이지 명상 센터로 뇌훈련을 하러 가는 남편과 교회에 가는 아내.
한 방에서는 명상을 훈련하는 남편, 다른 방에서는 성경을 읽으며 QT 하는 아내.
지금 생각하면 우리 부부는 완벽한 '따로국밥'이었다.
내가 교회에서 있었던 일, 설교 말씀을 나누면 남편은 명상센터에서 경험한 세상을 나누었다.
명상센터를 운영하는 센터장의 얼굴에는 밝은 오로라가 비춘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성경 말씀을 나누면, 남편은 어렸을 때 성당에서 주워들은 성경지식으로 성경을 비판하고
남편이 명상 센터에서 듣고 온 시답지 않은 '사자성어'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 나는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운 '다 아는 거 뭐 하러 말하냐며' 맞받아쳤다.
그러다 서로 언성 높여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이 보세요, 아저씨! 생각 좀 해보세요. 1박 2일 이라지만 숙식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토요일 오후 잠깐, 일요일 하루 가는데 1인당 천불 가까이 돈을 받는데. 그 사람 행복하지 않겠어? 얼마나 좋아. 앉아서 몇 마디 지껄이고 돈을 긁어모으는데. 나라도 얼굴색이 바뀌겠네." '천불 나게 천불이 뭐야 천불이..'
"이 봐요 아줌마! 거기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모이는지 알아? OOO CEO, OO 로펌 수석 변호사, 할리우드 스타 OOO, 다들 명상 센터에 오느라 10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온다고."
"거봐, 돈이 너무 많아서 주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와서 환장하며 돈을 퍼 주는데 얼마나 행복해. 그 사람 얼굴에 오로라인지 광인지, 기름인 지 번쩍번쩍하겠지."
"뭐라고? 그럼 교회는 어떻고. 돈 버는 사업체 아니야? 목사는 CEO. 성도들은 영업직원. 안 그래?"
"흥. 왜 이러셔. 교회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교회는 없다구. 공짜야 공짜. 그게 당신이 다니는 명상 센터하고 다른 거야. 교회에 헌금이나 십일조 안 한다고 교회에서 쫓겨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런데 당신이 다니는 데는 돈 안내면 들어가지도 못해. 왜 이러셔."
"...................... 뭐.. 그건 그렇지. 그래 오늘은 네가 이겼다. 이제 그만하자!"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은 더 이상 "Guru"로 여기던 그 사람이 있는 명상 센터를 가지 않았다.
내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스스로 가지 않았다. 나도 요즘 왜 거기 안 가냐고 묻지 않았다.
남편은 '주말이라도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주일에 나를 따라 교회에 가기 시작했다.
예배 중에는 조용히 내 옆에 앉아서 핸드폰만 보던 사람이 언제부터인지 목사님 설교 말씀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성경 통독도 하고. 세례도 받고, 교회에서는 남전도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집에서는 나와 기도 제목도 나누고 말씀도 함께 하는 '크리스천'이 됐다. 감사한 일이다! 할렐루야.
잊고 있었는데, 남편이 말을 꺼냈다.
"그 명상 센터 기억나지?"
"응, 왜 다시 가게?"
"아니... 내가 왜 거기 안 가게 된 줄 알아?"
"글쎄.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당신을 교회로 인도하셨겠지. ㅋㅋㅋㅋㅋ"
"센터 장, 그 사람이 분명 자기는 채식주의자라 그랬거든. 육류나 생선 같은 다른 생물체의 썩은 단백질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그거 먹은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 항상 강조했어. 디톡스 해야 된다고."
"그런데?"
"... 그 사람을 우연히 봤어.... 맥도널드에서... 빅맥 먹고 있더라."
웃으면 안 되는데, 빵 터졌다.
"미치겠다. ㅋㅋㅋㅋㅋ 그래서.. 왜? 배신감 느끼셨음?"
"왜 웃어? 내가 이래서 말 안 한 거야. 비웃을까 봐."
"미안 미안. 당신이 너무 귀여워서 그래. 미안해. 어렵게 얘기 꺼냈는데."
"그래서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 거 같아. 변함없는 분. 사람은 변하잖아."
남편은 그의 갈증을 해소해 줄 뭔가를 계속 찾아 헤매었던 거 같다. 내가 그랬었던 거처럼.
남의 말, 특히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남편은 몸소 모든 걸 체험해 보고 나서야 '진리'를 스스로 깨달았던 거 같다. 물론 '스스로' 혹은 '우연'이란 없다고 믿는 '우리'이지만, 어떻게 남편에게 그 'Guru'가 빅맥을 먹고 있는 것을 보게 하셨는지. 참으로 감사하고 위트 있는 '주님'이시다.
자칭타칭 '크리스천'이라 하는 우리들도 헷갈릴 때가 많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지 사람이 하는 것인지, 사탄인지 천사인지 분별하기 힘들 때, '내 나름'의 기준은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사람을 믿는가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고 상처를 입히지만 하나님은 절대 그러시지 않는다. 우리를 사랑으로 대해 주신다.
다큐멘터리를 볼 용기조차 나지 않는 무시무시한 일을 실제 겪은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까.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어두운 그 집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밝은 빛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