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Ron Mueck) 개인전을 다녀와서

예술이 우엇인가에 대한 질문

by 혜성

배 나온 아저씨의 축 처진 살을 미술관에서 전시품으로 마주하는 것에 관하여


그녀도 1년 전엔 젊고 예뻤다?

나에겐 만나면 서로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는 25년 지기가 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를 예쁘다고 추켜세우며 사진으로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기록으로 남겨주려 애쓴다. 생각해 보면 이 친구 외에는 만날 때마다 그렇게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는 관계는 없는 듯하다.


한 해가 가고 또 이듬해가 되면 친절한 구글 포토는 작년의 또 그 작년의 이맘때 사진을 선물함에서 꺼내 보이듯 내게 내놓는다. 나는 추억으로 강제 소환을 당해 그때의 나와 25년 지기의 모습을 바라본다.


사진 속 나는 또 그녀는 웃고 있다. 사진 속 나와 그녀의 얼굴은 팽팽하다. 사진 속 나와 그녀의 얼굴엔 기미도 여드름도 없다. 사진 속 나와 그녀의 다리는 길다. 사진 속 나와 그녀는 친하다.


나는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역시 한 해가 다르다니까. 그때는 젊고 날씬하고 예뻤어.’


그런데 과연 그럴까. 1년 전의 나는 지금 거울 속에 있는 나와 달리 주름 하나 없고, 찡그리지 않고, 다리까지 길었던 걸까? 도대체 1년 동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럴 리가. 내게 1년간 이토록 주름이 깊어지고 기미가 짙어지게 한 사건은 없었다. 실은 1년 전에도 비슷했다. 다만 사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사진을 찍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한다. 웃지 않거나 찡그렸거나 표정이 뾰로통하게 나온 사진은 바로 지운다. 뽀샵 앱을 사용해서 애초에 주름이 펴진 채 찍힌 사진만 남긴다. 커진 모공과 짙은 기미와 자글자글한 눈 옆 주름과 깊은 미간의 골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착실한 사진은 delete 키에게 맡긴다.


주름도 모공도 없는 사진 속 세상

언제부턴가 나를 나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은 차마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게 나인 걸 알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나라는 리얼리즘의 세상을 엿보고 싶지 않다. 아기 피부와 길고 곧은 다리와 머리털도 풍성한 제3의 나를 나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보다 나은 나’라는 환상 세계에 자진해서 들어간다.


요새는 뽀샵 앱으로도 만족을 못 해 얼굴(과 몸까지)을 만화 캐릭터처럼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사진 찍기가 유행이다. 만찢남, 만찢녀가 내가 되지 못하리라는 법이 어디 있냐는 마음들일 것이다.


이걸 보면 우리가 원하는 세계는 사실에 입각한 세계가 아닌 것 같다. 설령 진실과 동떨어져 있더라도 그걸 바라보고 있을 때만은 기분이 좋아지게 예쁘고 잘 꾸며진 세계를 바란다. 특히 사진 속 대상이 나일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얼마 전에 화면을 잘못 눌러서 내 코끝 모공이 훤히 보이게 찍혔다. 우연히 그 사진을 보고 나는 그 끔찍함에 허둥지둥 휴지통 아이콘을 찾았다. 급하니까 아이콘이 잘 보이지도 잘 눌러지지도 않았다.


극사실주의를 마주한 얼떨떨함

이렇게 개개인이 사실주의를 외면하는 시대에 극도의 사실주의 전시관에 다녀왔다. 지금도 그때 본 작품들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맴돈다.


싱그러운 5월의 햇살에 이끌려 정독도서관에 갔다가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렀다. 매점에서 천 원 주고 사 마신 조지아 오리지널 캔커피가 뿜어낸 달콤한 청량감에 취해서였다. 평일인데도 티켓 줄이 길었다. 7천 원 통합권을 끊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작은 전시관을 둘러본 뒤 론 뮤익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5관으로 들어섰다.


관람객들이 가로막은 사이사이 공간에 옆으로 누운 얼굴 조각이 보였다. 왠지 작가 자신의 얼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 키만 한 길이의 얼굴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잠 속에 빠져 있었다. 희고 분홍의 피부와 아침에 깎아서 밤이 되어 올라온 턱수염과 감긴 눈꺼풀 밖으로 길게 뻗은 갈색의 속눈썹과 잘 빗어 넘긴 머리카락, 그리고 그의 얼굴만큼이나 길다란 한쪽 귀까지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실과 똑같이 만들까를 고민하고 만든 작품이라는 게 느껴졌다.

마스크 2

흠, 진실을 왜곡하는 지금의 시기에 거울과 같은 재현이라니, 무언가 이상했다.


전시 방향 화살표를 따라 다음 작품으로 갔다. 과잉된 크기의 첫 작품과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과소한 크기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발가벗은 채 자신의 몸보다 훨씬 긴 나뭇가지 뭉치를 허리를 뒤로 휘어가며 안아 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화가 난 듯도 결연한 결심에 찬 듯도 이까짓 것에 지지 않으리라는 오기에 찬 듯도 했다. 내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인데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녀의 몸은 실제보다 다섯 배 작지만, 그녀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는 이곳 실제 세계에서 가져왔으니 그녀가 들고 있는 짐은 그녀의 세계에서는 비현실적일 만큼 크고 무겁고 날카로우리라는 짐작을 하게 만들었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

그다음 작품은 이부자리 속에 몸을 뉘이고 흰 이불을 덮고 있는 여인이었다.

여인은 오른손을 얼굴 쪽에 가져다 대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예쁘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하고 괴팍한 인상의 여인인데, 작품 자체의 크기가 크다 보니 비호감의 거인 같은 느낌을 주었다.

침대에서

이어서 밀착해 있는 십 대 남자와 여자가 있고, 엄마를 쳐다보고 있는 아기를 코트 속에 안고 두 손에 장 본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각자의 고민 속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쇼핑하는 여인

크기는 사실과 다르지만 피부도 머리카락도 옷도 현실 그대로였다. 싸구려 코트의 재질까지 눈으로 만져졌다. 그들은 작가를 향해 일부러 포즈를 취하거나 예쁜 웃음을 짓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일상 속에 있었다. 작가는 그들 삶의 한 지점을 포착해서 스틸컷으로 재연해 내었다. 너무도 사실과 똑같아서 계속 쳐다보게 만드는 극도의 사실주의 작품들이었다.


예쁨만 보관하는 세상에 못생김이라는 현실을 투척하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대단히 똑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게 예술인가? 잔주름 하나까지 실물과 똑같이 만들려고 노력하는 작가는 과연 예술가인가? 실물과 같으면 외면받는 지금의 시대에 이 작품들은 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가?


바로 옆 2관에서는 추상과 실험이라는 테마의 한국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었다. 하나의 미술관에서 상반되는 전시라니. 내가 있는 이곳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사실을 파괴하고 왜곡해서 숨겨진 진실을 파악해 보려는 예술적 노력이 있는 그대로를 재현해 내려는 노력과 쨍 하고 맞부딪치고 있었다.


전시 말미에 작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영상에 담은 영화를 관람했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대상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지가 엿보였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대상을 실물과 그토록 동일하게 재현해 내게 이끌었을까 궁금했다. 어린 시절 장난감 제조업을 한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꼭두각시 인형과 생물 모형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손에 익은 기술적 경험이 그의 작품 세계의 바탕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배에 탄 남자

다만 그의 작품이 놀라운 건 생김새의 동일성에서 더 나아간다는 데에 있다. 그가 만든 작품들 속 주인공들은 생생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한 사람의 기분이 표정은 물론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그가 만든 작품 속 주인공들 또한 온몸으로 그들의 기분과 고민을 뿜어낸다. 첫눈에는 사람과 닮은꼴에 주목하지만, 얼마나 닮았는지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과 기분에 가닿으려고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묘하게 측은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빨려들 듯 작품 속 주인공들을 바라본다. 축 처진 배를 가진 노인, 두툼한 팔 살을 드러낸 중년의 여인, 아이를 품에 안고 밀린 월세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것만 같은 젊은 여인, 가까운 듯 먼 거리의 소년과 소녀…. 뽀샵의 도움은커녕 점 하나 털 하나까지 있는 힘껏 재현해 내고 말겠다는 의지의 창조주를 만난 나머지 주인공들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보여야만 하는 반(反)현대적 인물들이다.

젊은 연인

바로 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지금 이 시대에 너무도 생경하기 때문에, 론 뮤익의 작품들이 이모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2025년의 동시대인들을 사로잡은 게 아닐까 싶다. 더불어 사실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론 뮤익은 예술가의 경지를 넘어 미니어처 세계의 창조주가 아닐까 생각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가장 행복할 때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