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철 체력을 무너뜨린 조카의 결혼식과 내시경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유리 같은 컨디션의 몸뚱이를 끌고 소파에 벌렁 누운 채 핸폰을 켰다. 브런치 작가라면 한 번쯤은 받아 봤을 만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 나는 아직도 삭신이 쑤셔...글을 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야.'
지난 미 동부 여행의 목적은 시조카(시누이 아들) 결혼식 참석이었다.
싱가포르에서 뉴욕으로 가서, 뉴욕 주 북부에 있는 시동생네 별장에서 일주일 쉬고, 결혼식이 있는 버지니아 주 남부로 가서 결혼식 참석하고 싱가포르 집으로 돌아오는 간단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결혼식에 3일, 72시간 분량의 모든 에너지가 소요 되었다.
목욜
뉴욕 주에서 9시간 운전해서 버지니아 주 도착
호텔에 도착해서 샤워 후 옷 갈아입고 welcome dinner 참석
금욜
bridal luncheon
리허설 디너 후 welcome party
토욜
4시 결혼식
10시까지 피로연
일욜
출국.. 24시간 후 싱가포르 집 도착.
평범한 미국 결혼식은 피로연까지 반나절, 길어야 하루 정도 소요되는 게 보통인데 신부와 신부의 엄마가 워낙 극성인지라 (신랑의 엄마인 시누이의 말에 따르면) 파티 다음 파티, 그리고 다시 파티, 3일간의 파티를 계획했다고 한다.
결혼식의 중심은 '신랑&신부'가 아닌 '신부'이니 신부와 신부 쪽 가족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 다 하는 게 맞다.
4남매 중 셋을 이미 출가시킨 신부측 엄마(신부 아버지는 와이프 하자는 대로 그대로 따랐을 듯)는 이미 세 번의 결혼식을 치룬 경험도 있고 이번이 마지막이니 성대하게 하고 싶은 거 다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워낙 본인이 차려 입고 파티하는 걸 좋아하는 공주과니까 딸과 함께 이런 스케줄을 짰겠지.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드레스에 하이힐까지, 3일 동안 최소 네 벌의 옷을 갈아 치우며 하는 공주 놀이는 나뿐만 아니라 신랑 측 Aunts (평균 나이 60세 ++ ) 모두에겐 고통이었다.
무릎이 아프네,
어젯밤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뻗어서 아침에는 기어다니다 오후에 겨우 정신을 차렸네,
신부 엄마 어젯밤에 입은 드레스 봤냐, 여전히 옷빨이 괜찮더라.
신부 엄마하고 신부 이모들은 다 화려하더라. 자기들 옷자랑, 보석 자랑 하려고 파티를 3일 밤낮 하나 보네.
우리측은 정말 공주과와는 거리가 머네 어쩌네
유일한 50대인 나는 동서들과 시누이들에게 spring chicken (영계) 취급을 받으며 파티하느라 무리하고 있는 그녀들의 '관절통' 얘기를 들어줘야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전혀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조카의 '처가집 식구들'의 조금은 과장되게 우아떠는 모습을 보아 주기엔 신랑 측 (나를 포함한 나의 시댁 식구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솔직했다.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에 익숙하고 직설적이며 꾸밈이 없었다.
'신부 측에서는 우리를 보고 뭐라 했을까? ㅎㅎㅎ'
토욜 결혼식 후 피로연까지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니 자정이 다 되었다.
이제 끝났다 싶은 안도와 함께 쪼이는 드레스와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늘어진 잠옷으로 갈아 입고 누웠다.
'ㅠㅠ 내 결혼식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던 것 같다.'
한달 전에 '위+대장 내시경'을 예약하고 대장을 비워내는 약을 미리 받아 두고 여행을 떠났다.
72시간의 파티+24시간 비행
집 도착
24시간 후 '속' 비우기 시작
48시간 후 마취하고 위+장 내시경
밤에 속을 비워 내려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할텐데. 시차 적응이 안 돼서 밤잠을 설칠 때 하면 '타이밍이 딱 좋다'고... ㅠㅠㅠㅠ
이 바보 같은 생각을 '굿 아이디어'라고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내시경을 하고 집에 와서,
꼬박 이틀을 앓아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