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오랫동안살고있지만가본 적이라곤 채 열번도 되지 않는, 싱가포르에 놀러 온 가족이나 친구들이 굳이 가보고 싶다 하기 전에는 가보라고 권하거나 가자고 제안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훅 맡아지는 강한 향신료 냄새를 썩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강렬한 색으로 칠해진 벽화와 건물, 그 보다 더 강렬한 색의 옷을 입은 인도계 여자들의 장신구와 사람과 스칠 때 맡아지는 그들의 체취에서 묻어나는 독특한 향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굳이 가지 않는 이유를 꼽으라면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아서'일 거다.
혼자 리틀 인디아를 가야 할 일이 있을 땐 긴 청바지에 긴 팔 웃옷을 입고 핸드백을 몸에 바짝 붙이고 최대한 목적지와 가까운 곳에서 차를 내려 두리번거리지 않고 땅을 보며 걷다가 서둘러 일을 보고 그 동네를 떠난다. 관광객처럼 두리번거리거나 인디안차를 홀짝이며 노상 카페에 앉아 있으면느끼한 눈길을 보내는 '남자'들과 눈이 마주치게 되고 그러면 기분이 심하게 '불쾌해진다'.
싱가포르에서는 노골적으로 여자를 위아래로 훑거나 은근슬쩍 '윙크'를 해오는 남자들이 없는데 사창가인 '겔랑' 지역 근처와 '리틀 인디아'에서는 여자들이종종 겪는 일이다.
항공사에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일을 담당하고 있는 제인은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니며 먹어 보기도 많이 한 친구라, 그 친구가 추천하는 식당은 무조건 '예스'다.
Kotuwa
이름도 생소한 이곳은 스리랑카 식당이다.
그런데 왜 하필 위치가 리틀 인디아. 그것도 러브호텔로 여기는 '호텔 81' 바로 건너편일까.
저녁 먹으러 리틀 인디아에 간다고 하면 남편의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질 게 분명한 지라, 어쩌면 아예 나를 식당까지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겠다며 조바심을 낼 수도 있어서, 집을 나설 때까지 내가 가는 식당 위치를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 어디에서 만나?"
"응, 요 근처. 스리랑카 식당이라는 데 핫 플레이스래. 제인이 그러는데..."
"그래? 장소만 핫한 게 아니라, 음식도 '핫(매운)'하겠네."
...
'휴, 더 이상 안 묻네. 다행이다.'
Grab (택시)을 타고 리틀 인디아 입구에 오니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관광객에 쇼핑하러 나온 사람들까지 북적북적 복잡하다. 좁은 일방통행길을 통과하는데 뒤에서 차가 오든지 말든지 비켜줄 생각 없이 자기 갈 길 가는 사람들에게 인내심을 잃은 Grab 기사는 'Siao lah, Siao (미쳤다는 뜻의 호끼엔 방언으로 싱가포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욕을 해댄다.
식당 앞에 나를 내려 주고 떠나는 Grab.
Wanderlust라는 이름의 페라나칸 타일로 장식된 호텔 건물 1층에 '벽'만한 큰 나무 문을 밀고 들어 갔다.
어제 저녁에 우리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스리랑카인 부부에게 '내일 친구들과 스리랑카 식당 Kotuwa'에 간다는 얘기를 했더니, 나에게 당장 예약 취소하라는 말을 했다.
"왜? 테이블 예약하기 힘들어서... 3주 전부터 예약해 놓고 기다린 곳인데."
"거기 너무 비싸. 무슨 스리랑카 음식을 그렇게 비싸게 받아? 인테리어에 돈 좀 들이고, 좋은 그릇에 음식 내오면 뭐 해. 너무 비싼 걸. 거기 가지 말고 스리랑카 사람들이 많이 가는 OOO로 가. 거기는 Kotuwa 1/10 가격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그렇구나."
뭐 어떤 식당은 안 그럴까.
인테리어와 서빙 그릇, 분위기가 음식 값에 포함되는 건 당연한데.
그나마 스리랑카 사람들이 '음식은 먹을만하다' 는 걸 보니 authentic한 맛집일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음식도 남자 고르는 눈도 까다로운 여자들.
홍보회사 대표, 항공사 직원 그리고 잡지사 편집장.
이 세 친구들은 대학 갓 졸업했을 때 한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만났다고 한다. 내가 이 친구들과 알게 된 건 광고 회사를 하고 있는 남사친 데이비드를 통해서다.
"주문 먼저 하자."
대화를 시작하면 언제 마칠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다를 잘 알기에 음식 주문 먼저 하자고 제안했다.
아시아 여행을 해본 적 없는 서양인들이 '오리엔탈 푸드'라는 말로 아시아 음식을 다 묶어 '같은 퀴진'으로 생각하 듯 무지한 나 또한 남아시아 음식을 '인도 음식'으로 묶어 스리랑카 음식도 인도 음식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먹어보니 스리랑카 음식은 어, 이거 뭐지?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맛과 향이 있는 매력적인 음식이다.
보통 먹을 때는 좀 조용해지지 않나?
어떻게 먹을 때도 내뱉는 말수와 속도가 줄지 않는 걸까?
튀긴 생선의 살을 발라내고 뼈를 통째로 손에 들고 옥수수처럼 뜯어먹으면서도, 계란이 들어간 호퍼를 우물거리면서도, 매운 고투 로띠에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다들 입을 쉬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