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암으로 남편을 잃은 친구, '조앤'
조앤의 남편 '챨스'의 장례식 후에 내 여행 일정이 바빠 통 연락을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인사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망설이다,
해외여행과 출장이 잦은 싱가포르 일상에서 자주 쓰는 인사말인 'Are you in town?' 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Yes, I am. Are you?' 하며 바로 답하는 조앤.
나와 조앤 둘 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쓰며 말을 아끼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67 Pall Mall
어제 저녁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레스토랑에서 조앤을 만났다.
티 내지 않으려고 열심히 꾸미고 나왔는지 조앤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그 어떤 때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했다. 명품 액세서리와 시계, 그리고 고급진 드레스에 명품백. 방금 미용실에 다녀온 듯한 자연스럽게 컬을 낸 긴 헤어스타일과 완벽한 메이크업, 반짝이는 네일까지.
서로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저녁을 먹는 동안 자연스럽게 챨스의 이름도 언급되고 남편이 없는 삶에 억지로 적응하려 하거나 남편을 잊으려 노력하거나 하는 것 같지 않은 모습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남편이 떠난 빈자리가 너무 큰 데다, 하나뿐인 아들도 호주로 대학을 가게 돼서 곧 떠난다며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월세 놓고 작은 집으로 이사해야 할까 싶다고 했다.
'챨스가 없어 휑한 집에 아들까지 떠나면 집이 텅 빌 텐데.'
큰 집에 혼자 사는 조앤을 상상하니 가슴이 쏴했다.
그러다 그 집에 누군지 모르는 세입자가 들어와 산다고 생각하니 그건 더 아니라는 마음이 들어
주제넘지만 "아니야, 이사 가지 마. 그 집에 그냥 살아." 하고 말해버렸다.
"세를 주면 너희 가족이 그 집에서 함께한 시간과 너희만의 독특한 향기가 다른 사람들의 것으로 묻혀 버릴 거 같아. 한번 묻히면 다시 못 찾아. "
"그렇겠지? 그래서 고민이야."
연애 기간을 포함하면 30년을 같이 지낸 사람의 빈자리는 얼마나 클까 싶은데 '조증의 가면'을 쓴 날인 지 저녁을 먹으며 와인을 홀짝이면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조앤.
"너희 아버지 돌아가신 지 이제 1년 다 되어가지?" 조앤이 물었다.
"응, 작년 8월 말에 돌아가셨으니까. 그렇잖아도 엊그제 자매들하고 작년 이맘때 아빠 병원 모시고 다니느라 힘들었던 얘기 했어... 기억은 생생한데 왜 그런지 아득하게 오래전 일인 것 같아. "
조앤은 "너희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챨스가 방사선 치료 시작했으니까..." 하며 와인 잔을 내려다본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이번에 미국 여행에서 있었던 일, 조앤이 남편의 쌍둥이 동생을 보고 남편인 줄 착각해서 말실수했던 일, 챨스가 나에게 요리를 가르쳐 줬던 일...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 댔다.
잘 참고 있는 듯 하던 조앤의 눈이 좌우로 흔들리며 불안해 보였다.
"앞으로 살면서 크고 작은 결정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나 혼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하는 결정이 맞는지 아닌지. 의논할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두려워. 부모님, 형제자매, 친한 친구가 아닌 '인생을 공유하는 한 배'를 같이 탄 배우자가 없다는 게 무섭고...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조앤의 불안함은 찰스가 남긴 '부'에서 오는 것임을 잘 안다.
장례식장에서 '부자가 되고 싶으면 로또를 사지 말고 저 여자를 꼬시라'는 말을 누군가 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제 50대 초반인 조앤과 19살인 어린 아들이 챨스가 없어도 평생 돈 걱정을 할 일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거에 악한 마음을 보태서
'돈 많은 과부가 앞으로 누군가와 재혼하게 될지'를 궁금해하는 남편의 친구들도 있을 테고, 한없이 약해진 틈을 타 '접근'하려는 친인척도 있을 테고. 그걸 모를리 없는 조앤. 불안한 눈빛을 한 조앤을 보는데 한숨이 쉬어졌다.
어젯밤 자정이 다 되어 집에 왔다. 피곤한데도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조앤의 재산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그녀의 처지가 조금은 부럽기도 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사악하다.
'사람 속에 숨어 있는 악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인간의 숫자로 그 크기를 측정할 수나 있는 걸까?'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는 데 새벽 일찍 잠이 깼다.
회개하듯 브런치에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