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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ug 12. 2023

마스터 셰프 싱가포르 시즌 4

친구의 '꿈'을 응원하고 축하해준 날

8월 9일 

Singapore National Day (싱가포르 독립기념일)


해마다 비슷비슷, 거의 동일한 시나리오로 하는 National Day Parade

싱가포르 국민뿐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 또한 '애국심'과 '감사함'으로 감동의 물결이 넘치는 날이다.


사진 출처 : CNA


특별히 올해는 친구 루이스가 참가자로 출연하는 마스터 셰프 싱가포르 시즌 4가 방영되는 날이기도 하다.


8시 전부터 루이스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들 두근두근 기대하며 8.30분에 시작하는 방송 시간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이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거기에 엄마 아빠를 따라온 꼬맹이들까지 합류하다 보니 집안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과 밀치며 싸우다 우는 아이들도 있고, 아이들 소리에 경쟁을 하듯 자연스럽게 어른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오늘 방영하는 방송분은 본선에 진출할 12명을 뽑는 에피소드이고, 다음 주 일요일을 시작으로 총 열 번의 에피소드를 통해 최종 우승자가 선발된다고 한다.


과연 루이스가 몇 번째 에피소드에서 탈락할 것인지를 맞추는 '내기'를 하기로 했다. 작은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캘린더에 본인이 예상하는 '루이스 탈락일'자기 이름을 쓰고 그 앞에 놓아 둔 바구니에 50달러씩을 넣었다. 나중에 답을 맞힌 사람(들)은 바구니에 모인 돈을 갖게 된다.


"잠깐, 이 내기가 가능하려면... 루이스가 탈락을 해야하고, 그렇다면 1등을 못했다는 거네?"


"ㅎㅎ, 여러분. 저 1등 못했어요. 그렇지만 3개월 동안 촬영에 임했다는 게 힌트예요."

루이스의 힌트에 따라,

2등을 했네. 3등을 했네. 의견이 분분해졌다.


꼬맹이들 중 몇몇은 왜 자기들은 화이트보드에 이름을 쓸 수 없는지를 물었고, 어른들은 '돈내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아이들은 못하는 걸 왜 어른들은 해도 되는 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아이들을 루이스의 남편 '바랏'이 나서 상대했다.

"야, 너희들 50달러 있어?"

"아뇨. 지금은 없는데 집에는 있어요."

"너 지금 주머니에 50달러 없으면 내기 못해. 집에 있는 걸로 내기할 순 없잖아. 엄마 아빠한테 돈 달라고 해서 내기하는 것도 반칙이야. 안 돼. 알았지? 이제 이해 됐어?"

웃어대는 어른들과. 참새 떼들 마냥 '우~~'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도 없고 시끄럽고 난리 법석 대환장 파티장이다.

루이스가 같은 층에 사는 앞집 가족들과 위층 아래층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서 다행이었다. 이웃들도 파티에 합류했으니 소음으로 경찰을 부를 일은 없을 테니.



'쉬~~~ 쉬~~~'


"여러분 곧 방송이 시작됩니다. 모두들 화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세요."

애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들 자기 하던 거 하느라, 방송이고 뭐고. 다들 여전히 떠들고 뛰어다니고. 부어라 마셔라. 아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쉬~ 쉬~'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루이스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방송시작 전 30, 29, 28, 27,....."

어느새 뛰어다니던 꼬맹이들이 카운트 다운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지지리 말도 안 듣는' 어른들은 와인잔을 들고 하나 둘 화면 앞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5, 4, 3, 2, 1."

"YAY~~~~"


모두들 박수를 치며 응원을 시작했다.

"Yay~~~ 루이스 Go! 루이스 Go!

"JiaYo! JiaYo!"



어쩐 일인지 프로젝터가 쏘아대는 흰 벽에는 그림자 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앉아서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조작하는 루이스 남편 바랏을 본다.


"뭐야. 안 나와?"

"이상하네."

다들 웅성웅성. 깔깔 거리며. 다시 시끌 시끌 혼돈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도 벽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 뭐야? 방송 시작 시간 한참 지났는데.'

모두들 방송이건 뭐건, 왜 모였는지 다 잊은 듯 자기가 하던거 (먹고 마시고 뛰어나니고 소리지르고) 계속 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또 몇 분이 지났다. 여전히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루이스와 바랏, 같은 층 앞 집에 사는 산드라가 큰 소리로 말한다.

"여러분, 바랏이 프로젝터를 고치는 동안 저희 집에 가보고 있는 게 어때요?"


이건 민족 대이동도 아니고. 애고 어른이고 산드라를 따라 앞 집으로 갔다.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오라고는 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앞집으로 가도 되나? 민폐네. 하는 눈빛을 교환하며 다수가 하는 대로 '군중'을 따라 갔다.

모두들 자리 잡는 동안 산드라는 TV를 켜고. 한참 진행 중인 마스터셰프 프로그램에 채널을 맞췄다.


TV의 소리를 최대한 크게 올렸지만, 이 바글바글 모인 사람들이 내는 소리에 묻혀서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다들 딴짓하다 루이스가 화면에 클로즈업되는 0.5초, 1초 동안만 '와~~~'하며 함께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게 다였다.


누군가 목청 높여 소리를 질러 댄다.

"QUIET~ QUIET~"

루이스의 큰 아들 8살 이샨이다.

얼굴을 보니 많이 속상했던가 보다. TV에 나오는 엄마를 보고 싶은 데 TV보다는 제각각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버린 TV소리에 방송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참다 참다 아이가 폭발한 듯했다.

나는 속으로 '이샨, 잘했어. 나도 같은 마음이야. 방송을 눈으로 보는지 코로 보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뭘 봤는지도 모르게 1부가 끝나고, 2부는 30분 후에나 시작된다해서 우리 모두 다시 '우르르르르 쿵쿵' 요란하게 루이스의 집으로 가서,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30분을 보냈다.


뭐가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로젝터는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모두들 프로젝터가 쏘는 벽 앞에 앉아 루이스의 얼굴과 루이스가 만든 음식이 화면에 클로즈 업 될 때마다 큰 소리로 응원하며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모두들 이미 알고 있었지만 12명의 본선 진출자 중에 루이스가 포함되는 장면에서는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순간 마냥 모두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환호성을 질렀다.

(46) #shorts MasterChef watch party - Louise Yuan - YouTube



방송이 끝나고 루이스에게 개봉 전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인터뷰 하듯 질문을 했다.

촬영 과정 중에 힘들었던 점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

촬영을 마친 지금의 심정은 어떤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인지

고액 연봉의 화려한 커리어를 포기하고 꿈을 쫓아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정말 행복한지.


루이스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린 두 아들보다 '대회 준비'를 첫 번째로 두었던 '죄책감'이었다고 했다.

대회 중에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대회는 계속할 거라는 생각이 몇 번 머리를 스쳤는데, 그런 자기의 생각이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했다고 했다.


방송을 보는 내내 루이스의 아들 이샨과 레이안을 지켜봤다. 이제 겨우 8세, 6세인데 그 아이들이 화면에 나오는 엄마를 보는 눈 빛은 너무나 진지했고.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꿈'이 있는 엄마,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엄마를 보고 자라게 하는 것만으로도 루이스는 꿈을 좇느라 포기한 고액 연봉 보다 더 큰 선한 영향력을 아이들에 미칠 게 분명하다.



파티에 온 남편의 전 직장 동료에게 들은 다른 동료들의 소식에 남편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OOO 알지? 회사 그만두고 멕시칸 레스토랑 차렸어."

"뭐? OOO가 요리를 좋아했었어?"

"늘 퇴직하면 자기 엄마 레시피로 멕시칸 레스토랑 할 거라 그랬거든. 그러더니 퇴직할 때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가 뭐 있냐며 그때 되면 식당을 시작할 만한 에너지가 없을지도 모른다며 조금 일찍 시작해서 자리 잡는 게 나을 거 같다고. 큰 결정을 내렸지."

"와. 용감하다."


"OO는 퇴직하고 시애틀에서 스탠드업코미디언이 되었어."

"코미디언? 별로 웃긴 사람인 지 몰랐는데."

"회사에서는 드러내지 않았었는가 봐. 하하. 시애틀에서 꽤 유명하대."

"와. 대단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다들 가슴에 품고 사는 '꿈'이란 게 있나 봐. 나한테는 왜 그런 게 없지?"

"글쎄. 꼭 이루고 싶고, 꼭 하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 같은데. 다들 일상을 습관처럼 살면서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이 없는 게 행운일지도 몰라.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할 일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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