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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Sep 28. 2022

시동을 켜고

아침운동을 나가는 봉이 덕분에 나도 일어나게 되었다. 화장실을 갔다가 체중을 재고 체성분을 측정했다. 비슷한 몸무게만큼 골격근량도 체지방량도 변하지 않았다. 늘어야 좋을 것과 줄어야 좋을 것이 둘 다 변하지 않고 비슷한 수치로 일정함을 유지할 때 내 삶의 내용이 일정함을 알 수 있다. 일주일간 일을 놓고 휴식 모드로 있었다. 나에게 일은 두 가지다. 아르바이트로 받아놓은 편집일, 그리고 글쓰기. 그러기 위해 준비운동을 한다. 그것이 일기 쓰기다.


아침에 일기를 쓰면서 시작하는 하루는 헛되이 보내도 보람이 있다. 종일 꽉 찬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진격의 아침 결심이 용두사미로 끝나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저녁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래도 그날은 반을 한 것이다. 시작이 반이니까. 일기를 쓰는 행위는 하루를 질주하는 자동차에 시동을 켜는 일과 같다. 내가 매일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힘이 있는 트럭이라면, 지금 적정한 주행거리는 편도가 약 100킬로미터인 서울에서 천안까지 정도다. 가는 편도는 네 코스로 이루어져 있고, 도로 상황에 따라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는 시각은 자정까지 열려 있다. 중요한 것은 주행을 계획대로 마쳤느냐인데, 그날 몇 킬로미터의 속도로 얼마나 달릴지 일기를 쓰면서 계획을 한다. 물론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한 적이 열에 아홉이다. 


샤워를 한 뒤 운동을 하는 첫 번째 코스는 대체로 통과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점심을 먹기 전까지의 한 시간여를 작업대에서 보내는 두 번째 코스를 통과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가끔 운동 마치고 운동 메이트들과 30분 정도 커피토크를 하고 들어오는 날, 마침 안부를 확인하는 가족에게 전화까지 오면 통화를 하다가 어느새 출출하다는 배 속의 신호를 듣는다. 잠깐 통화를 하려고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가 더 주행을 못 하고 거기서 점심까지 해결하는 꼴이다. 아직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만남의광장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주저앉아 국밥까지 한 그릇 먹고 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봉이가 하교하고 돌아오기 전까지 한 시간 반 정도를 작업대에 있는 시간이 세 번째 코스. 여기를 통과하면 안성까지 온 셈이다. 휴게소에 들러 봉이에게 간식도 주고 나도 커피 한잔을 마신다. 봉이가 학원을 가고 저녁 준비를 하기 전까지 두 시간 정도를 작업에 몰두하면 네 번째 코스 완주다. 드디어 천안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취침 전까지 서너 시간을 온전히 작업대에 앉아 일을 했다면 무사히 출발지로 돌아온 것이다. 그날의 목표량 완주.


하지만 매일의 변수는 만남의광장에서, 휴게소에서 차를 돌리게 만든다. 어떤 날은 시장을 봐야 해서, 어떤 날은 전화가 많이 와서, 어떤 날은 무기력해서, 어떤 날은 우울해서, 어떤 날은 어제 넷플릭스로 보던 드라마 다음 회가 너무 궁금해서 주행이 되지 않는다. 출발지 주차장에 세워진 트럭이 며칠을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을 때도 많다. 


서울과 천안을 주 5일 왕복한다면 내 업무 근육은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오늘은 일주일째 시동 한 번 걸어보지 않았던 트럭에 올라탄다. 그리고 시동을 건다. 이번 주 목표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5일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서울-천안 왕복 주행이다. 오늘이 중요하다. 변수에 담대히 응하지 않기. 시동은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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